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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비샘 Jul 12. 2024

《한국교회, 기본소득을 말하다》 리뷰

논문1. 김회권 - <기본소득의 두 토대 : 자연법과 구약성서>


이 논문의 요점은 기본소득의 연원이 "자연권 사상"이고 그 원형이 구약성서의 "땅 신학"이라는 것입니다.


이 논문에서 자연권 사상이란 주로

"미경작 상태의 토지는 인류의 공유재산이고, 누구도 땅 자체를 독점할 권리를 지녀서는 안 되므로, 토지소유 기회를 빼앗긴 사람에게는 마땅히 보상이 있어야 한다"라는 의미입니다(54).


구약의 "땅 신학"이란 "이스라엘은 하나님으로부터 살 땅을 선물로 공여받았으며,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 자신의 땅을 나눠 받은 자유농민이고, 땅은 하나님의 것이며, 땅에서 얻은 소출의 십일조를 통하여 사회부조를 해야 하고, 하나님께 받은 땅은 타인에게 일정기간 빌려줄 수 있을 뿐 영속적인 의미의 매매는 불가능하고, 그렇게 취득한 토지를 영속적으로 상속할 수는 없고, 땅의 소출은 경작에 참여 못한 객, 고아, 과부, 레위인도 향유해야 한다"라는 의미입니다(57-59). 이러한 땅 신학은 레위기 25:23, 이사야 5:1-7, 신명기 15:7-11 등에서 도출된 것입니다.


저자는 "구약성서는 이스라엘 자유농민의 생존을 경제의 최우선적 과제로 설정한다"(63),  "기본소득은 신명기 15:11을 가장 포괄적으로 적용한 장치다"(70)라고 보고 있습니다.



평가

1. 자연권 사상은 상속세나 토지보유세를 기본소득의 재원으로 삼는 근거가 됩니다.


2. 하나님이 토지소유자이고, 사람은 소작인으로서 경작권을 받았을 뿐이라는 성서의 땅신학은 기독교인들이 자연권 사상을 받아들일 수 있게 해 줍니다.


3. 이 논문은 기독교인들이 토지공공성에 대해 인식할 수 있게 하는 데 사용될 수 있습니다.


4. 아울러 구약의 땅 신학은 친북용공좌파 낙인을 피하면서 기본소득 이야기를 할 수 있게 해주는 방편이 될 수 있습니다.


5. 진정한 기독교인이라면 기본소득을 수용하는 일이 용이할 것입니다.


6. 성경말씀을 토대로 교회 내의 십일조나 상속세로 기본소득의 재원을 만드는 것도 가능합니다. 다만 기존교회를 그렇게 변화시키는 것보다 새로 만드는 것이 더 쉬울 것입니다.




논문 2. 정용한 - <기본소득의 관점에서 바라본 "일하기를 싫어하는 사람"(살후3:10)을 위한 성찰>


이 논문의 목적은 살후3:10(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에 대한 오해를 푸는 것입니다.


본문 뒤의 세계란 문학감상방법의 반영론, 표현론이라고 보시면 되고, 본문 안의 세계는 내재적 관점, 본문 앞의 세계는 효용론입니다.


저자는 이 세 가지 관점으로 살후 3:10을 분석합니다. 본문 뒤의 세계 챕터에서는 "로마제국의 절대다수가 최저생계의 경계선상에 놓여있었고 그건 교회 내도 마찬가지였는데 로마당국에는 빈민구제 제도가 미비했던 반면 교회는 이 분야에서 앞서 나가고 있었다"(83-90)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본문 안의 세계 챕터에서는 "데살로니가 교회에 무절제하게 살면서 일하지 않으려는 사람이 있는데 이 사람의 선택과 결정이 교회 안에서 갖게 된 오해와 경제적 후원에 기인했다"는 내용이 주입니다(98-99).


본문 앞의 세계 챕터에서는 일하지 않고 기본소득을 받을 사람들에 대해 변호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일하지 않는 것은 노동시장과 사회구조의 문제일 수 있고 고전적인 의미에서 게으른 사람이라고 볼 수만은 없다는 것이 말하고자 하는 바로 보입니다.


