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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igjeje Dec 07. 2023

소신공양을 위한 부부의 외출


주말이면 남편과 어디를 가서 휴일을 보낼지 고민하는 것이 내 의무이자 즐거움이다. 솔직히 즐거움으로 받아들이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그것도 가끔 변덕이 나면 의무가 되어 남편과의 외출이 고역스러울 때가 있다.     

삶의 열정을 사로잡는 내 안의 그림자에 묻혀 빛을 차단한 체 우울한 시간에 갇힌 적이 있었다. 많은 사람이 한 번쯤은 이런 경험을 하고 견디며 살아간다는 것을 지금은 알고 있지만 그 당시는 나에게만 주어진 고통 같아 대책 없이 받아들이고만 있었다. 어쩌면 지옥과 천국 중 정해준 곳으로 가기 전까지 잠시 머무는 연옥처럼 누군가가 나를 위해 어느 것이든 선택해 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럴 때 가까운 가족이나 지인, 친구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았던 것 같다. 실은 그들로 인해 내가 지금 삶을 거부하고 싶을 만큼 상처를 받았고, 그들에 대한 애정의 상실이 원인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엄마의 죽음이 가장 큰 원인이었지만 어느 누군가의 위로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때 내 손을 잡아끌며 여행에 동행하자고 제안을 한 사람이 있었다. 그다지 가까운 사이도 아니고 평상시 가벼운 눈인사만 건넸던 이웃이었다.


그는 현재 내 상태를 잘 모른 체 갑자기 문제가 생긴 여행의 빈자리에 나를 초대한 것이다. 여행이 좋아서, 가고 싶어서가 아니었고 누군가 내가 해야 할 일을 정해주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나는 그 여행에 동행 됐다.

그 여행을 위해 나는 많은 준비와 긴장이 필요했다. 그것은 여행만을 위한 목적이 아니었고 입양아를 데리고 미국으로 가야 하는 일이었다. 물론 일이 끝나면 여행을 할 수 있는 스케줄도 잡혀있었다. 그 일을 맡은 담당자가 갑자기 병원에 입원해 대신 미국까지 가줄 사람이 필요했다.

지금은 법률적으로 해외 입양을 하려면 입양을 신청한 그 나라의 부모가 직접 와서 아이를 데려가야 한다. 하지만 내가 영아원 봉사활동을 시작한 그 시점에는 봉사자가 입양되는 나라로 아기를 데리고 가야 했다. 그러면  그나라 기관의 직원이 아기를 받아 양부모에게 데려다 주는 절차로 진행됐다.이 제안을 해온  지인은 홀트에서 일을 하는 분이었고 나에게 봉사자로서 활동해볼것을 권했다. 그리고 이 활동을 계기로 나의 첫 여행은 미국의 포틀랜드로 시작되었다.

     

이렇게 시작된 여행이 지금은 준 여행가가 되어 자주 집을 비우고 그럴 때마다 남편에게는 미안함과 뻔뻔함으로 버티지만, 다음 여행지에 대한 기대는 내 삶의 충전기 역할을 한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여행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남편은 여행을 통해 온전한 나만의 세상을 담을 수 있는 시간을 허락한다. 하지만 남편에 대한 미안함과 좋은 것을 보면서 같이 느끼고 싶은 여행지에서의 외로움은 여행을 떠나면서 늘 느끼는 감정이기도 하다.

이러한 복합적인 마음을 상쇄하기 위해 주말에 소소한 외출을 의무처럼 시작했다. 때론 기차를 타고 긴 여행도 하지만 쉽게 피로를 느끼는 남편은 오히려 북촌길을 걷거나 남산길을 산책 삼아 반나절을 보내는 것을 선호하고 즐긴다.  그런 남편을 위해 시간이 되는 주말이면 미리 장소를 물색하고 차표와 숙소를 예약하거나 일정의 계획을 준비하는 것은 집안일과 함께 또 다른 나의 몫이 되었다.      


오늘은 얼마 전 선배이자 글 스승이 소개해 알게 된 솥 밥과 단팥죽을 먹기 위해 남편과 인사동을 가기로 했다. 우선 남편이 좋아하는 단팥죽으로 브런치를 대신하며 그곳에서 시간을 보내다 조금 늦은 점심으로 솥 밥을 먹기로 했다. 이렇게 계획을 세우고  찻집이면 대부분  문을 열만 한 11시에 시간을 맞춰 일찍 집을 나섰다. 남편이 그럴 때마다 아이처럼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언제부턴가 이런 준비 과정이 의무보다는 즐거움이 되기 시작했다. 나 또한 지난번 맛보았던 그 음식 맛을 기대하며 도착했는데 단팥죽을 파는 전통찻집은 12시에 문을 연다고 안내되어 있었다. 아쉽지만 식사를 먼저 하자며 솥 밥집으로 가니 일요일은 쉰다는 팻말만 문에 걸린 체 무심하게 닫혀있었다.     


여행이나 외출 중에 계획에서 예기치 않은 돌발 상황이 생겼을 때 나는 실망보다는 내심 작은 희열을 맛본다.

집을 나서면서 고민이 되었던 아침 브런치 카페의 유혹을 오로지 남편을 위해 양보하기로 했는데 예상치 못한 상황이 되면서 바로 남편을 그곳으로 안내했다. 전통찻집과는 다르게 막 구워진 빵과 크로와상 안의 담뿍 담긴 비건 샌드위치, 거기에다 커피 맛까지 일품이니 예상을 벗어난 이 상황이 오히려 나에게는 좋은 핑계가 되었다.  일요일 아침 카페의 은은함과 상쾌함, 그리고 아직 다른 공기의 오염이 섞이지 않은 순수한 커피 향만이 그득한 카페에서 묘한 벽지 색 같은 음악을 들으며 우리는 브런치를 즐겼다.      

