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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보선 Jun 05. 2021

남은 인생은 덤이다.

 살다 보면 무언가 잘 해내다가 어느 날 문득 나에게 주어진 모든 일들이 버겁게만 느껴지는 날들이 있다. 그것이 매일매일 반복되던 매우 사소하고 일상적인 것들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매일 나를 돌아보고 내 마음을 어루만지며 살아가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때때로 좌절감에 빠지곤 한다. 특히 내가 자주 빠져드는 상태는, 잘하고자 하는 생각에 눌려 아무것도 실행하지 못하게

되는 상태이다. 그때 게으름을 피우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나 자신에게 굉장한 자책감을 느끼게 되고 그것이 우울감으로 번져서 길게는 한 달 까지도 아무런 생산적인 일을 하지 못하게 될 때가 있다. 지금껏 이것이 패턴이 되어 삶의 추진력을 방해하는 요소가 되고 있는데, 인간이기에 이 패턴에 빠지지 않는 것은 포기해야만 할 것 같고, 그 대신 이 오류에 빠졌을 때 빨리 빠져나오는 나만의 방법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내가 우울감에 빠져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면 혼자 되뇌는 생각이 있다. 바로 지금부터 남은 인생을 덤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나는 어제 죽을 운명이었는데 가까스로 살아났고, 이제부터 남은 인생은 덤으로 주어진 것이라고 마인드 세팅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대화하듯 이야기한다.


 '쓸데없는 걱정하지 마. 넌 어제 죽었다고 생각해. 이미 죽은 너한테 왜 이 일을 성공적으로 해내지 못했냐고 아무도 책망하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마. 어차피 네가 죽으면 스스로 세운 목표도, 성공도 아무런 의미 없는 허상일 뿐이니 그것에 눌려 살아있는 지금을 고통으로 내몰지 마. 그리고 네 역할에도 압박감을 내려놔. 네가 죽으면 누군가는 너의 몫을 할 것이고, 그것에 맞춰서 이 세상은 잘 돌아갈 거야. 그러니 오늘은 너한테 덤으로 주어진 삶이라 생각하고 가볍게 살아내 봐. 너무 힘들면 쉬어도 돼. 충분히 쉬었다고 생각되면 정말 할 수 있는 만큼, 아주 조금만 해보자. 딱 한 보만 나아가 보자.'


 이렇게 스스로에게 이야기를 건네면 신기하게도 불안감에 들썩이던 마음이 서서히 가라앉는다. 그리고 이렇게 마인드 세팅을 하면 실패에 대한 두려움과 성과에 대한 압박감에서 순간 해방되어 한층 가벼워진 마음으로 새로운 것에 도전할 용기가 생긴다.

 또한 죽음을 떠올리면 삶의 허무에 빠질 것 같지만 오히려 삶에 대한 감사를 느낄 수 있다. 사소하게 생각하여 소홀했던 것들이 사실은 가장 소중한 것들이고, 너무 중요하게 여겨 심각함에 빠져 허우적대던 것들이 사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깨달음을 순간 얻게 된다.

 하지만 빨리 달려가기만 하는 일상이라는 기차에 올라타서 달리다 보면, 또 어느샌가 소중한 것과 흘려보내도 되는 것들은 주객이 전도되어 나를 괴롭히는 날이 어김없이 찾아온다. 그래서 나는 죽음을 친구처럼 항상 옆에 두려고 한다. 죽음은 일상의 기차를 멈추어주는 신호등의 역할을 해준다. 앞으로 빨리만 달리다가 엉뚱한 길로 새어버리지 않도록 인생길의 안내자가 되어준다.

 빛 속에서는 작은 빛은 볼 수 없지만,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는 아주 작은 빛도 인식할 수 있다. 이처럼 늘 살아 움직이는 일상 속에서는 삶의 작은 빛들은 제대로 볼 수 없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부러 죽음이라는 어둠을 가져와서 인생의 작은 빛들까지 찾아보려 한다. 내가 오늘을 행복하게 살아낼 이유를 찾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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