평가

1. 저자의 의도가 숨겨져 있어서 추론을 필요로 합니다.


2. 데살로니가 후서는 34번 각주에서도 보듯이 바울의 친서가 아닙니다. 그래서 사람에 따라서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3. 요점은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에게 일하지 않는 사람을 굶길 것을 요구한 것이 아니라 일하지 않는 사람에게 일할 것을 요구했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교회는 일하지 않는 이 사람에게 경제적 원조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노동하지 않는 사람에게 어떠한 보상도 주어져선 안된다"는 것은 살후 3:10의 진의가 아닙니다(102).


4. 저자는 반로마적이었던 교회가 "경제적 돌봄이 체계화되었을 때 예루살렘 교회가 부흥했다"(95)라고 보고 있습니다. 현재의 교회도 경제적 돌봄이 체계화된다면 대중에게 퍼져나갈 수 있으리라 기대해 봅니다.


5. 살후3:10은 기본소득에 반대하는 기독교인들이 근거로 인용하는 거의 유일한 본문입니다. 이 논문의 정보들은 그 근거를 반증하는데 쓰일 수 있습니다.




논문3. 김유준 - <루터와 칼뱅의 경제사상으로 보는 기본소득>


이 논문의 요점은 종교개혁자인 루터와 칼뱅 모두 희년 사상에 따라 개인의 재산(특히 토지)소유권을 일부 제한하고 불로소득을 환수하여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어야 한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었고, 이는 토지세를 바탕으로 하는 기본소득 재원마련의 토대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루터의 경제사상을 엿보기 위해 몇 가지 어록을 살펴보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자신과 가족의 생명을 보존하는데 쓰고 남는 것은 우리의 이웃에게 속한 것이다."(122) "토지 매매는 돈의 본성에 속하지 않고, 토지를 담보로 지대수익을 노리는 사람은 강도다", "지대 수익은 공동체 모두가 누려야 한다"(132)


루터는 불로소득에 대한 환수방법으로 십일조를 강조했습니다(133-134). 세율은 20%까지도 가능하다고 보았습니다(134-135).


칼뱅은 토지사용의 대가는 사회가 공유하고 노동과 자연사용의 가는 개인이 사유하는 "지공주의"적 경제사상을 갖고 있었습니다(137).


칼뱅의 경제에 대한 신념들은 다음과 같습니다(137-142).

- 교회의 재산은 전부 빈민을 위한 것이다.

- 교회 수입의 최소 50%는 가난한 자를 위해 써야 한다.

- 토지의 지대를 독점적으로 사유한 자들은 약탈을 하고 있는 것이다.

- 땅, 물 같은 천연자연물은 독점할 수 없다.

- 부자는 빈자의 공복이다.

- 하나님의 복은 공동체를 위해 공유되어야 한다

- 기독교인은 세상의 합법 이상의 하나님의 공평과 정의에 맞는 삶을 살아야 한다.


루터와 칼뱅의 이러한 희년 사상은 기본소득 재원 마련에 대한 논의 가운데 토지세에 대한 근거가 됩니다.



평가

1. 이 논문은 희년은 기원전 고대 유대의 법이지만, 부의 양극화를 막고 가난한 자들을 돌보기 위한 근거로서 종교개혁자들에 의해 1500년대에 소환되었다는 것을 보여줬다는 의의가 있습니다.


2. 소유권, 특히 토지소유권이 우리의 인식 속에 지금과 같이 절대화된 것은 최근의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게 해 줍니다. 오히려 서양인들에게는 희년법에 의해 토지공개념이 뿌리 박혀 있습니다.


3. 한국엔 칼뱅의 후예인 장로교가 많은데 칼뱅 입장에서 보면 미흡한 점이 많아 보입니다.




논문4. 곽호철 -<기독교윤리의 시각에서 본 기본소득의 필요성과 방향성>


이 논문은 두 가지 질문에 답합니다. 1. 기본소득이 왜 필요한가? 2. 기본소득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첫 번째 질문에 대하여 그 이유는 기독교의 타자중심성에 부합하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가난한 사람을 위해 개인의 소유권을 제한했던 교부들의 글을 인용하며 절대적 소유권을 주장하는 이론들은 기독교 신앙과 양립불가함을 논증합니다(160-164).


