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저 빛 Jul 24. 2023

인생 회고록_04

스타트업, 쉽지 않구나?

첫 시작은 국비지원을 통한 교육 프로그램이었다. 실제로 창업을 해보고 싶은 사람들이 모였고 그동안 만나왔던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부류의 사람들이 있었다. Ivy리그 대학을 나오고 다양한 일을 하다가 창업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었고, 혼자서 제휴마케팅 일을 하며 월 천만 원은 우습게 버는 사람도 있었고, 누구나 아는 해외 대기업에서 일을 하다가 본인 사업을 위해 참여한 사람도 있었다. 그 모든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제일 어렸고 경험이 없었다. 나 스스로는 꽤나 주눅 들었지만 모두가 내 젊음을 부러워하고 대단하다고 여겼다. 또 넘치는 호기심과 교환학생-군대로 단련된 넉살 덕분에 많은 사람들과 친해질 수 있었다. 


교육 프로그램은 참여자들의 아이디어를 투표하여 대표 아이디어를 선정한 후 교육 기간 동안 MVP(최소 기능 제품)를 만들어 보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그 기간 동안 정말 새롭고 신기한 것들을 많이 배웠다. 누구나 디자인을 쉽게 할 수 있는 툴에 대해 배우고, 마케팅 이론과 툴에 대해 배우고, 개발에 대해 배웠다. 그 속에서 나는 단 하나도 포기할 수 없었다. 한 분야를 정하고 전문가가 되기보다 모든 것을 할 줄 아는 제네럴리스트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개발이 나에게 맞지 않는다는 것은 빨리 깨우쳤다. 나는 한 가지에 깊게 몰입하는 연구원보다는 톡톡 튀는 아이디어를 실험해보고 싶은 사람이었다. 다행히 노코드 툴까지 가르쳐주었고 빠르게 개발과 비슷한 작업물을 만들어낼 수 있는 그것은 나도 재밌게 프로덕트를 만들 수 있게 했다. 


팀원들과 가설을 세우고 그것을 검증하기 위한 프로덕트를 만들기 위해 아이디에이션을 했다. 그 와중에 정말 많은 의견 충돌이 있었다. 각자가 살아온 환경과 가치관, 라이프스타일이 너무 다르다 보니 서로 이해를 못 하는 부분들도 있었고 의견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과열되어 팀이 와해될 위기까지 있었다. 커뮤니케이션 능력에  한 번도 문제를 느낀 적이 없던 나는 이래서 협업에 있어서 의사소통 능력이 중요하다는 거였구나! 다시 느꼈다. 크고 작은 문제들을 해결하며 완성시켰던 서비스는 부끄러운 수준이었다. 링크드인의 창업자 리드 호프먼은 "당신이 내놓은 첫 번째 제품이 부끄럽지 않다면, 너무 늦게 출시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우리는 교육 기간 안에 만들어야 했기에 자연스레 이렇게 된 거지만 얼떨결에 좋은 출발을 했다. 그리고 결과도 만족스러웠다.


 수많은 아이디어 제품 가운데 당당히 1등을 했다. 교육이 끝나고 이 아이디어를 팀원들과 계속해서 개선해 나갈지 각자의 길을 걸어야 할지 결정해야 했다. 팀원들은 좋았지만 아이디어에 확신은 없었다. 한계가 보이는 듯한 느낌이었다. 솔직하게 각자의 의견을 나눈 결과 새로운 아이디어 검증을 하며 리프레쉬 기간을 갖기로 했다. 그 과정 속에서 계속해서 의문이 들었다. 내가 만들고 싶은 것이 대체 뭔지 몰라서 힘들었다. 


창업이 하고 싶어서 문제를 찾으려다 보니 현타가 왔다. 이건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싶은 아이디어는 이미 세상에 존재하거나 벌써 없어진 것들이 대다수였다. 얼마나 고객의 시선에서 바라볼 수 있냐, 경영을 어떻게 하냐에 따라 회사의 운명은 달라진다. 하지만 그전에 내가 몇십 년을 쏟아부어서 하고 싶은 아이디어조차 선택하지 못하면서 그것들을 고민하는 게 웃겼다. 결국 현재 팀원들과 헤어지고 더 함께 하고 싶었던 지인과 함께 하기로 했다. 그러나 상황은 더 심각해졌다. 모두 전문성이 없었고 프로덕트 제작에 진전은 없었다. 정신은 계속해서 피폐해져 갔고 얼마 안 가 결국 다시 한번 이별하게 되었다. 마지막 종착지는 이미 투자를 받고 잘해나가고 있던 지인의 회사였다. 


당시에 나는 성공이 정말 간절했다. 성공적으로 투자를 받고, 매출을 내며 성장하는 회사의 초기 멤버로 명예와 돈을 전부 얻고 싶었다. 마지막으로 향했던 회사의 대표는 내 기준에 있어서 '좋은 사람'은 아니었지만 '성공할 사람'이었다. 나의 결정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인성'도 아니고 '남들의 시선'도 아니었다. 그저 성공할 수 있냐 없냐(돈을 많이 벌 수 있냐)였다. 그러나 많은 시간을 함께 해본 결과 '좋지 못한 행동과 마음가짐'은 마치 나를 사기꾼으로 만드는 듯했고 이렇게 얻는 성공은 전혀 기쁠 것 같지 않았다. 결국 많은 책들에서 말했던 사람이 전부라는 이야기를 뼈저리게 느끼고 마지막 이별을 하게 되었다. 내가 정말 원하는, 그리고 나를 정말 원하는 사람과 함께 해야겠다고 그리고 그전에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현재, 내가 생각하는 성공과 원하는 목표에 대해 깊게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고 있다. 경제적, 시간적 자유를 얻었을 때 집에 누워서 유튜브와 넷플릭스를 보며 시간을 사용하는 것을 원했다면 나는 지금 행복해야 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시간을 낭비했다는 생각이 더 들고 괴롭다.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세계 여행을 떠나야 할까? 그런데 나는 왜 여권 재발급조차 하지 않고 있을까. 


내가 현재 생각하는 성공에 대한 정의는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장소에서 원하는 사람과 원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원하는 일'이 무엇인지 알아야 하고 방구석에 누워서는 알 수 없다. 결국 많은 일을 해보며 자연스럽게 알아야 한다. 내가 시작하고 싶은 분야를 정해야 한다. 그리고 욕심과 관심사가 많은 나에겐 그게 제일 어렵다.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했고 원하는 것을 알고 싶어서 인생 회고를 시작했다. 더 말하고 싶었던 이야기도 있고 글을 더 잘 쓰고 싶은 욕심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기억을 빠르게 훑어보는 게 더 중요했고 어느 정도 생각 정리가 되었다. 

작가의 이전글 인생 회고록_03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