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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igjeje Jun 28. 2024

구부러진 길에서 수학의 난제를
풀다

 몇 년 전 한국의 한 수학자가 수학에 대한 11개의 난제를 풀어낸 업적을 인정받아 필즈상을 받았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이 세상에 노벨상이 최고라고 알고 있던 나는 올림피아드 상 정도로 생각하고 관심 없이 지나쳤다.  그런데 최근 필즈상에 대해 다시 접하게 되었다. 

상보다는 그 상의 주인공 허준이라는 인물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 노벨상에는 수학상이 없어 필즈상은 곧 수학계의 노벨상이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4년마다 상을 수여하지만 40세 미만이라는 연령의 제한이 있어 노벨상을 받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 한다. 그런 상을 한국의 수학자가 받았다니 대견하고 자랑스러운 일이다. 더구나 30대의 나이에 말이다.   

   

수학을 잘하는 사람은 왠지 정해져 있는 느낌이 든다. 그만큼 외래어보다 더 심각한 형태의 문자에 몰입한다는 것은 나로서는 상상하기조차 힘들다.

또한 정해진 답이 있을 것 같은 수학이라는 학문에 아직도 풀리지 않은 답을 찾으며 그것도 11개의 난제를 푼 공로로 상을 받았다니 더 괴기하고 놀라웠다. 더 놀라운 것은 그 수학자의 말에 의하면 아직도 풀어야 할 문제들이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단순한 문제라는 표현이 아닌 난제라는 용어를 썼는지도 모르겠다.  

   

수학에 대해서는 주부가 살아가면서 필요한 생활비 계산이나 내 저축금에 대한 금리 정도의 숫자 기억, 세금을 낼 때 적절하게 계산은 되고 있는지 정도까지도 난제인 내게는 수학자의 난제에 대해서는 생각하는 것조차도 한계가 있다. 그 이상은 내게 숫자에 대한 난제가 아닌 실생활의 안정에 난제를 가져올 득 없는 고민이 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그 수학자의 입에서 나온 수학과 무관할 것 같은 철학적 그의 사고다.  

    

아직도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이 남아있는 수학의 난제를 본론 삼아 그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풀어 가야 할 삶의 과정에서 맞닥뜨리는 난제들을 짧고 섬세하게 설명했다.      

그 수학자도 그랬던 것처럼 인생의 과정에서 겪어야 하는 시행착오의 단계에서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불필요한 과정을 예측하고 판단하는 것이야말로 시행착오를 유발할 수 있는 요소라고 말한다. 현재 시행착오를 겪고 있다고 느낀다면 사실 그것은 자신이 짐작도 못 한 결과나 그곳에 도달하기 위한 과정에 있다고 했다. 하지만 우리는 결과를 먼저 예측하고 시행착오를 겪으면 좌절하거나 아예 포기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목표를 향한 노력과 실행은 우리의 과정에 있어 매우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의 삶에서 그 목표만이 전부이고 마지막은 아니니 시행착오를 두려워하지 말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듯하다.      

그는 오늘의 결과를 위해 많은 구부러진 길을 걸어야 했고 그 과정이 힘들었지만 얼마나 중요하고 소중했는지를 상기하며 진중하게 자신의 경험을 전했다. 이는 한 인간이 자신만의 개별성을 만나기 위해 고통을 피하기보다는 전환의 기회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심리학적 맥락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우리는 ‘근자감’ 즉 ‘근거 없는 자신감’이라는 말을 비아냥거리거나 조금은 부정적인 뉘앙스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는 ‘근자감’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근거가 있는 자신감은 너무 연약하다고 말한다. 내가 어느 하나를 잘한다고 해서 - 그의 경우 수학을 예로 들어 - 나는 이것을 정말 잘한다고 결론 지어버리면 즉 자신감에 근거를 두면 금방 그 믿음이 깨지는 실망감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떤 근거를 자존감의 원동력으로 삼으면 언젠가는 힘든 시기를 겪을 수도 있으니 본질적인 근거 없는 자신감을 가지라고 그는 권했다.  

   

나는 이 말이 나를 다시 뒤집어 보는 계기가 됐다. 그리고 위로가 됐다.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집중할 때마다 내가 가졌던 긍정적인 사고는 가족들에게는 매우 위태로운 근자감의 원인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그런 근자감 덕분에 모르는 길을 가는데 두려움보다는 새로 만나게 될 미지의 길에 대한 기대감에 더 집중하고 속도를 낼 수 있었다. 그때 겪었던 시행착오는 수학자의 말처럼 내가 미처 예측하지 못한 길목으로 나를 데려다 놓았다.     