물론 가난한 자들에게만 선별적으로 베푸는 것이 좋지 않냐는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 저자는 세 가지 점에서 선별복지보다 기본소득이 가난한 자들을 돕는데 더 유익하기 때문에 성서에 다 적합하다고 말합니다(166-168). 그 세 가지는 1. 수혜 사각지대가 없다는 것

2. 낙인이 동반되지 않고 덜 굴욕적이라는 것

3. 노동의욕을 감소시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질문에 대하여, 우선 저자는 3개의 기본소득의 방향을 제시합니다(169-172).


(1) 성장지향형 : 경제성장을 위해 최소한의 기본소득이 주어집니다.


(2) 롤스식 : 기본소득의 총량을 제일 크게 할 수 있는 세율을 고릅니다.


(3) 마르크스식 : 생산량 감소와 기본소득 감소를 감수하고 서라도 공동체 구성원에게 최대한의 자유시간과 최소한의 노동강도를 보장합니다.


저자는 레비나스의 타자윤리학을 바탕으로, 개인의 실질적 자유를 증진시키기 위해서는 (2)와 (3) 사이에서 (3)을 지향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고 보고 있습니다(183). 저자는 이 방향을 평등지향형 기본소득 수준이라고 부릅니다.


평가

1. 기본소득의 목적에 대해 떠올리고 더 깊이 생각해 볼 수 있게 해 줍니다. 저자는 불평등의 해소와 이를 통한 실질적 자유의 증진을 그 목적으로 보고 있습니다만, 사람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2. 이 논문은 기본소득이 도입되더라도 기본소득 운동이 계속되어야 하는 이유를 알려줍니다. 제가 보기에 AI와 로봇이 상용화되면 대부분의 나라에서 기본소득이 도입될 것 같습니다. 그건 기본소득이 편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담론 형성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거나 대중이 권력을 잃으면 (1)의 형태가 될 수 있습니다. 그걸 가장 잘 보여줬던 것이 설국열차의 단백질바라고 생각합니다. 아마 우리의 싸움은 (2)에서 (3) 사이가 아니라 (1)과 (2) 사이에서 이루어질 것입니다.


3. 이른바 기독교인들이 절대적 소유권 사상을 더 많이 지지한다는 것은 이들이 성경을 잘 모르거나 알고도 거부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들을 설득해서 기본소득 운동에 참여하게 하기보다는 새로운 교회를 세워서 종교심을 가지고 있는 비기독교인을 포섭하는 것이 더 효과적인 운동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논문5. 정미현 - 기본소득 논의에 대한 여성신학적 성찰


츠빙글리의 신학에서도 공유부, 토지 및 조세제도 개선과 사회적 약자보호를 발견할 수 있음. 이러한 종교개혁의 정신이 2016스위스 기본소득 국민투표, 탄소세 도입에도 녹아있음.

기본소득은 성불평등완화와 돌봄노동에 대한 사회적 인정이라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음




논문6. 강원돈 - 생태학적 지향의 기본소득에 대한 사회윤리적 구상


자본축적과 팽창은 사회적 가난(빈부격차)과 생태계 위기를 동시에 불러옴. 경제활동은 생태계가 견뎌주는 한도 내에서 이루어져야 함. 경제가 무한히 팽창하게 둬선 안 됨. 따라서 경제성장을 속도를 지금보다 늦춰야 함. 이를 위하여 각종의 증세로 축적된 자본의 상당부분을 거둬들여 사회적 가난을 해소하고 생태계위기를 극복하는데 투입해야 함.




논문7. 전강수 - 좌우파 기본소득 모델과 변동형 기본소득제


좌파 기본소득 - 충분한 기본소득 우선. 실질적 자유 보장이 목표.
문제: 조롱당함. 실현이 어려움.

우파 기본소득 - 복지제도를 기본소득으로 일원화(행정비용 절감). 재원은 소득세로.
문제: 공유부 인정 안 함. 국가의 빈곤해소 의무 부정.

변동형기본소득(정통파 기본소득) - 징세에 정당성이 충분한 공유부를 발굴하여 기본소득으로 배당.

