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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뇽알 May 28. 2022

집에 오는 길은 때론 너무 길어

쿠스코에서 리마로, 리마에서 LA로, LA에서 인천으로

 쿠스코에서 마지막이자, 페루에서의 마지막 날 아침이 밝았다. 고산병과 재회한 뇽의 컨디션은 하룻밤 사이에 좋아지지 않았지만, 마지막 날인데 아침의 아르마스 광장을 못 본 채로 귀국한다면 두고두고 후회할 일이다. 왼발에 용(勇), 오른발에 기(氣)를 실은 뇽이 느릿느릿 앞장을 섰고, 아르마스 광장은 오늘도 변함없이 파란 하늘 아래 눈부신 광채를 뽐내며 우리를 맞이해주었다. 아무래도 이번 여행은 날씨운에 모든 것을 바친 대신 그만큼의 건강운을 뺏긴 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


폐하, 기침하셨습니까.

 

 쿠스코에서 아침을 맞이한 것이 이 날로 겨우 네 번째였지 , 나흘 동안 같은 길모퉁이를 지나 같은 하늘 아래 파차쿠 동상과 성당을 보며 하루를 시작했던 우리는 이제 내일부터 이 광경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이제 지옥철과 미세먼지, 그리고 열흘 동안 밀린 일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는 건가. 페루와 이별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속상한데 다가올 일상의 풍경은 왜 벌써부터 암울한지 모르겠다. 사실 여행 일정이 빡빡한 관계로 여기서 멍하니 앉아있었던 시간이 길지 않아 더 아쉽기도 했다.


 마지막 날이라서 그런가, 신기하게도 마치 약속한 것처럼 광장에서 꽌또 아저씨와 마주쳤다. 와카치나 에서부터 쭉 가는 곳마다 한 번씩은 만났었던, 페루 여행에서 만난 가장 중요한 인연인데 서로 끝까지 이름은 묻지 않고 어디 가는지, 비용은 얼마나 드는지 등 정보만 교환했다는 사실이 재미있다 - 우리보다 해외여행  경험이 훨씬 많을뿐더러 매번 아저씨 쪽이 가성비 높은 선택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정보 수집에 대한 아저씨의 열의는 사그라들지 않았다 -


 꽌또 아저씨는 아들과 둘이서 아르마스 광장을 산책 중이었는데, 함께 온 부인과 처제가 쿠스코에 처음 도착했을 때 고산병으로 고생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분들은 놀랍게도 우리와 전혀 다른 방법으로 고산병을 이겨냈다고 하니, 그것은 속설로만 들었던 비아그라 복용이었다.  

 그분들이 그걸로 효과를 봤다는 이야기를 듣자 고산병으로 도합 사흘을 고생한 뇽 생각에 너무나 안타깝고 억울했다. 예방 접종하러 갔던 병원에서는 왜 이런 정보를 알려주지 않았을까. 우리나라나 페루나 사실 고산병을 크게 신경 쓸 필요가 없어서 치료 방법을 연구하지 않는 걸까 - 우리나라에는 그 정도의 고지대가 없고 페루 사람들 중에는 고산병 환자가 없으니 말이다 - 이런 꿀 정보 대신 코카 차만 추천한 여행 책자들은 반성하세요. 물론 산소캔 판매처를 알려 준 초록창은 사랑합니다.

 이번 여행에서 고산병 환자들을 보고 내린 결론은 "비상약으로 비아그라를 준비하시고, 쿠스코에 도착하면 오리온 마트부터 가자"입니다. 다만 오리온 마트까지 가는 길이 도보로 꽤 걸리니, 부디 일행 중 고산병에 강하고 길눈 또한 어둡지 않은 사람이 함께 하길 빌며.


 마지막 날이니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코코펠리의 조식을 먹었다. 리마 숙소의 조식 - 냉장 빵에 충격을 받은 이후 쿠스코에서는 주로 외식을 했는데, 코코펠리의 조식은 그래도 일반적인 게스트하우스 조식 메뉴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무난한 구성과 맛이었다. 특히 계란과 시리얼이 있어서 좋았다. 리마에서 우리가 머물렀던 그 동네에서만 냉장 빵을 선호했던 걸까? 나중에 페루에 다시 오게 된다면 다른 지역은 대충 가더라도 리마에서의 아침식사는 각별히 신경 써서 계획하리라.


