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inclair Aug 07. 2023

난 아무거나 다 좋아

내 인생의 주인은 누구일까 Part. 2

        저는 줄곧 제 자신을 마음이 참 넓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곤 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둥글둥글한 성격 덕분에 학교를 다닐 때도 많은 친구들과 친하게 지냈습니다. 가끔 지겹도록 공부만 하다가 머리도 식힐 겸 주말에 친구들과 약속을 잡았습니다. 그 주말만큼은 공부에 대한 생각은 하나도 하지 않고, 오로지 휴식하는 날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말의 약속은 늘 완벽해야 했습니다. 이번 주말에는 무엇을 할지, 무얼 먹을지 모두 정해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약속을 잡은 친구들이 제게 물어보면 저는 항상 같은 대답을 했습니다. "나는 아무거나 다 좋아!" 저는 딱히 상관없었습니다. 친구들 중에서는 피시방에 가서 게임을 하는 것보다 영화관에서 영화 보는 걸 더 좋아하는 친구도 있었고, 느끼한 피자보다는 매콤한 떡볶이를 좋아하는 친구도 있었죠. 저는 저보다 취향이 확실한 친구들에게 그 선택권을 넘겨줬습니다. 저는 말 그대로 영화를 보든 게임을 하든 뭐든 좋았고, 피자를 먹든 떡볶이를 먹든 딱히 가리는 게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냥 친구들과 함께 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그래서 저는 저 스스로 친구들을 배려하는 성격 좋고 착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가장 잘 알고 있어야 할, 그러나 그렇지 못한

        소대장 생활을 하며 큰 깨달음을 얻었죠. 제 삶의 주인이 다른 사람이면 안 된다. 그런데 주체적인 삶을 살겠다고 다짐은 했는데 막상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막막했습니다. 아무도 제게 가르쳐준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10년이 넘게 학교를 다녔지만 그곳에서 배운 건 '어떻게 하면 내 삶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을까'가 아닌 '어떻게 하면 더 좋은 대학교에 갈 수 있을까'였습니다. 이렇듯 주체적인 삶이란 지금까지 살아왔던 삶의 모습과는 분명히 달랐기에 눈앞이 캄캄하기만 했습니다. 그러다 문득 친구들에게 늘 '아무거나 상관없다'라고 답했던 학창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그동안 아무런 문제의식이 없었던 그 말 한마디가 저를 주체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한걸음 나아가게 만들었습니다.

        주말에 약속을 잡으며 친구들에게 아무거나 상관없다고 답했던 그때를 '다시' 생각해 보니 저는 성격이 둥글고 착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까다롭지 않은 사람'이 아니라 그저 '취향이 없는 사람'이었던 겁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취향이 없는 게 아니라 '제 취향을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제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정확히 몰랐던 겁니다. 취향이 뚜렷하지 않았기 때문에 두루뭉술한 모습을 무기 삼아 제 장점으로 생각했던 것이죠. 20년 넘도록 언제나 함께 해온 제 자신에 대해서 가장 많이 알고 있어야 할 제가 가장 소홀했고 아는 게 없었습니다. 그래서 주체적인 삶을 살기 위해 고민하는 첫 단추로 '제 자신'에 대해서 알아보기로 결심했습니다.


나 자신과의 소개팅     

        저를 알아보기 위해 책상 앞에 앉아 종이 한 장을 꺼냈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제 자신에 대해서 적어보고 싶었기 때문이죠. 무슨 음식을 좋아하고, 무슨 색깔을 싫어하는지. 이처럼 정말 간단한 질문부터 시작했습니다. 그리 크지도 않은 A4 종이 한 장이었지만 막상 그걸 채우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마치 처음 만난 사람과 소개팅을 하면서 그 사람의 취향을 하나씩 알아가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소개팅의 상대가 평생을 저와 함께 한 제 자신이라니. 참 아이러니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리고 부끄럽지만 저는 놀라울 정도로 제 자신에 대해서 잘 몰랐습니다. 연애할 때 여자친구의 취향은 하나라도 까먹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제가 정작 제 취향은 하나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처음으로 제 자신에 대해서 알아가는 기분이 썩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는 생각으로 차분히 그리고 신중하게 적기 시작했습니다.