오세훈 안심소득 - 행정비용과 낙인효과 여전
유승민 공정소득 - 기존복지급여 수준 저하 가능성

기본소득은 원래 복지정책도 경제정책도 아님. 그 사람의 몫을 돌려주는 정의의 문제.

공유부에 정당하게 징세를 한 뒤, 이를 공평하게 나눠주는 방식으로서 기본소득이 있는 것. 알래스카 영구기금과 스위스 탄소세가 그 예시. 이러면 예산 문제나 푼돈 조롱에서 자유로워짐.

추미애의 지대개혁이 정통파 기본소득에 가까움.

한국 기본소득 운동은 좌파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음. 기본소득은 공유부에서 오는 것이고 따라서 그 액수는 변동되기 마련임. 기본소득 액수를 미리 정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함.




논문8. 야닉 판데르보흐트 - 아웃사이더 친화적인 정책?: 부분적 기본소득과 노동 시장의 이중 구조화 완화


기본소득은 인사이더 노동자와 아웃사이더 노동자의 격차를 줄이기 위한 핵심요소임

자유주의적 평등주의 관점에서 공정사회에서는 기본적인 경제적 보장이 있어야 함

부당한 업무관계를 거부할 수 있게 해주는 기본소득은 아웃사이더들에게 세가지점에서 유익함
- 기본소득이 자발적인 근로시간 단축을 위한 보조금 역할을 함
- 돌봄노동 및 훈련활동 같은 비고용 활동을 보조함
- 보다 안정적인 직업 전환을 촉진함

캐나다 민컴 실험의 시사점
- 기본소득이 저임금 노동의 임금을 올리도록 유도함
- 사회적으로 유용한 비고용 활동이 촉진됨
- 정신건강증진 효과가 있음

2017년 핀란드 실험의 시사점
- 노동시장 참여를 저해하지 않음
- 정신건강증진 효과가 있음

2018 네덜란드 실험의 시사점
- 기본소득을 한다고 하더라도 적게 일하지 않음
- 안정적인 일자리를 확보할 가능성이 더 높아짐
- 자율감이 높아짐

부분적기본소득은 최저임금제도의 유지 및 강화와 구직서비스가 훌륭할 때 역할을 더 잘할 수 있음. 기본소득이 기본적인 구직 복지서비스의 대체품으로 간주되어서는 안 됨.




양목사의 보론 - 성서에서 발견하는 기본소득의 단서


만나와 메추라기

[출16:4-18, 새번역]
4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먹을 것을 하늘에서 비처럼 내려 줄 터이니, 백성이 날마다 나가서, 그날 그날 먹을 만큼 거두어들이게 하여라. 이렇게 하여, 그들이 나의 지시를 따르는지, 따르지 않는지 시험하여 보겠다.
5 매주 엿샛날에는, 거두어들인 것으로 먹거리를 준비하다 보면, 날마다 거두던 것의 두 배가 될 것이다."
6 모세와 아론이 모든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였다. "저녁이 되면, 당신들은 이집트 땅에서 당신들을 이끌어 내신 분이 주님이시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7 당신들이 우리를 보고 원망한 것이 아니라, 주님을 원망하였습니다. 주님께서 당신들이 주님을 원망하는 소리를 들으셨습니다. 이제 아침이 되면, 당신들이 주님의 영광을 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이라고, 당신들이 우리를 보고 원망하십니까?"
8 또 모세가 말하였다. "주님께서 저녁에는 당신들에게 먹을 고기를 주시고, 아침에는 배불리 먹을 빵을 주실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당신들이 주님을 원망하는 소리를 들으셨습니다. 당신들이 하는 원망은 우리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 하는 것입니다."
9 모세가 아론에게 말하였다. "주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이 원망하는 소리를 들으셨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주님 앞으로 가까이 나아오라고 일러주십시오."
10 아론이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할 때에, 그들이 광야를 바라보니, 주님의 영광이 구름 속에 나타났다.
11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12 "나는 이스라엘 자손이 원망하는 소리를 들었다. 너는 그들에게 '너희가 저녁이 되면 고기를 먹고, 아침에는 빵을 배불리 먹을 것이다. 그렇게 될 때에 너희는 나 주가 너희의 하나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 하고 말하여라."
13 그 날 저녁에 메추라기가 날아와서 진 친 곳을 뒤덮었고, 다음날 아침에는 진 친 곳 둘레에 안개가 자욱하였다.
14 안개가 걷히고 나니, 이럴 수가, 광야 지면에, 마치 땅 위의 서리처럼 보이는, 가는 싸라기 같은 것이 덮여 있는 것이 아닌가!
15 이스라엘 자손이 그것을 보고, 그것이 무엇인지 몰라서, 서로 "이게 무엇이냐?" 하고 물었다. 모세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이것은 주님께서 당신들에게 먹으라고 주신 양식입니다.
16 주님께서 당신들에게 명하시기를, 당신들은 각자 먹을 만큼씩만 거두라고 하셨습니다. 당신들 각 사람은, 자기 장막 안에 있는 식구 수대로, 식구 한 명에 한 오멜씩 거두라고 하셨습니다."
17 이스라엘 자손이 그대로 하니, 많이 거두는 사람도 있고, 적게 거두는 사람도 있었으나,
18 오멜로 되어 보면, 많이 거둔 사람도 남지 않고, 적게 거둔 사람도 모자라지 않았다. 그들은 제각기 먹을 만큼씩 거두어들인 것이다.

