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uvable Sep 06. 2023

나를 알아가는 최고의 방법은 혼자 떠나는 여행이다

-혼자 여행하며 깨달은 것들에 대하여-

뭐든 시작이 어려운 법. 맥시멀리스트인 내가 5박 6일 동안 배낭 하나의 짐으로 동유럽 여행을 떠나기까지 큰 결심이 필요했다. 


동양인 여자라는 점에서 유럽을 홀로 여행한다는 사실이 조금 부담스러웠다. 이미 영국생활에서 마주한 수많은 인종 차별 덕분인가 어느새 나는 나 스스로를 색안경을 끼고 ‘인종차별 당하는 대상 = 동양인 =나’라는 공식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진짜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이 딱 잘 어울렸던 내가 많이 소심해지고 작아지기까지 딱 1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나의 꿈의 여행지인 동유럽을 가까운 영국에 살면서 왜 못 갔을까? 답은 간단하다. 망설였고 ‘영국에 오래 있을 거니까 나중에 가면 되지’라는 심리. 그 망할 ‘나중에’ 덕분에 디즈니에서 인턴 할 시절 바로 코앞에 있었던 유니버설스튜디오와 아바타 어트렉션을 타지 못했었는데. 거기에서도 난 배운 게 없었나 보다. 


한국으로 완전히 돌아갈 날이 정해진 후, 내 발등에는 불이 툭 하고 떨어졌다. 딱 3달, 정해진 예산과 불안정한 내 체력으로 어디까지 보고 갈 수 있을까? 언제 안 좋아 질지 모르는 내 상태가 제일 무서웠다. 하지만 그런 걱정을 하고 앉아있기에는 난 이제 진짜로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같이 갈 사람이 없으면 혼자라도 가야지!!라는 다짐을 하고, 바로 비엔나와 부다페스트 여행계획을 세웠다.


여행을 좋아하는 마음 하나로 이 코로나 시국에도, 관광 업계는 박봉이라는 인식에도 내가 좋아하니까 어쩔 수 없지 뭐 라며 석사까지 취득했는데, 아직까지 혼자 여행해 본 적이 없다는 게 새삼 부끄럽기도 했다. 혼자 하는 여행 계획은 생각보다 빠르게 준비되었다. 의견조율 할 필요가 없으니까 내 예산과 생활 패턴에 맞게 계획하면 되었으니 계획은 하루 만에 끝났다. 


그렇게 여행을 시작한 지 지금 3일째. 그동안 정말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동안 자랑을 하기 위해서 여행을 다녔던 걸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보복 관광’ 관심 있게 보고 있는 관광학 키워드인데 소비자의 보상심리에서 기인한 관광 형태이다. 열심히 일했으니까! 호캉스 60만 원 질러야지!, 언제 다시 올지 모르니까 제일 좋은 곳에서 자고 화려하고 럭셔리한 곳에서 식사해야지! 하는 그런 심리들 말이다. 그게 잘못되었다는 건 아니지만, 혼자 여행하며 제삼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사람들의 모습에서 나 자신을 반성하게 되었다.


멀리서 바라본 여행자들은 참 뚜렷하게 달랐다. 눈으로 바라보는 풍경을 있는 그대로 즐기는 사람들, 카메라를 통해서 세상을 보고 담는데 열중하는 사람들. 남는 건 사진뿐이라는 말처럼 사진은 참 중요하고 나도 정말 사진 찍는 걸 좋아한다. 특히 언니와 여행을 갈 때면 영혼이 빠질 듯이 사진을 찍는 게 일상이었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사진을 찍으면 확인을 하고 싶다. 내가 바라는 데로 사진이 잘 나왔을까? 안 그러면 다시 찍어야지! 이런 마음이 드는 순간, 그 여행지의 진면목에는 흥미가 없어진다. 그저 카메라에 담긴 ‘나’가 얼마나 아름답게 나왔는지가 중요해지기 때문이다.


혼자 하는 여행은 약간 반 강제로 카메라에 나를 담을 시간이 줄어들어 많은 관광지와 사람들을 관찰하는 시간이 생겼다. 대부분의 서양 관광객은 사진을 후다닥 찍고, 노을이 지는 강가에 앉아 사랑하는 사람들과 풍경을 감상하고 아무 데나 앉아서 그 시간을 있는 그대로 즐기는 모습이 대부분이었다.  반면에 동양인 관광객은 카메라 셔터소리밖에 안 들리고 마음에 드는 사진이 나온 즉시 그 자리를 떠났다. [이런 이유 때문인가, 서양인이 찍어준 내 사진을 보면 실망스럽기 그지없고, 동양인이 찍어준 사진을 보면 만족스럽더라.]