        저에 대해서 알아가기 시작한 뒤로 일주일 남짓한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런데 종이 한 장은커녕 절반도 채우지 못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 종이 한 장을 가득 채울 수 있을까 고민하던 찰나에 오랜만에 고등학교 친구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고등학생 때 같은 반을 두 번이나 했기 때문에 친구와 함께 한 추억이 가득했습니다. 그리고 그 친구와의 만남이 민망하게 비어있던 A4 종이 한 장을 순식간에 채울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과연 친구와의 만남이 어떻게 그 텅 비어있던 종이를 가득 채울 수 있게 했을까요?

        그날은 무척이나 더웠습니다. 그래서 시원한 에어컨 공기로 가득한 카페에서 친구와 함께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그 시절 추억거리를 하나 둘 이야기했습니다. 고등학교 때 반 친구들과 함께 계곡에 놀러 가 서로를 빠뜨리고 놀다가 허기진 배를 달래고자 서투르게 삼겹살을 구워 먹었던 추억. 그땐 세상의 전부인 줄 알았던 모의고사를 망해 우울한 저를 위로해 주려고 야간 자율학습을 빼고 피시방에 데리고 간 추억. 그렇게 자연스럽게 서로가 기억하는 서로의 모습도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친구는 저보다 저를 더 잘 알았습니다. 고등학생 때 제가 무엇을 잘했고 못했는지. 무엇을 좋아했고 싫어했는지. 언제 행복했고 스트레스를 받았는지에 대해서 말이죠. 이 친구와의 만남을 통해 저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과거에 그 답이 있다

        무엇을 잘하고 못하는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언제 행복하고 스트레스를 받는지. 우리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지 알기 위한 한 가지 방법은 바로 '과거의 우리'를 돌이켜보는 것입니다. 물론 이 세상에 처음 눈을 뜬 순간부터 모든 순간을 기억하는 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있는 힘껏 기억이 닿는 곳까지 떠올려보는 겁니다. 친구와 놀이터가 세상의 전부인 줄 알았던,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뽀로로처럼 '노는 게 제일 좋았던' 초등학생 시절부터 시작해 보는 겁니다.

        만약 혼자서 기억하기 버거울 땐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받는 것도 꽤나 좋은 방법입니다. 처음으로 세상에 태어나 울음을 터뜨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항상 같은 자리에서 우리를 응원해 주는 가족. 끊임없는 공부에 지쳐 허덕일 때마다 옆에서 터무니없는 말 한마디로 장난치며 그날 하루를 행복하게 만들어줬던 친구. 호랑이처럼 무서웠지만 때로는 가족보다 더 가까이 그리고 더 따뜻하게 위로해 줬던 선생님. 이처럼 우리 곁에는 늘 함께 했던 누군가가 있었습니다. 이들에게 물어보는 겁니다. 우리가 어떤 아이였는지. 어떤 친구였는지. 어떤 학생이었는지. 이들이 기억하는 우리의 모습지금 우리 스스로를 알아가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아무거나 다 좋다'며 해맑은 모습으로 선택권을 친구들에게 넘겨줬던 제 과거의 모습이 '어떻게 하면 주체적인 삶을 살 수 있을까'에 대한 첫 번째 답을 알려주었습니다. 저는 성격이 좋아서 그렇게 행동한 게 아니었습니다. 제가 어떤 사람인지를 몰랐기 때문에 감히 선택할 수 없었던 겁니다. 그래도 이제는 오로지 제 자신에 대해서 적혀 있는 '종이 한 장'이 생겼습니다. 그리 심오하고 대단한 내용은 아니지만, 이 종이 한 장을 통해서 어렴풋이 제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저는 주체적인 삶을 살기 위한 첫걸음을 내디뎠습니다. 이제 다음 걸음을 위해 또 다른 고민을 시작해야 할 때입니다.

작가의 이전글 모범생이 반항아가 되는 이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