있을 건 다 있는 코코펠리의 아침식사


 침대를 정리하고, 처음 도착했을 때보다 무거워진 배낭을 짊어진 채 잠시 객실을 둘러보았다. 나흘 동안 우리의 집이었던 코코펠리. 화장실 딸린 프라이빗 룸이어서 아무 때나 씻고 잠들 수 있다는 게 좋았던 반면 조명이 어두웠고 난방기기가 없어 밤에 추웠던 건 아쉬웠다. 처음 도착하자마자 뇽이 고산병으로 몸져누웠던 장면이 아직도 생생한데 벌써 떠날 때가 되었다니.

 하지만 이 와중에 리마 구시가지 구경, 미라플로레스에 있는 사랑의 공원 산책, 저녁 외식까지 일정이 줄줄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에 객실을 향한 아련한 시선은 일 분 만에 거두게 되었다. 어디 그뿐인가. 귀국하면 하루도 쉬지 못하고 출근할 처지다. 바쁜 한국인들이여, 아쉬운 마음일랑 비행기 탑승 이후에나 곱씹어보기로 하자.


 코코펠리에서 체크아웃을 하면서 콜택시를 요청했다. 콜 요금이 생각보다 비쌌지만, 온몸을 짓누르는 거북이 등딱지와 양손의 비닐봉지, 쇼핑백을 생각하면 대안은 없다. 차창 밖으로 진녹색의 노점과 가로등이 지나고 저 멀리 뭉게구름 아래 친체로, 그리고 아뿔싸! 쿠스코에서의 마지막 쇼핑 계획이 스쳐갔다. 전날에는 생각보다 쿠스코에 늦게 도착해서 식사도 간신히 했고, 오늘 아침에는 마지막 날이라며 아르마스 광장을 돌고 조식 먹고 나니 도무지 쇼핑할 짬이 나질 않았다. 이제 남은 찬스는 리마와 공항뿐인데 과연 해낼 수 있을 것인가!


차창 밖으로 멀어지는 쿠스코


 사실 뭘 산다고 해도 그걸 쑤셔 넣을 공간의 여력이 있는지 의문 이건만, 물욕이라는 녀석은 쉴 틈을 주지 않는다. '여행 기념', '이것이 마지막', '날이면 날마다 올 수 없는 페루'라는 말을 속삭이며 심금을 울리는 나쁜 놈. 정작 여행에서 돌아와 몇 년이 흐른 뒤, 온라인 쇼핑으로 웬만한 걸 주문할 수 있게 되자 슬그머니 자취를 감춰버린 싱거운 녀석인데 그때는 그리 뜨겁게 타올랐더랬다.


 이제 진짜로 쿠스코를 떠난다고 생각했건만, 작별의 시간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길었다. 길어도 너무 길었다. 공항 대기석에 앉아 비행기 스케줄표 화면 방향으로 망부석이 된 지가 체감으로는 몇 시간이다. 관광하는 동안 잠시 잊고 지냈던 남미 나무늘보들의 무통보 랜덤 스케줄 때문에 뇽의 속이 새카맣게 타들어갔다. 때 되면 오겠지, 하고 태평하게 생각하기에는 우리의 남은 일정이 너무 촉박한 탓이었다.


제발 내 비행기 잘 있다고 한 마디만 해 줘요


 와중에 이 공간에서 비행기 스케줄 때문에 속 끓이는 사람이라곤 우리 밖에 없다는 사실에 뇽은 울분을 터뜨렸다. 진짜 우리 둘을 제외하고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득도한 것 같았다. 비행기가 늦게 오든지 말든지 세상 즐거운 얼굴로 대화를 나누었다. 그들은 마치 '살다 보면 비행기가 연착도 되고, 내가 예약한 자리가 없어질 수도 있고, 또 언젠가는 기적적으로 남는 자리도 생기고 그런 거 아니겠어?'라고 말하는 듯했다 - 아니 그럴 거면 예약이라는 시스템은 왜 존재하는 건가요, 하고 나 한국인은 묻고 싶습니다만 - 두 사람의 속이 파삭파삭 잿더미가 되었을 때쯤 비행기가 귀하신 몸을 드러냈고, 덕분에 창밖으로 멀어져 가는 쿠스코를 보면서 아련한 마음은커녕 잠만 잘 잤다.
 

 다시 리마에 왔다. 이 도시에서 여행의 시작과 중간과 끝을 다 보내게 된 터라 친숙하기도 하고 싱숭생숭한 마음도 들었다. 배낭을 공항에 맡기고 비행기 티켓에 문제가 없는지 확인한 후에 움직이려는데, 혼자 온 듯한 한국인 여행자가 말을 걸었다. 혹시 구시가지에 갈 계획이라면 택시를 함께 타자는 제안이었다.