한국인 관광객이 몰린 곳에서 들리는 소리는 “다 찍으셨으면 바로 이동하시게요~” “다시 찍어줄까? 마음에 들어??” “고개를 저쪽으로 봐봐” 등의 것들이었다. 완전 내 모습을 보는 느낌이 들어서 부끄러운 마음도 들었다. 사람들이 점령하고 비켜주지 않아서 다른 곳으로 이동해 가며 사진 찍는 사람들을 보면서 마음이 불편했다. 심지어 세체니 온천에서는 사진을 왕창 찍고 온천 그늘에 앉아서 보정까지 끝마친 후에 바로 나가버리는 한국인 관광객도 많이 보였다. 이른 아침이라 고요한 공간을 깨는 소리들 "어머!!! 너무 예쁘다!!!" "레전드다 레전드!!" 신기한 듯 쳐다보는 서양인들의 마음이 이해가 가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나는 과거의 나를 다시 보게 되었고 주어진 순간과 공간을 완전히 즐기지 못했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여행 스타일을 생각해 본다면, 높은 구두를 좋아했기에 굽이 있는 신발을 신고 여행하거나 짧고 딱 달라붙는 치마를 좋아했지만 사실 굉장히 불편하고 발이 까져서 그것에 온통 신경이 쏠려 옷을 갈아입거나 반찬고를 덕지덕지 붙여가며 힘들게 여행했던 것 같다. 여행은 하면 할수록 나의 취향에 대해서 더 알아갈 수 있다. 소화를 잘 못 시키고 멀미가 심한 나에게 딱 달라붙고 배를 조이는 옷은 최악의 옷이 되었고, 바람에 심하게 흩날리는 짧은 치마도 이제는 사절이다. 발이 편해야 열심히 걸어 다닐 수 있으니 스타일에 맞지 않더라도 플랫슈즈나 운동화만 신는다. 경험과 시간에 의해서 사람의 가치관과 행동은 점점 변해가는데, 이렇게 변화된 내 모습이 꽤나 마음에 들었다. '나' 그대로의 자연스러움을 사랑해 줄 수 있게 된 느낌이랄까. 화장을 하지 않아도 전혀 부끄럽지 않고, 강렬한 햇빛에 탄 내 구릿빛 피부를 왜 하얘지지 않는지 탓하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혼자 여행하니 온전히 나에게 집중할 수 있었다. 다른 사람을 신경 쓰지 않아도 돼서 어쩔 수 없이 소비되는 감정과 체력도 여행에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계획이 틀어져도 누구랑 싸우거나 틀어질 걱정을 할 필요가 없고 음식에 예민한 사람인데, 굳이 꼭 그 나라 전통음식을 시도해 보는 등의 노력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래서 혼자 하는 여행은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 찬 여행이 되었다. 마음에 드는 장소가 있으면 몇 시간이고 구경하고, 눈에 끝없이 담을 수 있는 그런 여행. 물론 불편한 점도 있지만 그런 것을 커버할 정도로 내 취향에 맞는 여행이 되어있더라. 혼자 하는 여행을 이제야 해봤다니 후회도 되고 더 자주 혼자 떠나봐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우물 안 개구리가 우물을 탈출한 느낌이 이런 것이었으려나?


정말 힘들 때 결심한 홀로 떠난 여행은, 내가 얼마나 여행을 사랑했는지, 용감했었는지 그리고 미루는 마음으로 포기해 버린 것들이 얼마나 소중한 것들이었는지 다시 생각하게 했다. 최근 빠진 유튜브 채널에서 “인생은 아이스크림과 같아서 녹아버리기 전에 빨리 먹어야 한다”라고 한 말이 큰 공감이 되었다. 혼자 여행하면서 나는 잘 못 찍는 셀카를 찍고, 이상한 전신사진을 찍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 마음에 드는 사진들이다. 예쁘게 가공된 사진보다 내 모습 그대로를 담아낸 사진들이 그날의 기억을 더욱 생생하게 살려주는 것 같아서 좀 못나 보여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여행에서 장소를 온전히 내 것으로 감상하는 법, 여유로워지는 법,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잃지 말자! 하는 다짐과 깨달음으로 꽉 채웠다. 



작가의 이전글 영국 치과 도전기 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