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유난히 좋아해서인지 겨울부터 봄을 기다리게 된다. 그래서였을까. 익숙한 길을 산책하는데 앙상한 나뭇가지만 있는 겨울나무들에게서 봄의 찬란함이 보였다. 내 기억 속에 고스란히 담겨있는 싱그러운 봄을 이 나무도 기억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스쳐갔다.
겨울나무의 앙상함을 보고 있자면 도무지 봄꽃이 상상이 되지 않는다. 마치 그대로 생명을 다하고 영원히 꽃을 피우지 못할 것만 같다. 하지만 그 아름답고 화려한 봄꽃은 그 어디에도 아닌, 저 마른 겨울나무 안에 이미 들어있다. 우리 눈에는 잎사귀가 다 떨어진 겨울나무로만 보이지만, 나무는 자신의 봄이 곧 올 것을 다 알고 있다는 듯 묵묵히 겨울을 지나고 있었다. 앙상한 모습으로 봄을 재촉하는 내 마음을 위로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서두르지 말라고, 봄이 오려면 겨울을 꼭 지내야 한다고 이야기해주듯이 내 마음을 쓰다듬었다.
봄은 겨울 안에 이미 모두 존재하고, 겨울은 봄 안에 이미 존재한다. 다만 우리 눈에만 보이지 않을 뿐이다. 우리 삶에 겨울이 찾아오면 봄이 내 안에 있음을 기억하며 슬퍼말고, 삶에 봄이 찾아오면 겨울 또한 찾아올 것을 기억하며 으스대지 말자. 묵묵히 순간을 충분히 감사하며 살아간다면 겨울나무처럼 찬바람 속에서도 평온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