 그때만 해도 티켓 확인을 먼저 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거절했건만 그분이 떠난 지 10분도 되지 않아 후회하고 말았다. 막상 티켓 확인 줄에 서 보니 너무 오래 걸려서 이대로 공항에서 하루를 마감할 기세였기 때문이다. 리마에 처음 도착했을 때 말고는 한 번도 공항, 터미널에서 일이 빨리 해결된 적이 없었는데 우리는 무엇을 기대했던 것일까. 택시비와 시간을 모두 날려버렸다는 생각에 씁쓸해할 겨를도 없이 서둘러 우버를 호출했다.


 에스빠뇰만 가능한 기사님과 영어만 알아듣는 관광객을 실은 침묵의 택시가 구시가지에 들어섰다. 말이 안 통하는 와중에도 서로 신뢰를 주기 위해 만면에 미소를 잃지 않았다는 사실이 웃프다. 기사님이 뭐라 뭐라 말씀하시며 정면을 손으로 가리키는 걸 보니 거의 도착한 모양이다. 차창 밖으로 쿠스코에 비해 톤 다운된 흐린 하늘과 연한 파스텔톤의 유럽식 건물들이 보였다.


 

유럽인 듯 유럽 아닌

 

 구시가지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건축물들이 유럽식이라는 사실이 나에게는 떨떠름하게 느껴졌다. 아마도 페루에 처음 당도하자마자 여기에 왔다면 "이야, 외국이네!"하고 마냥 좋아했을지도 모른다. 쨍하게 파란 하늘과 채도가 높은 진녹색, 진청색의 페인트로 칠한 낮은 건물이 잘 어울렸던 쿠스코처럼, 이곳의 건물들도 흐린 하늘빛과 어우러져 세련된 분위기를 자아냈다. 하지만 나스카와 쿠스코에 심취한 내 눈에는 그 모습이 이질적으로 다가올 뿐이었다.


 광장에 있는 대통령궁과 대성당의 모습 또한 스페인 느낌이 물씬 풍겼다. 스페인에 가 보고 싶긴 했지만 굳이 페루에서 스페인의 모습을 찾고 싶지는 않았다. 아무리 예뻐도 '식민 시절의 잔재'라고 하면 멈칫하게 되는 건 일제 강점기라는 어두운 시절을 보낸 나라의 국민으로서 당연한 반응이 아닐까. 물론 건물 그 자체의 아름다움을 순수하게 바라보는 시선을 비난할 생각은 없다. 그저 리마 구시가지의 모습에서 크게 매력을 느끼지 못한 관광객의 변명이다.

  

 이 광장에서 가장 유명한 건물은 대통령궁과 리마 대성당이다. 대통령궁은 문이 굳게 닫혀있어서 철창 틈새로 잠시 건너다보았고, 리마 대성당은 예배와 결혼식으로 인해 혼잡한 상태여서 겉핥기로 둘러보았다. 이곳에서 정복자 피사로의 무덤을 많이들 본다고 하던데, 우리는 서로 눈을 마주친 채 "봐야 하나? 정복자 놈을? 굳이?"라며 생략했다. 성당 내부에 있는 수많은 조각상들만 해도 볼거리로 충분했다. 그중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아마도 성모상으로 추정되는 조각상이었다.


로맨스 판타지, 아니 성모상인데요

  

 이보다 화려할 수 없다. 풍성한 레이스와 보석을 온몸에 휘감고 태양신처럼 위풍당당한 금빛 태양을 머리에 인 채 황금으로 세공한 검을 들고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라니. 정말 로맨스 판타지에 나오는 비운의 여왕이 아니라 성당에 있는 조각상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우리나라의 소박하고 단정한 조각상들과 정반대인 모양새를 보니 예술에 국민 정서, 취향이 반영된다는 사실이 실감 나서 재미있다. 종교인들이 결혼식 장소로 교회나 성당을 택하는 경우는 많이 봤는데, 이곳은 어지간한 호텔 예식장보다 으리으리해서 비종교인들도 탐낼 만하다. 이 날 목격한, 드레스와 슈트를 각각 갖춰 입은 깜찍한 화동들을 일곱 명이나 거느린 부유한 커플의 결혼식이 성당의 압도적인 자태와 꽤 잘 어울렸다.


