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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시환 Feb 17. 2024

곽은영, <불한당들의 모험 25>

이별할 결심에 대하여




함께 있으면 두려울 것이 없었지

황금도 부럽지 않은 눈부신 웃음을 만들 수 있었으니까

카우보이 비밥을 흥얼거리며

흘러내리는 꿀 같은 오후의 샴페인 골드 햇살을 담았지


이제 나는 뚜벅뚜벅 걷는다


굴러떨어지는 순간에도 손을 꼭 잡고 있어서 미소를 지었어

시큼한 돌에 찍히고 부러진 다리를 절뚝이며

울지 마 잘될 거야 몇 알의 박하를 너의 입에 넣어주며

나머지 박하는 내가 긁어올 것이라 말했지만


wish you are here


이제 나는 뚜벅뚜벅 걷는다

함께 걸었던 거리와 네가 있어야 할 자리를 검게 칠하다가 까맣게 타버린 개암을 대신 걸었다


풍경이 썰물처럼 너에게로 달려가고 있었지

고개를 돌렸지만 타버린 개암의 냄새는 반쪽 심장을 터지게 했어


나는 얼굴에서 웃음을 거두었다

아름다운 옷 대신 노파의 허물을 뒤집어썼다


투명하고 찝찔한 피가 줄줄 흘렀다

흐르도록 내버려 두었다


울지 마 잘될 거야 몇 알의 박하를 너의 입에 넣어주며

나머지 박하는 내가 긁어올 것이라 말했지만

울지 마 잘될 거야 막힘없는 하늘이 가만히 등을 토닥여주지만

나는 안다


나는 뚜벅뚜벅 걷는다

하지만 까만 개암길로는 도저히 갈 수가 없다

네가 검게 변한 얼굴과 손만 남았다 할지라도

wish you are here


곽은영, <불한당들의 모험 25 - Wish you are here>





어디선가 읽은 '부재는 존재를 증명한다는 글귀'를 좋아한다. 사랑하고 있을 때보다 이별하고서 상대의 부재를 실감하고 나서야 상대에 대한 내 마음나를 향한 상대의 마음을 더 사무치게 확인하기 때문이다. 사랑하면서 알아갔던 상대의 취향과 습관, 말투, 플레이리스트, 다정함은 헤어진 후에 어떤 것으로든 남는다. 날씨든, 무심코 흘러나온 노래든, 친구나 새로운 사람들 통해 전애인의 모습을 발견하거나 투영하면서 잊어가고 있던 마음이 덜컥 불씨처럼 살아나거나 불현듯 애틋해지거나 후회와 사랑을 마음 속에 흘리고 가면


Wish you are here

네가 여기에 있으면 좋겠어


화자처럼 되내이게 된다. 지금, 여기, 이 순간에 네가 내 옆에 있으면 좋겠어. 다시 너를 사랑하고 싶은 것인지, 너랑 함께한 기억이 좋았던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냥 네가 있었으면 좋겠어.

하지만 네가 없는 일상을 나아가야 하는 게 쉽지 않다. 이별을 결심하고 혹은 이별을 했어도 여전히 'wish you are here'라고 말하며 내 마음에 계속 상대가 남는다. 이 또한 이별의 과정이다. 가장 사적이고 친밀한 관계가 하루아침에 사라졌으니 (사라질 것이니) 허전함과 공허함과 허무함이 몰려 오는 건 당연하다. 사랑은 참으로 희한하다. 이별할 결심을 했어도 헤어지자는 말이 쉽게 나오지 않고 그렇게 지지부진하게 관계를 이어가기도 하고, 헤어지더라도 최소 몇 개월 길게는 몇 년까지 마음에 남아 상대를 잊지 못한다. 어떤 마음이길래 우리를 괴롭히는걸까? 


이 시에서도 화자는 화자처럼 '뚜벅뚜벅' 걷겠다고, 단호하게 '까만 개암길로는 도저히 갈 수가 없다'고 말하지만, wish you are here 이라고 반복하며 이별하기 힘든 두 가지 마음을 보여주고 있다. 첫 번째 연에서 화자가 연인에 대해 확신에 찬 마음이 있고 같이 있기만 해도 좋은 시간을 보내는 것처럼 보인다. 3연에서도 어떤 상황인지 자세히는 모르지만, 서로가 처한 상황이 안 좋아진 것인지,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를 주어도 좋아하는 마음이 크니 곁을 지키고 있을 지도 모른다.    


처음엔
울지 마 잘될 거야 몇 알의 박하를 너의 입에 넣어주며

나머지 박하는 내가 긁어올 것이라 말했지만

그러면서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며 연인을 안심시켜준다. 하지만 두 번째에는
울지 마 잘될 거야 막힘없는 하늘이 가만히 등을 토닥여주지만

나는 안다 뒤에 나는 뚜벅뚜벅 걷는다라고 말함으로써 연인이 없어도 잘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스스로에게 하며 점점 화자는 이별할 결심을 하게 된다. 


전반적으로 시를 볼 때, 연인을 향한 화자의 마음이 크게 느껴지는데, 

어떤 이유로 이별을 결정하게 되었을까? 


마지막 연에서 화자는 지쳤고 체념한 것처럼 보인다. 

투명하고 찝찔한 피가 줄줄 흘렀다

흐르도록 내버려 두었다

라고 말할 정도로 힘든 상황과 연인에게 받은 상처보다 좋아하는 마음이 커서 옆에 있었다면? 이젠 그 좋아하는 마음이 무색하게 곁에 있을 수 없어서 이별을 결심하게 된 게 아닐까. 하지만 우리는 알 수 없다. 

Wish you are here이라고 시를 맺으며 이별을 결심했지만 말하기까지 망설이고 있을지, 단호해져서 이별을 했을 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좋아하는 마음만으로 안 되는 것이 있어도 그 마음을 넘어서 계속 옆에 있어서 끝까지 가보고 싶은 마음과 좋아하는 마음이 커도 한계를 알고 물러설 줄 아는 마음 사이에서 결정을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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