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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보선 Jun 08. 2022

기권을 택하다.

최대한 천천히, 그리고 온전히

  내년이면 내 나이가 40, 말로만 듣던 불혹이다. 그럼 자그마치 40년을 내가 인생이라는 마라톤을 포기하지 않고 꽤나 성실하게 달려왔다는 것인데, 그렇게 달려왔음에도 내가 도달하려고 했던 결승점은 여전히 아득하기만 하다. 죽기 전에 그 지점을 통과할 수 있을지도 묘연하고, 여지껏처럼 달릴 생각을 하면 그냥 주저앉고 싶을 정도로 지쳐버렸다. 빨리 달려가는 사람의 우쭐거림을 보는 것에도, 뒤처진 사람을 보고 잠시 안도하는 나 자신을 보는 것에도 진절머리가 난달까.


 경주하듯 살아가는 인생에서 40년간 답을 찾지 못했다면, 같은 삶을 답습하듯 남은 인생을 살아갈 필요가 있을까 싶어 이제 그냥 경주를 그만두고 기권하려 한다. 이 소모적인 레이스에서 나는 빠지기로 선택했다. 이 또한 선택이 가능한 것이었는데 왜 나는 이제야 그걸 알게 되었을까. 더 이상 등수에 연연하지 않아도 되고, 수시로 시각을 확인하며 쫓기듯 달리지 않아도 괜찮다는 안도감이 나를 감쌌다. 결승점에 골인하지 않아도 괜찮은 인생을 살기로 선택하는 것이 이렇게 마음을 가볍게 해 줄 줄이야.


 그래도 아직 난 여전히 불쑥불쑥 자꾸만 달리는 본능이 올라와 다시 급해지려 한다. 40년을 뛰기만 했는데 걷는 것이 어색한 것이 당연할 수밖에. 내 맘에 조급함이 찾아올 때마다 더욱 천천히, 아니 아예 멈춰서 쉬고 가보려 한다. 뛰어오느라 모두 놓쳐버렸던 길가의 풀잎 하나 거르지 않고, 발밑의 모래 한 알까지도 온전히 느끼며 걸어가야지. 잊지 말자. 나의 영광스러운 기권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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