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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시환 Jan 19. 2023

진은영, <청혼>

청혼에 대하여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별들은 벌들처럼 웅성거리고


여름에는 작은 음색 드럼을 치는 것처럼

네 손바닥을 두드리는 비를 줄게

과게에게 그랬듯 미래에게도 아첨하지 않을게


어린 시절 순결한 비누  거품 속에서 우리가 했던 맹세들을 찾아

너의 팔에 모두 적어줄게

내가 나를 찾고 술래였던 시간을 모두 돌려줄게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벌들은 귓속의 별들처럼 웅성거리고


나는 인류가 아닌 단 한 여자를 위해

쓴 잔을 죄다 마시겠지

슬픔이 나의 물컵에 담겨 있다 투명한 유리 조각처럼




진은영, <청혼>




이보다 더 낭만적이고 함께하고 싶은 마음을 잘 그려낼 수 있을까?

나도 청혼 멘트를 생각했던 때가 있다. 정말로 우리가 결혼을 하지 않았을 테지만, 장난스레 버즈를 보고 프로포즈용 반지 같다고 시작한 대화에서부터였다. 나는 "나와 결혼해줄래?"라는 세간에 떠도는 평범한 말보다 일상적이면서도 낭만적인 멘트를 고민했다. 짧은 시간 동안 나는 버즈를 만지면서 "나의 내일을, 매일을, 그렇게 48년을 줄게. 너도 너의 48년을 내게 주지 않을래?"라는 문장을 만들었다. 나의 매일을 준다는 표현은 나에게 꽤나 거창한 의미였다. 다른 누군가가 결혼에 대해 얘기를 하면 감흥과 관심이 없던 내가  내 미래에 그가 그려졌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상상할 수 없는 그림이어서 그가 내 일상에 들어오면서 상상할 수 있는 그림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이 관계에 확신이 있었으리리라.


이 시는 전반적으로 화자가 사랑하는 연인에게 청혼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마지막 연 마지막 행이 의미심장하다. 슬픔이 화자의 물컵에 담겨 있고 투명하게 슬픔이 다 보인다. 화자는 연인을 오래도록 사랑하고, 여름에 크고 작은 빗방울이 작은 음색 드럼처럼 소리 낼 수 있게 행복을 주고 현재에도, 미래에도 아첨하지 않겠다는 맹세를, 사랑하는 연인을 헤매며 찾았던 시간마저 모두 돌려주겠다고 앞으로의 시간을 기대한다. 함께한 시간이 오래된 만큼 좋은 일도 있을 것이다. 슬픈 일도 있을 것이다. 분명 고꾸라지는 일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 두려움이 더 커서 화자는 쓴 잔을 '죄다' 마시지 못했을지, 우리가 알 수 없지만 그럼에도 마셨을지. 결말을 독자들이 선택할 수 있도록 남겨둔 것이 아닐까 짐작해 본다.


나는 그때를 생각한다. 가진 것 없고, 1인분의 몫을 해내지도 못해 마음속 한편에는 초라한 나 자신이 사랑하는 연인에게 더 좋은 것을 해주지 못했을 때, 그에겐 아직 경험하고 누릴 것이 더 많은 창창한 미래에 내가 함께 하는 것이 맞는지 고민했을 때가 있었다. 나는 모든 것을 그에게 줄 준비가 되었는데, 그가 준비되어있을지에 대한 의문도 함께 피어났다. 지금에서야 고백한다. 이런 두려움 가득한 마음도 그에게 전하면서,하지만  앞으로도 함께 하고 싶다고 말했어야 한다고. 그러니까, 나는 '인류가 아닌 하나뿐인 그를 위해 쓴잔을 죄다' 마실 준비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화자에게 응원의 말을 보낸다. 부디 쓴 잔을 죄다 마셔서 사랑하는 사람과 기쁨과 슬픔을 모두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고. 빈틈 없이 꽉 차게 오롯한 두 사람의 감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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