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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레네 Feb 12. 2023

어느 봄, 벚꽃에 대한 단상

금방 질 거 뭐 하러 그렇게 이쁘나

표지: 사진: UnsplashJ Lee





출처: 사진: UnsplashMak



그 봄, 나는 병원 앞 벤치에 앉아 하늘을 올려다보곤 했다. 날은 대체로 맑았고, 걱정은 크게 없었으며, 짝사랑이 근근이 진행 중이었다. 할머니는 관절 문제로 입원하신지 한 달 째였다. 칠십셋이라는 나이가 적진 않지만, 재활 훈련을 열심히 하면 괜찮단 소견이었다. 할머니와 단둘이 살던 나는 일주일에 두세 번 병원을 찾았다. 간병인을 따로 구했지만, 매일 보던 얼굴을 안 보니 어딘가 이상했다.


집에서 병원까진 버스로 약 40분이 걸렸다. 철없게도 나는 병원에 향하는 그 길이 좋았다. 버스에서 내다보는 풍경은 수채화처럼 맑았고, 선선한 바람과 가벼워진 옷차림은 마음을 들뜨게 했다. 그대로 나들이를 간다면야 더 좋았겠지만, 할머니를 보러 가는 것도 충분히 좋았다. 사과 주스, 뻥튀기, 도토리묵, 건포도가 든 백설기. 종종 할머니가 즐기던 음식을 사갔지만 반응은 시덥잖았다. 누렇고 쪼글쪼글한 얼굴은 무얼 기다리는 것처럼 내내 창 밖에 향했다. "냄새도 맡기 싫어, 너나 가져가 먹어." 나는 벤치에 앉아 깨끗하게 꾸며진 뜰을 보며 그 음식들을 먹었다. 맛만 좋았다.









어느 날. 정말 갑작스럽게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쇼크사였다. 장례는 곧장 병원에 딸린 식장에서 시작되었다. 커다란 화환들이 줄지어 입구에 세워지고, 곡소릴 내는 친척들이 오가고, 한 켠에 있는 주방에 채워져 있던 소주 궤짝이 금방 동났다. 그 안에서 나만큼 우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그야말로 물이 새는 장독처럼 하염없이 울었다. 온몸의 수분이 다 빠져나가 몸이 모래알처럼 따갑고 심장이 바짝바짝 타들어 갔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건 그때가 처음이었고, 그게 그렇게 갑작스러울 줄도 몰랐다.


너무 울면 손가락질을 받는다는 것도 그때 처음 알았다. 내가 너무 서글피 울면 할머니를 이승에 붙잡아 둘 수 있다며, 어른들은 우는 나를 달래고, 야단도 치고, 집에 돌려보내기도 했다.


그럴 때면 나는 장례식장 밖의 봄 볕에 내동댕이 쳐졌다. 목구멍으로 눈물을 끅끅 삼키며 사람들이 보든 말든 혼자 맘 놓고 울었다. 병원의 공원이란 대개 구색만 낸 정도로 작아, 음식을 혼자 먹던 그 벤치에 앉아야만 했다. 그게 더 슬퍼질 거 같아 피하고 싶었는데.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울다가 바라본 풍경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하늘은 파랗고, 벚꽃나무는 봄바람에 살랑살랑 다정한 손짓을 했다. 내가 좋아했던 그 풍경인데, 그때는 따사로운 봄볕마저 마치 형벌같이 느껴졌다. 어째서 이렇게 아름다운 날에 할머니를 앗아간 걸까. 하늘도 참 무심하다고 해야 하나. 비라도 주룩주룩 내렸더라면 내 마음의 빛깔과 딱 맞아떨어졌을 텐데, 이렇게 아름다울 일인가?


출처: 사진: UnsplashPaul Volkmer






벚꽃을 보면, 나는 그때의 그날을 떠올린다. 너무 아름다운데, 너무 큰 상실을 겪었던 이십 대 초반의 하얗게 불어 터진 얼굴을 한 나를. 마치 당신이 떠날 날을 알고 있던 것 같았던 우울했던 할머니를. 그 바람을. 그 볕을. 죽음이나 슬픔과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분홍빛의 탐스러운 나무를.


할머니를 떠나보낸 날 복스럽게 피었던 벚꽃은 불과 몇 주도 안 가 사라졌다. 그렇게 질 거 뭐 하러 이렇게 아름다울까. 허망하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이듬해, 나는 벚꽃을 기다렸다. 그렇게 찰나 동안일지라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게, 어쩐지 대단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어쩌다 그런 심경의 변화가 일어났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인생이란 그런 것이다. 그냥, 그런 것이다. 유한하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

피고, 지고. 또 피고, 지는 그 아름다운 찰나의 꽃을 보며 나는 얼마쯤 서글프지만 이제 더는 울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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