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똑바로 마주하고: 최현숙의 사적이고 정치적인 에세이> 독서 노트
요새 브런치에 글을 끄적이다 느낀 것이 있다.
'내가 생각보다 나 자신을 되게 모르는구나!'
'내 마음을 정확하게 짚지 않고 넘어가는구나!'
막연하고 모호한, 뭉뚱그려졌으나 그럴싸하게 쓴 문장들이 있다. 가볍게 읽기엔 나쁘지 않을지 모르지만, 그런 글은 읽었을 때에도, 쓰고 나서도 마음이 안 좋다. 수박 겉만 핥은 기분, 계란 껍데기만 깬 기분, 물병의 뚜껑만 열어놓은 기분.
집요하고 치밀하게 내면을 들여다보고, 그를 정확하게 표현하고 싶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거야,라고 군더더기 없이 날씬하고 정갈하게 내어 보이고 싶다. 그래야만 읽는 사람에게도 더 와닿을 거란 걸 안다.
작은아들이 17세 즈음 가출을 했었다. 그를 찾아 나서지 않는, 혹은 자기처럼 걱정하지 않는(걱정을 드러내지 않는) 나를 향해 남편은 심한 비난을 했다. '자기 발로 나간 아이가 자기 발로 들어오기를 기다리겠다'는 것이 내가 남편에게 한 말이었다. 그 말을 정리해내는 동안 나는 많이 힘들었고, 그 말을 하고 태도를 견지하면서도 아이가 돌아올 때까지 힘들었다. 사실 나는 훨씬 더 독한 각오까지 했다. '그가 주검으로 돌아오는 것까지, 하여 내 남은 삶이 자책과 주변의 원망에 짓눌리는 것까지도 나는 감수하겠다'는 것이 당시 홀로 정리한 감성과 이성의 경합물이었다. 그때의 불안과 이질감과 죄책감은 이후로 내 안에 계속 남아 있고, 기회 있을 때마다 끌어내져 나를 다시 들여다보게 한다. 그 들여다봄이 거듭될수록 나는 차차 편해지고, 나 자신이 되어가는 것을 느낀다. 그게 나다.
p. 17
소시민 개인이 사회구조적 피해를 입었을 때 진상 규명, 책임자 처벌은 그저 먼 이야기다. 그들이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슬픔이나 분노는 어쩔 수 없는 것이고, 내 재수나 운명 탓이니, 보상이나 받고 서둘러 끝내는 것이 현실적이라는 생각이다. 자신의 일이 아니니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고 생각해본다. 그리고 자신의 일이라 해도 결국 그렇게밖에 될 수 없다고 미리 생각하고 있으며, 실제로 그렇게 합의하고 말 것으로 여겨진다.
p. 71
못 배워서 글을 잘 못 쓰는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한다는 면에서, 구태여 '민중'이니 '여성주의'니를 붙이지 않더라도 구술생애사는 가난을 지향한다. 가진 자들이 주도하고 정리한 역사 속에는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 (…) 길거리와 일터와 시장과 지하철에서 부딪치는 흔해빠진 사람들의 생애가 나는 더 궁금하다. 전형적이거나 평균치에 놓인 사람은 없으며, 모든 개인은 구구절절 각별하다.
p. 98
<삶을 똑바로 마주하고: 최현숙의 사적이고 정치적인 에세이>는 굉장히 울림이 있는 책이었다. 제목처럼 자신의 삶을 똑바로 마주하고 써 내려간 그녀의 글은 내게 묘한 해방감마저 느끼게 했다. 그녀는 멋진 사람이다. 그 자체로, 멋 부리지 않아도.
어떻게 하면 나 스스로를 똑바로 마주할 수 있을까? '그냥 대충 거기까지' 내지는, '이런 느낌적인 느낌'으로 글을 쓰는 게 아닐 수 있을까? 글은 엉덩이로 쓴다던데, 버티고 버티며 쓰고 또 쓰다 보면 그럴 수 있을까? 나는 조금 더 치열해져야겠단 생각을 하며, 그녀의 문장을 아껴 읽었다. 조미료나 소스가 스며있지 않은, 그저 재료 본연의 맛을 내는 무언가를 질겅거리며 씹듯이. 그 은은한 달큼함을 기민하게 느끼려는 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