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이로 Sep 14. 2023

딸보다 손녀를 더 좋아하는 엄마 미워

곧 엄마의 생일이 다가온다.


이번엔 엄마의 환갑이라 다른 때보다 좀 더 특별한 생일잔치를 준비해야 한다.


슬쩍 떠보니 딱 뻔한 환갑잔치를 하고 싶어 보였다.


엄마는 카카오톡에 들어가더니 친구의 프로필사진을 바삐 내게 보여준다.


자식들한테 받은 선물, 돈케이크, 돈부채, 돈꽃 등과 한정식 룸 벽에 걸린 "꽃보다 아름다운 ○○○여사의 환갑을 축하합니다. 인생은 60부터!"라는 현수막 사진들.


국룰처럼 자리 잡고  있는 이 '공장식' 환갑잔치가 나쁘다 생각하지 않는다.


클래식은 영원하다는 말이 왜 있겠나.


때론 뻔한 트렌드에 나도 한번 편승하는 게 편하고 좋을 때가 있는 것이다.


당이야 예약하면 되는데 평범한 생일도 아니니 점심만 먹고 헤어지는 건가 싶어서 언니에게 물어봤다.


언니는 역시나 점심 일정만 생각했고 그 이후로는 따로 생각한 적 없다고 했다.


언니는 4살 조카의 낮잠 시간을 아주 중시하는데, 거의 예외 없이 2-3시에 아기를 재운다.


난 아기가 없는 입장으로 하루 정도 낮잠을 안 재우면 어떤가 싶은데 실제 키우는 사람의 양육 가치관이기도 하고 낮에 아기가 안 자면 밤까지 컨디션이 안 좋고 칭얼거려 힘들다니까 그렇구나 한다.


그래도 이런 날까지 그놈의 낮잠 타령을 하니까 서운하고 속상했다.


애기 낮잠은 오늘 안 자도 내일 자면 되고, 그깟 거 하루 안 잔다고 아기의 성장에 유의미한 영향을 주지 않는데.


엄마의 환갑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고.


우선 알겠다고 답장을 했지만 3분 뒤 다시 톡을 했다.



그래도 환갑인데 엄마가 밥만 먹고 헤어지면 서운해하지 않을까?






엄마 핑계를 댔지만 내 마음속 감정이기도 했다.


언니는 고민하더니 그럼 밥 먹고 나서 조카는 형부 보고 데리고 집 가라고 하고, 엄마랑 언니랑 나랑 여자 세명 끼리만 근처 호텔 스파 가서 마사지받고 하룻밤 자고 오는 걸 제안했다.


이거지! 난 그저 모녀 셋이서 시간 보내는 것만 바랬는데 언니가 마사지까지 생각해 낸 게 너무 기특(?)하고 만족스러웠다.


며칠 뒤 오늘, 엄마와 통화할 일이 있어서 전화한 김에 기대에 차서 물었다.


"엄마, 생일 때 식사 하고 언니랑 엄마랑 나랑 셋이 어디서 하룻밤 자고 오는 것 어때??"


난 당연히 오케이, 콜!을 기다렸는데.


"애기도 같이 가는 거야?"


"아니. 애기는 형부가 데려가고 우리 셋 이만!"


"애기랑 같이 가야 재밌지.. 그냥 담에 가자."




부푼 기대가 산산조각이 났다.


언니의 결혼, 그리고 나의 결혼 이후에 오랫동안 이 순간을 꿈꿔왔는데. 나만의 꿈이었구나.


무척 서운하고 속상했다.


이렇게 시간 내기 쉽지 않은데.


다른 엄마들 같으면 자식이 같이 이렇게 하자면 바로 좋다고 할 것 같은데.


딸들이 여태 크면서 엄마한테 너무 효도를 했나.


너무 엄마 모시고 여기저기 많이 다닌 건가.


리가, 내가 엄마에게 희소하지 않은! 언제나 available 한 존재인 걸까!



평소 두통이 없는 내가 지금은 머리가 지끈거린다.


너무 충격을 받았나 보다.


손녀보다 못한 딸이라니.


부아가 치밀고 화가 난다.



다음번엔 절대 엄마한테 먼저 여행 가자고 안 할 거다.


엄마가 같이 가자고 먼저 말해도 한 번은 거절할 거다.


엄마가 밉다.




#별별챌린지 #글로성장연구소

매거진의 이전글 서른넷 자식을 보는 엄마의 한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