 뜨뜻미지근한 구시가지 관광을 마치고 마지막 코스인 미라플로레스, 사랑의 공원에 왔다. 낙조가 그렇게 아름답다는데 우리는 낙조가 드리울 때까지 머무를 수 없어, 어슴푸레하게 푸른빛 하늘과 바다를 배경으로 키스하는 조각상을 보았다.



 이 작품의 이름은 따로 없고, 그저 '키스하는 조각상'이라는 직관적인 명칭으로만 알려져 있다. 아마도 낙조가 붉게 드리웠을 때 보면 좀 더 그윽한 분위기를 풍겼겠지만, 약간 채도가 낮아진 오후의 하늘과 뿌연 바다 배경으로도 충분히 멋있었다.  

 특히 여행의 마지막 날 이 작품을 보게 되어 좋았다. 조각상을 보고 나에게 가장 강렬하게 와닿은 키워드는 '함께'라는 것이었다. 열정적인 사랑의 표현보다도 두 사람이 빈틈없이 밀착된 모습이 따스하게 다가왔다. 조각상을 보고 있노라니 문득 여정을 마치고 함께 돌아갈 사람과, 함께 돌아갈 집이 있다는 사실이 떠올라 행복해졌다. 우리는 서로 대화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나란히 서서 조각상을 바라보는 시간이 더없이 평화로웠다. 이 조각상은 꼭 여행의 마지막 날에 보기를 추천한다.


 페루에서의 마지막 저녁 식사를 위해 여행 첫날 구경했던 해안 절벽의 쇼핑몰로 천천히 걸어갔다. 원래의 계획은 첫날 찜해놨던 전망 좋은 레스토랑에 가는 것이었지만, 쿠스코를 떠나기 전에 나무늘보들이 유발한 스트레스로 인해 뇽의 위장 상태가 말이 아니었던 터라 빵이나 현지식을 먹는 것을 주저하게 되었다. 다행히도 쇼핑몰 내 수많은 음식점 중에 'KO★STYLE'이라는 글씨를 써 붙이고 한식을 파는 집이 있었다. 식당 내부가 깨끗해서 일단 합격이다. 페루 사람들에게 한국인의 존재를 인식시켜 준 <꽃청춘>과 누적 한국인 관광객들에게 새삼 감사하며 자리를 잡았다.


전율이 이는 고향의 맛


  'KO STYLE' 이라지만 메뉴는 퓨전이었다. 메뉴판에 일식과 타이 식단이 함께 섞여있어 애매한 느낌이었지만 그래도 그 틈에 'BULGOGI'라고 정확하게 표기한 메뉴가 있었으니, 너는 한식이렷다. 정통 느낌은 아니었으나 수북한 쌈채소와 함께 등장한 '불고기'의 아름다움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오랜만에 맛보는 간장 양념 고기와 파릇파릇 쌈채소의 조화는 신토불이 노래를 떼창 하고 싶게 좋았다. 그래, 우리 몸엔 우리 거라는데 남의 음식 찾고 다녀서 그동안 죄송했습니다…. 입맛을 잃은 뇽에게도 한 스푼의 위로가 되었다. 물론 식사를 마친 후에 끝내 과민성 대장증후군의 공격을 피할 수 없었다는 사실은 가슴 아프지만.


 미라플로레스 스타벅스에서 선물용 원두를 한 봉지 챙기고 공항 셔틀버스에 올랐다. LA행 비행기 탑승 전에 야마, 알파카 인형을 더 사고자 공항을 누비고 다녔는데, 이럴 수가! 내 사랑 야마들은 어디로 가고 야마의 탈을 쓴 못난이들이 손님 하나 없는 가게를 지키고 있었다. 보통 기념품이라는 것은 현지에서 못 사도 공항에서 웬만큼 커버가 되지 않던가? 놀랍게도 호르헤 차베스 공항 기념품의 품질은 우리의 상식을 철저히 박살 냈다. 그 흔한 머리끈조차 탄성을 잃어 흐물흐물해 보였다. 이러려고 쿠스코에서 그토록 지름신이 속삭였던가. 귀국한 뒤에는 쓸 수도 없는 페루 화폐를 지갑에 가득 품은 채 씁쓸한 발걸음을 돌렸다.  

