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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은주 Oct 13. 2021

내 감정에 이름 붙이기

외로움을 직접 만났다.

연휴는 가족과 길게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이 기간을 잘 보내면 뿌듯함, 희열, 보람, 즐거움이 있지만 잘 못 보내면 우울감, 좌절감, 힘듦, 고통이 따른다. 


첫 번째 연휴는 즐거웠는데 두 번째 연휴는 힘들었다. 즐겁게 보내기 위해 일정을 잡았지만 사정상 미뤄졌다. 그래도 다른 놀거리들을 찾고 머릿속에 저정해 놨는데 사람의 힘으로 되지 않는 일이 생겼다.


It was rainny!



척척하게 내리는 비를 바라보니 답답함이 느껴질 정도로 마음이 가라앉았다. 결코 좋은 일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내가 좋아하는 일로 풀기로 작정하고 행동에 나섰다.


고르고 고른 방법이 카페 가서 수다 떨기다. 시원하게 풀어내려고 갔는데 카페 사장님은 나보다 더 가라앉아있었다. 선택한 방법이 망했다.


Oh, My God!!!!!!



재미없는 카페에 얼마나 있었을까? 비가 시원하게 내리기 시작했다. 우산 안 가지고 왔는데..... 내 마음처럼 되는 게 없네. 힘들었다.


이럴 때 더 힘들어지는 법을 잘 알고 있다.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들을 만들어서 대답을 못하면 된다. 그럼 아주 완벽하게 힘들어진다. 


내가 왜 살고 있는지, 지금 어디에 있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가족 안에서 나는 어떤 존재인지 등등 직접 만나서 물어보자니 마음이 힘들고 안 물어보자니 답답한 질문을 하면서 마음의 땅굴을 파면 된다. 나에게 쉬운 일이다.


시원하게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한 일이라곤 더 힘들어지는 짓을 하는 것이었다. 힘드니까 집에 가고 싶지 않았다. 집에서 김씨들과 눈치 보면서 복닥일 생각하니 답답함이 날 결박했다. 


하지만 갈 곳이 없었다. 집으로 돌아갔다.


김남매는 발랄했다. 김집사가 점심을 먹인 덕분에 일거리가 없어서 수월했다. 그런데도 내 마음은 무거웠다. 무엇이 나를 이토록 힘들게 하는지 알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리고 밑도 끝도 없이 남편이 무언가 잘못한 것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뭐든 찾아내서 남편 탓을 하면 마음이 편해질 것만 같았다.


기억을 되돌려 남편 탓을 찾아냈다. 이제 남편 때문에 힘들다는 것을 쏟아 붓기만 하면 된다. 그전에 확실하게 하기 위해 피드백을 해보니 남편의 행동은 깔끔하고 완벽했다.


이것은 남 탓을 하기 위해 만들어낸 나의 왜곡된 기억이었다. 남편은 잘못하지 않았다. 마음이 빨리 가벼워지고 싶은 바람에 시작한 잘못된 방법이었다.


그러면 내가 느끼는 지금 이 것, 이 감정, 이 마음은 무엇일까? 지금 내 상태가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그래서 돌아가서 되짚고 다시 돌아가기를 반복한 결과 감정에 이름을 붙일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지금 외롭습니다.



외로움을 우울함으로 포장해 놓고 기억을 왜곡하여 먹잇감 노리는 하이에나처럼 남편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어떻게든 남편에게서 원인을 찾으려고 했던 나 자신이 한심했다.


하지만 외로움으로 시작한 부정적 감정의 가지치기를 멈추고 싶었기 때문에 자책은 잠깐 했다. 그리고 외로움으로 돌아갔다.


왜 외로운지, 어떻게 해야 외로움에서 벗어나고 마음이 가벼워질 수 있는지 고민했다. 그리고 머리를 굴리는데 마음에서 변화가 감지되었다. 음? 마음이 말랑말랑 해졌네? 뭐지? 왜 이러지?


내 감정에 이름을 붙였을 때, 마음은 진짜가 되어 나에게 다가왔다.



이래서 감정에 이름 붙이기를 하나 보다. 어린아이들이 자신의 감정을 알고 적절히 반응 및 대응하기 위한 훈련법으로 알고 있었는데 n살인 나에게도 적용이 되었다.


내 마음이 무엇인지 모르고 큰 나 같은 n살이 감정에 이름 붙이기로 마음이 편해지다니!!! 놀라운 일이었다. 이름을 붙여 줬을 뿐인데 감정은 새로운 에너지를 뿜어냈다. 알았으니 다른 일을 하라는 신호처럼 말이다.


나의 약한 에너지 때문에 영향을 받은 남편과 아이들에게 미안했다. 남편은 나의 반응에 부담을 느꼈고 아이들은 뭔지 모르겠지만 그냥 엄마의 눈치를 봐야 했다. 하루가 다 지나서야 깨달았으니 어쩔 수 없다. 


자고 일어나서 잘해야지!! 그리고 자고 일어났더니 거짓말처럼 좋아졌다. 외로움을 숨겼다기보다는 스스로 위로해주고 다독였다는 느낌? 이 기분 아주 좋았다.


다음날 맞이한 아침은 여전히 흐린 날씨였지만 마음은 강해진 느낌이었다. 가족에게 건강한 에너지를 전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전과는 다른 마음가짐으로 하루를 보냈다.


그리고 다시 자고 일어나서 맞이한 아침의 맑은 하늘을 보니, 내 외로움의 원인을 알 것만 같다.


나는 날궂이를 했다! 으이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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