나의 권유로 목에 두른 남편의 머플러가 유독 그에게 잘 어울린다고 느끼며 사람들이 자리를 메우기 시작할 무렵 카페를 나왔다.


한적한 길을 즐기며 다시 안국역으로 향할 때 강하지만 청량한 목탁 소리에 구슬프게 들리는 염불 외는 목소리가 얹어져 인사동 전체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순간 자승스님의 영결식이 아닌가 싶어 조계사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조계사 앞에는 이미 많은 사람이 모여있었고 도로는 폐쇄되어 있었다. 조계사에서 마련한 5일간의 종단장은 거의 막바지에 이르러 운구가 나갈 채비를 하고 스피커를 통해 목탁과 염불이 자승스님을 대신해 세상에 마지막 인사를 하고 있었다. 불자도 아니고 그분과 특별한 인연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명치끝이 아프고 목이 칼칼해졌다. 아무 때나 걸핏하면 눈물이 나는 것도 괜한 오지랖 같아 마음을 누르는데 남편이 먼저 작은 소리로 말을 건넸다.  

   

“ 왠지 마음이 구슬프네, 염불 소리 탓인가.”

“ 그러게, 어느 죽음이나 죽음은 슬픈가 봐요. 그런데 소신공양한 분에게 리무진이 웬 말?”  

   

‘소신공양’이란 ‘자화장'이라고도 하며 스스로 장작더미에 올라가 자신의 몸을 불살라 다비를 진행함으로써 부처에게 공양하는 것을 말한다. 나는 김동리의 ’ 등신불‘이라는 작품에서 처음 소신공양을 알게 되었는데 그때는 어려서인지 무섭고 충격적이었다. 지금도 소신공양이라는 말에 두려운 전율이 이는 것은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런 자승스님의 행동에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이런 소신공양은 부처의 본래 가르침에는 없다고 한다. 심지어 자살한 승려를 합리화하는 것이라며 조계종을 향해 목소리를 높이는 기자도 있다. 과거 베트남 어느 승려가 민중의 종교를 지키려는 목적의 숭고한 뜻으로 몸에 석유를 끼얹고 자살했는데 그런 경우 소신공양으로 평가받았다. 그렇지만 자승스님의 경우는 지극히 개인적인 번뇌로 택한 죽음이고 몸만이 아닌 절까지 불을 태운 것은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행위로 소신공양을 인정하지 못한다는 의견의 기사를 실었다.

(서울 신문 2023. 12.01)


스님의 죽음에 여러 가지 의문을 가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큰 스님의 뜻을 헤아릴 수 없는 내게는 스님의 본질적인 죽음은 자신보다는 세상에 남겨진 이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었기에 그런 길을 택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먼저 하게 한다. 그러면서도 마주하게 된 영결식에서 도로를 막고 한가운데 서 있던 크고 긴 리무진을 보면서 진정 그분의 죽음을 슬퍼하는 불자와 소신공양이라는 스님의 의사와는 왠지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평상시에 스님에게 다 보여드리지 못한 애정을 마지막 가는 길에 거대하고 편한 리무진에 편히 모시는 것으로 위안을 받으려는 것일까. 아니면 죽음을 싣고 있어 더 검게 느껴지는 리무진 어딘가에 숨기고 싶은 진실을 같이 실어 보내고 싶었던 것일까.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 잘 보살피지 못한 죄책감을 돌아가신 후에 비싼 삼베옷을 입히고 내가 죽었을 때 자식이 태워주지 않으면 살아생전에는 타보지도 못할 리무진에 내 부모를 싣고 가 결국 불 속으로 사라지게 하는 이 아이러니를 나도 실행했었다. 눈에 보이는 겉 치장으로 못다 한 불효를 감추며 살아있는 자가 위로를 받으려는 의도는 아닌지 어리석은 내 좁은 소견으로는 그 이상의 의미를 찾아낼 수가 없다.  

    

'생사가 없다 하나 생사 없는 곳이 없구나. 더 이상 구할 것이 없으니 인연 또한 사라지는구나'라는 자승스님의 열반송이 더 슬프게 되뇌어지는 조계사에서 자승스님의 검은 리무진은 경찰차의 호의를 받으며 자비식을 위해 인사동을 떠났다. 그리고 다시 한번 살아있는 자들에 의해 불 속에 몸을 뉘고 자승스님은 긴 시간의 자비식은 끝났다.


나 스스로 내 몸을 불 속에 던질 용기는 없지만 소신공양의 의미를 그분의 영결식을 우연히 접하면서 좀 더 다른 나만의 의미로 생각해 보게 됐다.

내 삶 속에서 사람들을 위한 나의 마음 공양을 나의 상처 치유를 위한 하나의 출구로 생각했거나, 남편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합리화시키려고 의무처럼 행하며 배려라고 포장했던 것들을 이제 진심을 담은 내 마음의 소신공양이 되도록 해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잦은 긴 여정의 길로 아내를 배웅하며 혼자서 외로운 시간을 보냈을 남편이야말로 대가 없이 마음 공양을 하고 있음을 알아차려 본다. 살아있는 동안 서로에게 진심을 담은 마음의 소신공양을 이루며 살기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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