만나는 하늘에서 대가 없이, 매일 내립니다. 그리고 모두에게, 평등하게 내리지요. 무조건성, 정기성, 개별성, 보편성이라는 기본소득의 요건과 유사합니다.



■ 오병이어로 오천명을 먹이심

[요6:5-13, 새번역]
5 예수께서 눈을 들어서,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모여드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말씀하셨다. "우리가 어디에서 빵을 사다가,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6 예수께서는 빌립을 시험해 보시고자 이렇게 말씀하신 것이었다. 예수께서는 자기가 하실 일을 잘 알고 계셨던 것이다.
7 빌립이 예수께 이렇게 대답하였다. "이 사람들에게 모두 조금씩이라도 먹게 하려면, 빵 이백 데나리온어치를 가지고서도 충분하지 못합니다."
8 제자 가운데 하나이며 시몬 베드로와 형제간인 안드레가 예수께 말하였다.
9 "여기에 보리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는 한 아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많은 사람에게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10 예수께서는 "사람들을 앉게 하여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 곳에는 풀이 많았다. 그래서 그들이 앉았는데, 남자의 수가 오천 명쯤 되었다.
11 예수께서 빵을 들어서 감사를 드리신 다음에, 앉은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시고, 물고기도 그와 같이 해서, 그들이 원하는 대로 주셨다.
12 그들이 배불리 먹은 뒤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남은 부스러기를 다 모으고, 조금도 버리지 말아라."
13 그래서 보리빵 다섯 덩이에서, 먹고 남은 부스러기를 모으니, 열두 광주리에 가득 찼다.

오병이어도 만나와 마찬가지입니다. 노동이나 심사를 요구하지 않는, 예수님과 함께하는 공동식사입니다. 이 식사는 기독교 초기공동체의 예배인 "아가페"가 되었습니다. 이 모임에서는 각자가 함께 먹을 양식을 자기가 먹을 것보다 넉넉하게 가져왔습니다. 가난한 사람은 빈손으로 오고 부자인 사람은 많은 사람을 먹일 수 있도록 많은 양을 가지고 왔습니다. 그리고 각자가 배부를 만큼 먹었습니다. 우리가 나눠 먹고나면 가난한 사람을 다 구제하고도 양식이 남는다는 것은 초기교회의 경험이었던 것이죠. 한주에 한번씩 (혹은 그보다 자주) 힘 닿는대로 모으고 배부를 만큼 나누는 것, 이것이 황제의 배급과 대조되는 기독교 공동체의 기본식사였습니다.


