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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igjeje Nov 21. 2023

나나스케


지방 출장을 다녀온 남편이 선물이라며 보자기에 싼 물건 하나를 건냈다. 빛바랜 남색에 낡은 보자기는 언뜻 보기에도 선물로 산 물건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 올라오는 길에 형님한테 들렸더니 형수가 당신 갖다주라며 주더라고. 당신이 본가에 살 때 전수해 준 것이라던데.”   

  

전수라는 말에 의아해 보자기를 풀었다. 낡은 탓인지 어설프게 묶인 매듭이 힘없이 풀어지며 시큼한 냄새가 동시에 코끝으로 스며들었다. 잊고 있었던 익숙한 냄새다. 순간, 입에 들어간 것처럼 그 맛의 기억이 혀끝을 자극했다. 플라스틱 뚜껑을 열자, 갈색의 주박 사이로 노르스름한 나나스케의 살빛이 보였다.  

    

‘이걸 형님이 만들었다고요?“

”울외가 눈에 띄어서 담가 놓으셨데. 당신 생각하며 담갔다고 몇 조각 싸주더라고“    

 

시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서울로 분가해 온 뒤, 20여 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그동안 잊고 있었던 장아찌 맛이 입안에서 느껴졌다. 친정엄마 덕분에 쉽게 접할 수 없었던 음식을 내 아이들도 먹고 자랐다. 하지만 서울에서는 재료를 구하는 것도 쉽지 않고 아파트라는 공간 특성 때문에 직접 담가 먹는 것이 어려웠다. 그래서 가끔 만들어진 것을 사다가 먹기는 했지만, 장아찌치고는 제법 값이 나가다 보니 자연스럽게 우리 집 밥상에서 사라지게 됐다. 어느새 그 맛을 잊고 있었다.   

  

시댁에 살면서 가장 어려운 존재는 시아버지였다. 어린 며느리를 들인 시어머니는 아침상을 물리고 나면 치마폭을 움켜쥐고 바쁘게 집을 나가 저녁때가 다 되어서 돌아왔다. 온종일 시아버지의 시중은 내 몴이 되었다.

말씀이 없으시고 표정을 읽을 수 없던 시아버지와의 일상은 너무 어렵고 민망했다. 무엇보다도 삼시세끼를 차려야 하는 밥상의 반찬을 준비한다는 것은 아직 살림이 손에 익지 않은 내게는 매번 시험을 치르는 수험생처럼 긴장의 연속이었다.

엄마가 알려준 기본양념 즉 소금과 간장, 마늘과 파 그리고 고춧가루와 후추, 참기름과 들기름 등이 음식의 종류에 따라 쓰임새도 다르다는 것을 알기까지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음식을 할 때마다 요리책을 보거나 엄마에게 전화를 걸기도 했지만 추리 소설만큼 가늠하기 어려웠다. 특히 분별없이 넣어버리는 설탕 양념은 가끔 시아버지의 헛기침 소리로 나를 긴장시켰다.      

아버님은 일본에서 공부한 적이 있어서인지 양념을 많이 쓰는 전라도 고향 음식을 잘 먹지 않아 반찬을 준비하는 것이 더 어려웠다. 늘 담백하고 싱거운 음식을 준비해야 했다. 그래서 겨우 망설이다 설탕만 써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던 어느 날 집 앞을 쓸려고 나왔다가 울외를 싣고 가는 아주머니를 만났다. 나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반갑게 그 아주머니에게 다가갔고 남은 울외를 다 샀다. 아주머니는 어린 새댁이 울외를 사는 것에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집으로 들어와 담가주겠다고 했다. 나는 그 호의를 거절했다. 물론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볼 심산이었지만 엄마의 울외 장아찌의 맛을 알기에 혼자서 담아보고 싶었다. 매년 여름이면 손수 울외 장아찌를 담그던 엄마 덕분에 어려서부터 보아온 터라 낯선 곳에서 만난 낯익은 채소가 마음을 설레게 했다.

     

아주머니가 아무렇게나 땅에 던져 놓고 간 울외가 나의 어설픈 칼질에 싱싱한 허연 속살을 드러냈다. 안에는 눈물 머금은 씨들이 떨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며 엉겨 붙어 있다. 다시 칼을 대자 “쩍” 하고 작고 청량한 비명을 내며 울외는 반쪽이 되어 버렸고 나는 맑은 물에 넣어 속살에 메달린 한 톨 씨마져 긁어낸다. 이제 여름빛을 피해 서늘한 그늘에 두면 서서히 물기를 잃고 꼬득꼬득 잘 마를 것이다. 그 살갗은 마치 한 나절을 반평생을 산 새댁의 마음처럼 살갗은 주름지고 누런빛을 띠게 된다. 거기에 주박을 충분히 발라 항아리에 담고 후미진 곳에 잊은 듯 놓아둔다. 장마가 물러가고 막바지 더위에 지쳐 밥맛을 잃어 갈 때 비로소 외면 당했던 울외를 떠올린다.  

    

울외는 참외 같기도 하지만 참외처럼 단맛도 고매한 색깔도 띠고 있지 않아 외면당하는 채소다. 그런 채소가 술을 담고 버려지는 술찌게미와 만나 오랜 시간 같이 보내며 자신의 몸을 속성시키며 놀라운 맛을 만들어 낸다. 우리는 이것을 나나스케, 또는 나나스키라고 부른다.     

 일본 나라현의 절임 즉 즈케라는 뜻의 나라즈케에서 유래 한 발효식품으로 지금은 군산의 특산물이기도 하다. 일제강점기에 절임 방법을 알게 된 엄마는 나에게 나나스케를 만들어 주었고 내 아이들은 내가 담근 나나스케를 먹고 자랐다.


어설프게 시작한 내가 직접 만든 첫 음식 나나스케는 시아버지의 일본 유학 시절을 떠올리게 했고, 당신만의 비밀스런 유학 시절 추억을 며느리에게 털어놓게도 했다. 시아버지의 입맛을 만족시킨 음식 하나가 어색했던 시아버지와의 관계를 돈독하게 만들었다. 간혹 형님들의 시기와 며느리 사랑에 대한 시어머니의 볼멘소리도 들어야 했지만 하루 종일 민망해서 긴장했던 나의 마음에는 어느새 편안함이 자리 잡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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