삶의 과정 중에 일어나는 것들이 우리 인생의 한 역사를 만들어 낸다. 그 역사가 곧 당장의 의식주나 성공만을 바라보다 죽음의 병상으로 마무리되지 않기를 그 수학자는 바란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지금 각자의 시점에서 지금까지 지나온 시간에서 과연 우리는 며칠을 기억하고 있는지 대중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의 질문 속에 나의 기억되는 날은 미세 먼지에 휘감긴 눈앞의 배경처럼 선명하지 못했다. 다만 지나간 날들의 나와 지금 여기의 나 그리고 다가올 날의 내가 풀지 못한 난제를 끌어안은 채 또 다른 시간 속 경험만을 고대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우리가 서로 공유하고 있는 이 시간 또한 그런 날 중 하나가 아닐까...     

그럼에도 내 소견은 그래도 수학의 난제는 특별한 천재의 발상으로 하나하나 그 답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삶에서 그 인생의 과정에서 이해하지 못하는 현상은 풀려고 하면 할수록 더 난해해지고 있다. 오랫동안 많은 철학자나 심리학자들이 삶의 난제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들을 제시했지만, 수학의 난제를 풀 듯이 명쾌하게 풀어내지는 못했다. 늘 결론보다는 사적인 의견에 대한 이견으로 또 다른 의문을 남겨놓을 뿐이었다.   

  

수학자와 대담하던 사회자가 일반인이라면 누구라도 지나쳤을 수학 난제에 접근하는 이유를 물었다. 세상에는 재미있는 일도 많은데 수학문제에 매달리는 이유가 나 또한 궁금했다.     

그가 답을 찾아낸 수학 문제들은 겉보기에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고 상당히 단순한 현상으로 보여 접근하지만, 쉽게 풀리지 않아 난제라 불린다고 한다. 자연스럽고 단순한 명제이지만 왜 그런지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은 생각하는 방식의 결함이나 한계로 보기보다는 더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이 존재하기에 난제에 접근하고 집중한다고 했다. 수학적 답은 아니었지만, 이 답은 우리가 힘들면 힘들수록 더욱 내 삶에 집중해야 하는 이유와 같은 의미로 나는 이해했다.


고통이 많이 수반되는 일상의 시간일수록 더욱 집중하고 노력해야 하는 이유는 보이지는 않지만 기다리고 있는 가능성을 위해 우리는 시련이라는 난제를 붙들고 놓지 못한다. 그리고 그 시련의 끝에 서 있는 가능성을 마주하기 위해서다. 그렇다면 수학의 난제이든 삶에 수반된 고통의 난제이든 우리가 놓지 못하고 더욱 곁에 두고 살펴야 하는 이유는 바로 답으로 결론지을 수 있는 ‘가능성’이라는 희망을 찾기 위한 것일까.  

   

허준이 수학자는 수학에는 언어가 있다고 했다. 그래서, 소통이 가능하고 난제를 계속 풀어야 하는 이유가 존재한다고 했다. 나는 이 말에 대한 답을 찾을 수도 찾기도 어렵겠지만 피타고라스가 직접 하프를 연주하면서 음악의 소리를 분석했다는 말이 떠올라 가능성에 무게를 실었다. 정수비례 관계에서 발견한 피타고라스의 음률이 곧 오늘날 우리가 음정이라고 부르는 것의 기원인 것을 감안해 볼 때 수학에서 발견할 수 있다는 그가 알고 있는 언어의 가능성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수학이 창조해 낸 음악은 지금 내 일상의 한 부분이 되어있다. 그렇다면 수학이 담고 있는 언어는 과연 무엇일까. 호기심이 나를 자극한다. 경이로운 허준이 수학자의 아름답고 정교한 친필 연구 노트가 공개되고 있는 유성의 과학 기술원을 찾아가 그 답을 알아내고 싶다.

하지만 수학의 난제를 푸는 것보다 그 이상으로 더 어렵고 여의치 않다는 것을 알기에 지금은 뒷걸음질 치는 ‘근자감‘의 손을 슬며시 놓을까 한다.    


#시행착오 # 근자감 #수학의 언어  


사진출처 : 연합뉴스 조승한 기자

허준이 교수 친필 연구 노트 : 국립중앙과학관 제공

이 글은 K-people focus에서 함께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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