 탑승 대기줄에서 우리 앞에 선 젊은 여성들이 신고 있는, 알록달록한 털실로 장식된 잉카 스타일 스니커즈가 너무 예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저분들은 쇼핑에 성공했구나! 부럽다… 그런데 그들은 신발뿐 아니라 여행지조차도 우리가 범접할 수 없는 선을 넘었던 것이 해발 5,200m를 자랑하는 무지개 산, 비니쿤카에 다녀온 사람들이었다. 뇽이 무릎을 꿇은 친체로가 3,800m였는데… 세상 어떤 절경이라도 목숨을 걸 수는 없다. 비니쿤카는 평생 모니터로만 관람하기로 하자.


 LA로 향하는 라탐 항공 비행기에서는 이번에도 기내식을 두 번 제공했고 - 이번에도 한 끼는 오믈렛이었다 - 나는 미라플로레스에서 먹은 불고기 위로 두 끼 식사를 차곡차곡 쌓은 다음 LA에 내리자마자 <판다 익스프레스>에 가서 메뉴판을 뒤적거렸다. 그렇게 꼼짝하지 않고 먹잠을 반복하는 동안에도 소화는 계속된다니, 이것이 인체의 신비! 아니 내 몸의 신비라고 하겠다. 심지어 맛있기는 또 왜 그렇게 맛있단 말인가. 믿고 먹는 프랜차이즈의 단짠 양념이 미각 세포를 뒤흔들었다. 이렇게 일상으로 돌아온다. 현지식에서 프랜차이즈로, 한식으로. 미처 발길이 닿기도 전에 혓바닥이 고국의 언저리를 스쳤다.


 LA까지 왔으면 이제 집에 다 온 거나 다름없지,라고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천조국을 호락호락하게 보지 말라! 그 땅을 떠난대도 발목 한번 잡아야 미국이다. 이번에도 뇽의 티켓에 원인 불명의 X 표시가 떠서 한번 덜미를 잡힌 데다, 두 번째로 포로가 된 것은 놀랍게도 내 배낭이었다.

 전자기기도 없고 명품은커녕 냄새나는 바지와 티셔츠 쪼가리만 한가득 인걸요?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검색대 위로 끌려 나온 것은 상상조차 해본 적 없는 놈들이었다. 살리네라스에서 기념이라고 마구 쓸어 담았던 작고 소중한 내 소금 봉지들이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officer Han'이라고 적힌 네모난 명찰을 단 근엄한 얼굴의 직원이 소금 봉지를 집어 들고 입을 열었다. 귀에 쏙쏙 들어오는 우리말이 반가웠으나 내용은 전혀 안 반가웠다. 이런 분말류는 공항 검색대에서 마약으로 의심받을 수 있으며, 별도의 검사를 거쳐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소금 봉지들은 한 선생님의 손에 각각 귀퉁이가 잘린 채 선물의 지위를 잃고 얌전히 검사를 받았다.

  혹시나는 무슨, 역시나 소금이잖아요. 한 선생님은 예의 신중한 태도로 테이프를 하나하나 붙인 봉지를 되돌려주었고, 그 소금들은 4년이 지난 지금까지 어디에도 입양가지 못하고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마지막 관문 대한항공 비행기에 탑승했다. 우리가 앉은 좌석 주변에 한국인들이 대거 포진해있었고, 첫 기내식 메뉴가 나올 때 모두가 한 마음으로 비빔밥을 주문했다. 나물과 고추장을 이렇게 간절한 마음으로 찾게 될 줄이야. 그림 같은 이국의 풍경을 떠나는 게 아쉽지만 최소 음식이라도 집에 돌아와야 할 이유가 되어줘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이 순간, 마법처럼 한국


 귀국해서 한잠 자고 나니 바로 일상의 시작이요, 지옥철 탑승이었다. 생활에 치어 여행 후기를 정리하는 것조차 몇 개월이 걸렸지만, 지루하고 무기력한 날에 문득 휴대폰을 열고 쿠스코의 하늘을 들여다보면 '아, 내가 여기에 다녀왔었지'하고 감상에 젖어들었다. 이렇게 먼 나라에 가장 가까운 사람과 다녀왔고, 그때 함께 보았던 것들을 이야기하고 추억할 수 있다는 것은 특히나 축복이다.  


 친구와 또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코시국으로 멈춰있었던 해외여행의 바람이 다시 불어온다. 컴퓨터 바탕화면에 랜덤으로 뜨는 멋진 풍경들을 보며 우리는 다시금 낯선 언어와 얼굴이 가득한 바깥세상을 꿈꾼다. 가까운 미래에 티켓을 예매하고, 유적지와 맛집 위치를 검색하고, 운동화를 새로 사서 떠날 것이다. 이번에도 둘이 함께.  


<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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