만나와 오병이어

[요6:30-33, 새번역]
30 그들은 다시 물었다. "우리에게 무슨 표징을 행하셔서, 우리로 하여금 보고 당신을 믿게 하시겠습니까? 당신이 하시는 일이 무엇입니까?
31 '그는 하늘에서 빵을 내려서, 그들에게 먹게 하셨다' 한 성경 말씀대로,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습니다."
32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에서 너희에게 빵을 내려다 주신 이는 모세가 아니다. 하늘에서 참 빵을 너희에게 주시는 분은 내 아버지시다.
33 하나님의 빵은 하늘에서 내려와 세상에 생명을 주는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성서가 오병이어를 만나와 연결짓는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6장에서 오병이어와 만나가 함께 언급됩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에게 기적을 요구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오병이어 사건을 보여주십니다. 스스로를 빵이라고 부르시며 자신의 것을 남과 나누는 모습을 보여주십니다. 이를 통해 기적은 놀람의 대상이 아니라 실천할 과제로 변화합니다.



■ 포도원 주인의 비유

[마20:1-16, 새번역]
1 "하늘 나라는 자기 포도원에서 일할 일꾼을 고용하려고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선 어떤 포도원 주인과 같다.
2 그는 품삯을 하루에 한 데나리온으로 일꾼들과 합의하고, 그들을 자기 포도원으로 보냈다.
3 그리고서 아홉 시쯤에 나가서 보니, 사람들이 장터에 빈둥거리며 서 있었다.
4 그는 그들에게 말하기를 '여러분도 포도원에 가서 일을 하시오. 적당한 품삯을 주겠소' 하였다.
5 그래서 그들이 일을 하러 떠났다. 주인이 다시 열두 시와 오후 세 시쯤에 나가서 그렇게 하였다.
6 오후 다섯 시쯤에 주인이 또 나가 보니, 아직도 빈둥거리고 있는 사람들이 있어서, 그들에게 '왜 당신들은 온종일 이렇게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리고 있소?' 하고 물었다.
7 그들이 그에게 대답하기를 '아무도 우리에게 일을 시켜주지 않아서, 이러고 있습니다' 하였다. 그래서 그는 '당신들도 포도원에 가서 일을 하시오' 하고 말하였다.
8 저녁이 되니, 포도원 주인이 자기 관리인에게 말하기를 '일꾼들을 불러, 맨 나중에 온 사람들부터 시작하여, 맨 먼저 온 사람들에게까지, 품삯을 치르시오' 하였다.
9 오후 다섯 시쯤부터 일을 한 일꾼들이 와서, 한 데나리온씩을 받았다.
10 그런데 맨 처음에 와서 일을 한 사람들은, 은근히 좀 더 받으려니 하고 생각하였는데, 그들도 한 데나리온씩을 받았다.
11 그들은 받고 나서, 주인에게 투덜거리며 말하였다.
12 '마지막에 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밖에 일하지 않았는데도, 찌는 더위 속에서 온종일 수고한 우리들과 똑같이 대우하였습니다.'
13 그러자 주인이 그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말하기를 '이보시오, 나는 당신을 부당하게 대한 것이 아니오. 당신은 나와 한 데나리온으로 합의하지 않았소?
14 당신의 품삯이나 받아 가지고 돌아가시오. 당신에게 주는 것과 꼭 같이 이 마지막 사람에게 주는 것이 내 뜻이오.
15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수 없다는 말이오? 내가 후하기 때문에, 그것이 당신 눈에 거슬리오?' 하였다.
16 이와 같이 꼴찌들이 첫째가 되고, 첫째들이 꼴찌가 될 것이다."

기본소득의 지향을 결정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포도원 주인의 비유입니다. 기본소득과의 유사성보다도 중요한 것은 이것이 "하나님나라"에 대한 비유라는 것입니다. 포도원 주인은 많이 일한 사람이든, 적게 일한 사람이든, 거의 일하지 않은 사람이든 같은 금액을 지급합니다. 한 데나리온, 즉 그 가족의 생활비입니다. 노동이나 기여와 무관하게 그 사람의 생존을 보장하는 것. 이것이 하나님나라의 한 모습입니다. 기본소득에서는 이를 충분성이라고 부릅니다. 충분성이 없다고 하여 기본소득이 아닌 것은 아니지만, 분명 우리가 바라는 멋진 신세계로의 한 단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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