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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igjeje Nov 25. 2023

그녀의 선택

그녀가 며느리를 선택한 것은 결코  마음에 들어서가 아니었다. 아들에 대한 사랑으로 배려를 한 것도 아니었다. 아들의 운명이 그 여자를 선택해야 좋다고 하니 양보한 척한 것뿐이었다. 그녀의 선택은 성공이었다.


그녀의 며느리는 벼락치기 결혼을 한 후 신혼 생활도 없이 아이 둘을 낳을 때까지 남편과 떨어져 친정에서  살아야 했다. 이 또한 그녀의 바람대로 이루어졌다. 그녀의 아들은 학업을 위해 아내와 아이들과 떨어져 그녀의 곁에 있어야 했다. 그녀는 이 조건을 걸고 학업 중인 아들의 결혼을 허락했다.

며느리는 결혼과 동시에 남편의 보살핌이나 사랑대신 기다림과 그리움에 대한 의미를 먼저 만나야 했다. 학업을 무사히 마치고 그녀가 원하는 아들이 된 후에야 며느리는 남편이 있는 그녀의 집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녀는 자식을 열명이나 몸에 품었던 뚝심 좋은 여자였다. 둘째는 세상에 나오자마자 그녀의 곁을 떠났지만 그 아픔이 세상에 나오는 자식들을 지키기 위해 그녀를 더 억척스럽게 만들었다. 딸보다 유난히 아들에게 집착이 강했던 그녀에게는 남편에 대한 열등감과 소외감이 있었다.

가난한 집안의 장남이었지만 머리가 좋았던 그녀의 남편은 부잣집 장녀였던 그녀와 결혼을 했다. 하지만  큰 딸이라는 이유로 공부보다는 동생을 돌보며 집안일을 돕는 하나의 일손이 되어야 했던 그녀에게 학벌에 대한 열등감이 있었다. 그럼에도 집안이 어려워 공부를 중단한 남편을 자식을 일곱을 낳은 후였지만 일본으로 유학 보내고 혼자서 그 세월을 감내했다.


자식들에 대한 그녀의 교육열 또한 높아서 9남매가 모두 대학을 마치는데 누구 하나 열외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했다.  자신의 어머니에게 받았던 아들과 딸에 대한 차별이 그녀에게도 드러났지만 학교 문제만큼은 차별을 두지 않았다. 그 대신 아들들에게는 전문적인 학과에 대한 집착이 심해 신경을 쓰다 보니  딸들은 그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운 편이었다. 그렇지만 딸들은 아들과의 편애였다며 간혹 공격해 그녀를  당혹스럽게 했다.


그 당혹스러움에는 그녀의 뜻대로 성공한  아들이 없다는 민망함도 함께 묻어있었다.. 아들들은 그녀가 집착하는 만큼 저항을 하거나 그 기에 눌려 마음의 병을 앓기도 했다. 점차 그들은 자신들의 세상을 향해 그녀의 곁을 떠나기 시작했다. 어쩌다 찾아오는 아들들에게 그녀는 한결같이 희생적인 모성을 드러내는 유연함을 보이는 것 같았지만 그 속내의 아픔을 되돌려 받는 것은 그녀의 며느리들이었다. 그러다 보니 언제부턴가 며느리들의 발걸음도 뜸해졌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막내아들이 그녀의 곁에 마지막으로 남게 되었다. 그는 그녀의 마지막 희망이었다.

그녀의 바람을 거절하지 못하고 함께 살고 있는 막내아들의 아내는 그녀의 한을 푸는데 온전한 도구 같은 존재였다. 아들이 순종하면 할수록  막내아들에 대한 집착은 더 심했고 그 결과는 매번 며느리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처음 막내아들이 여자를 소개했을 때 그녀가 가장 먼저 한 일은 평생을 멘토처럼 의지한 노파 점쟁이를 찾아가는 것이었다. 다른 아들들의 여자 문제도 예외는 아니다.

