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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저 빛 May 16. 2023

나는 700만 원으로 세상을 배웠다.

200만 원을 이틀 만에 벌었다는 친구의 한마디가 시작이었다. 주식은 집안을 풍비박산 내는 것이라고 들었다. 하지만 친구의 한마디로 인해 나는 당장 주식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다. “은행에 예금, 적금을 드는 행위는 결국 은행이 투자하는 것을 도와주는 행위다. 은행도 그 돈으로 사업을 하고 소비자에게 소량의 이자금을 나눠주는 것이다.”라는 말에 큰 충격을 받았다. 결국 더 큰 이자를 받기 위해서는 기업에 직접 투자해야 하고 그 방법이 주식이라는 것이다. “주위에서 망한 케이스만 보고 들은 사람들이 하는 말을 믿고 살았던 거구나.. 역시 시야를 넓혀야 해”라고 생각한 나는 주식에 대해, 기업에 대해 공부했…다면 좋았겠지만 그러지 않았다. 쉬운 방법을 택했다. 친구에게 어떤 종목에 투자했는지, 금액은 얼마나 투자했는지 질문했다. 친구는 친절하게 종목을 추천해줬다. 겁이 많던 나는 10만 원으로 실험해봤다. 실제로 벌렸다. 2,000원이라는 작고 소소한 금액이 꽤나 충격으로 다가왔다. 아무런 노동 없이 몇 시간 만에 돈이 생겼다. 들어가는 액수가 커지면 수익도 훨씬 커지겠다는 순수한 생각으로 요즘 유명한 산업(남들이 많이 말하는)을 찾아봤다. 메타버스가 뜨거운 감자였다. 한국 시장보다 몇 배는 큰 시장인 미국 주식을 하라는 글을 봤다. 그렇게 또 미국 주식을 알아보다가 ‘로블록스’라는 기업에 관심이 생겼다. 기업의 재무제표는 보지 않았다. 차트를 봤다. 우상향 중이었다. 유튜브, 오픈채팅. 각종 커뮤니티에서 메타버스 산업은 앞으로 창창할 것이라는 얕은 정보를 접하고 24만 원이라는 금액으로 다시 실험해본다. 수익률은 120%. 긍정 회로만 돌아갔다. 며칠 만에 이 정도 돈을 벌 수 있는 일이 있을까? 그것도 불법이 아닌 일 중에? 한 달 동안 매일매일 이렇게 벌면 대체 얼마를 버는 거야? 살아보지 못한 세상에 발을 들인 나는 미쳐갔다. 초심자의 행운이라는 미끼는 그렇게 나라는 호구를 낚았다. 


어릴 때부터 세뱃돈, 용돈을 받으면 저금하던 나에게 군대에서 들었던 적금까지 총 1,500만 원이라는 초기자금이 있었다. 나이와 환경에 비해 또래 친구들보다 많이 모았다고 들었기에 이 명성을 유지하고 싶었다.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투자 업계의 명언에 따라 500, 500, 200을 국내, 미국 주식, 펀드에 분산 투자했다. 가치투자를 하라는 말에 장기적으로 가져가도 마음이 편한 주식 위주로 넣었다. 그 결과 초반 몇 달간 빨갛게 불타올랐다. “역시 나는 투자를 잘해”라는 오만한 마음이 생겼다. 달콤한 순간은 길지 않았다. 조금 시간이 흐른 뒤 전세는 역전됐다. 파란 하늘과 바다를 좋아하던 나는 더 이상 파란색을 좋아하지 않게 되었다. 주식 창을 열면 보이는 파란색은 나를 우울하게 만들었다. 이래서 파란색이 우울함을 뜻하는 색인 걸까. 온갖 비관적인 생각은 다 한 것 같다. 몇 년이 흐른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세상이 무너지는 것도 아닌데 참 귀여웠다. 그래도 커다란 교훈을 몇 가지 얻을 수 있었다. < 1. 정기적인 수익 없이 장기투자를 하는 것은 옳지 않다. > 갓 전역하고 복학을 기다리던 나는 백수였다. 남는 게 시간이었다. 그 시간에 일하지 않고 공부했다. 장기 투자를 위한 기업 공부가 아닌 단타를 위한 차트 분석 편법에 관한 공부. 이런 내가 몇 년을 바라보는 장기투자를 할 수 있을 리 없었다. 너무 당연한 것을 깨닫지 못했다. 타인이 좋다거나 옳다고 무작정 하는 것이 아닌 나의 상황에 맞춰서 하는 투자가 올바른 투자다. < 2. 지름길은 없다. > 기업에 대한, 사회에 대한, 세상에 대한 이해 없이 남들의 말을 듣고 하는 것은 투자가 아닌 투기다. 주식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돈이 생기는 마술이 아니다. 믿을 수 있는 기업에 대해 내 돈을 빌려주고 그 믿음에 따른 보상을 받는 행위다. 들어간 노력 대비 인생이 잘 풀려왔다. 커다란 실패 없이 자라왔고 그 결과 세상을 만만하게 봤다. 이번 사건을 통해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는 만큼 성과가 따라온다는 이치를 다시 한번 뼈저리게 느꼈다.


여전히 내 주식 창은 파란 세상이지만 그렇다고 파란 색안경을 얻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훨씬 더 강해졌다. 예쁜 카페에 가도, 유명한 식당의 음식을 맛있게 먹어도, 요즘 핫한 콘텐츠를 봐도 더 넓은 시각과 관점을 통해 바라보고 깊은 생각을 한다. 뻗어나갈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를 생각해보고 사람들의 심리를 다양하게 유추해본다. 단순히 소비자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느껴왔던 것들이 모두 새롭게 다가온다. 그로 인해 생산자로서 삶을 살아보고 싶어졌다. “Continuous improvement is better than delayed perfection.”이라는 명언을 마음  속에 품고 사는 나는 당장 창업을 시작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창업 교육 학원’을 갔다. 그곳에서 누구보다 성실하게 참여하고 모르는 것이 많은 만큼 전부 습득하기 위해 처절한 노력을 했다. 그 결과 현재 초기 투자를 받은 주식회사를 키워 나가고 있다. 비록 처음 투자금으로 넣었던 1,500만 원은 절반의 가치가 된 쓰디쓴 실패의 기억이지만 다양한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커다란 시야와 삶을 대하는 태도, 마음가짐을 배웠다. 내가 했던 재테크는 자산을 키워주지 못했지만, 더욱 소중한 것들을 내게 안겨줬다. 결국 자신에 대한 투자가 가장 값진 투자라고 했던 워런 버핏의 말을 몸소 체험한 경험이었다. 


비교 대상이 누구냐 에 따라 다르겠지만 적어도 내 주위 어른들이 말씀하는 바로는 내가 성장하는 속도가 또래에 비해 빠른 것 같다고 한다. 누군가는 쓸모없다고 생각하는 일도 성실하게 대하는 모습, 세상 모든 것의 배움이 있다고 하는 태도, 현상을 바라보는 통찰 등이 본인들이 사회에서 이런저런 일을 다 겪고 마침내 깨달은 수준의 것과 닮았다고 한다. 나는 조심스럽게 생각한다. 욕심으로 시작한 투자로 세상을 배웠다고. 누구나 비슷비슷한 사건을 겪지만, 그 후 펼쳐지는 인생은 사람마다 정말 제각각이다. 결국 그 사건을 통해 무엇을 배웠고 배움을 통해 또 다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나가는 지는 각자의 삶의 주인이 선택하는 것 같다. 나는 700만 원으로 세상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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