남편과 그렇게 소개된 여자가 며느리가 되고 아이 둘을 낳을 때까지 남편을 곁에 두지 못하고 살다가 이제 시댁에 들어와 그녀와 함께 남편을 바라보게 되었다. 그리고 셋째 손자가 태어났다.  자식이 많은 그녀는 손자 손녀도 많았지만 자식에 대한 사랑이 커서인지 손자들에게는 그다지 애정을 주거나 관심이 없었다. 한데 막내아들이  낳은 셋째에게는 이제 마지막 손자라고 여겨서 인지 관심을 보였다. 그것은 손자의 장래를 위해 점쟁이를 찾아가 그 아이의 장래를 알아보는 것으로 표현되었고 그 결과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었다.

그녀와 함께 살게 되면서  그녀를 따라 그 점쟁이를 만나러 다닌 지 어는 정도 세월이 지나서야 그 점쟁이는 막내며느리에게 그동안 참았던 입을 열었다.

" 너는 나 때문에 결혼한 줄 알아! 너 아니면 저 집 막내아들 공부 못 마쳤을 껴!"

노파의 히득 거리는 웃음을 막으며 그녀가 포악스럽게 소리를 질렀다.

"쓸데없는 소리 말고 우리 막내 손자 팔자나 좀 잘 보소!"


그녀는 공부 중인 아들을 결혼시키고 싶지 않았지만 점쟁이가 이 여자와 결혼을 해야 무사히 공부를 마칠 수 있다는 한마디에 상대의 상황이나 의사와는 상관없이 결혼을 서둘렀다. 그녀는 결코  며느리를 원한 것이 아니었다. 그녀의 바람대로 아들이 공부를 마치고 며느리와 같이 살게 되면서 며느리는 이해할 수 없는 그녀의 공격을 받아야 했다.  공격할 때는 며느리가 아닌 여자의 잣대를 드리대고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래서 며느리는 어쩌면 자신의 남편은  두 여자와 동거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며느리가 신경증으로 지쳐갈 즈음 아들의 직장 문제로 어쩔 수 없이 그녀는 아들 부부를 분가시켜야 했다. 며느리와 아들은 그녀에게 함께 가자고 권 했지만 그녀는 거절했다. 자식들의 내음이 밴 그 집을 떠날 수 없다며 혼자 남았다.

빈집에 들어와 살겠다고 하는 다른 아들의 호의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평생 곁을 지키고 있을 것 같았던 막내아들의 분가가 그녀에게는 남편을 잃은 상실감보다도 더 컸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며느리에게 준 상처가 미안해 선뜩 따라나서지 모 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느 날 그녀는 홀로 점심식사를 마치고 천상 외출에 나섰다.


막내아들의 친구들은 이들 부부의 삶을 알기에 호상이라고 위로했다. 그러면서도 그녀의 아들에 대한 집착과 며느리에 대한 차가운 시선을  알고 있는 아들의  깨복쟁이 친구들은 그의 아내에게 넌지시 축하한다며 짓궂게 굴자 아들이 멋쩍은 웃음으로 아내를 바라보았다.


아홉 명의 자식들이 모두 제 짝과 모여 그녀의 나이를 생각하면 호상이라고 자신들의 못다 한 자식도리를 합리화시키고 있을 때 막내며느리는 흐르는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모두가 떠난 집에 혼자 남아있었을 그 모습이 안타까워 눈물이 났다. 그녀에게 받은 상처로 일상이 힘들 만큼 분노로 자리 잡은 가슴의 화를 언젠가는 그녀에게 털어놓고 싶었는데 도망치듯 떠나버린 그녀가 야속해서 서러웠다.

비록 칼날 같은 시선과 천둥소리 같은 폭언에 가슴 졸이며 살았지만 어느새 며느리는 그녀와의 세월 속에서 정이라는 투 면한 문신을 마음에 새겨 넣고 있었나 보다.

그녀를 보내고 한동안 며느리는 거리에서 마주하는 노인들에게서 그녀의 모습을 본다. 그리고 모든 것을 내려놓은 듯 막내아들의 이삿짐을 꾸리던 그녀의  모습을 읽는다. 아직도 그녀는 며느리의 마음에 살아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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