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음악을 들을까, 사용할까?
음악은 <기능>을 한다
음악은 예술입니다. 동시에 과학이기도 합니다.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들이 musical behavior를 각자의 관점에서 탐구해왔습니다.
사회학자는 이 음악이 어떤 집단의 정체성을 나타내는지를 주목합니다
민속학자는 이 음악이 어떤 의례 속에서 사용되었는지를 탐색합니다
인지과학자는 우리 두뇌가 어떻게 멜로디를 기억하고 예측하는지를 실험합니다
결국 음악은 단순한 소리가 아니라, 인간의 인지와 감정, 행동과 상호작용이 복잡하게 얽힌 사회문화적 현상이며, 다학제적으로 연구해야 하는 대상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음악은 결코 홀로 만들어질 수 없다
음악은 혼자 만들어지고 혼자 소비되지 못합니다. 음악이 사회학적으로 다루어져야 하는 이유이지요. 음악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즉 사회적 맥락 안에서만 탄생하고 의미를 가집니다. 음악학자 Merriam은 음악을 세 가지 수준에서 이해하자고 말합니다.
음악에 대한 사회적 개념과 정의
음악을 만들고 듣고 반응하는 실제 행동
귀로 들리는 소리의 결과물
우리는 보통 세 번째, 소리의 수준만을 음악이라고 생각하지만, 음악은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까지 포함된 총체적 행위입니다.
요즘 숏폼에서 특정 음악이 나오면 정해진 영상 포맷이나 리액션이 따라붙습니다. 예를 들어 해골 밈 배경음악의 하이라이트가 나오면 화면이 흑백으로 바뀌고 해골 이모지가 등장해야 할 것 같은 기대가 생깁니다. 이처럼 음악은 단순히 듣는 것만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듣는 사람의 반응, 그 반응이 사회적으로 정해진 규범일 때 음악은 행동을 수반하는 사회적 도구가 됩니다.
음악의 10가지 기능
음악은 단순히 재생되는 대상이 아니라, 분명 무언가를 하고 있습니다. 민족 음악학자 Merriam은 음악이 공동체에서 수행하는 기능들을 열 가지로 정리했습니다.
첫 번째 기능은 정서적 표현입니다. 음악은 우리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을 자연스럽게 드러낼 수 있게 해줍니다. 음악은 감정을 정리하고, 때로는 공동의 감정을 함께 나누는 도구가 됩니다. 최근에 실연을 당한 친구와 함께 코인노래방을 가서 소주 한잔을 함께 불러준 기억이 나네요.
두 번째는 심미적 즐거움입니다. 음악 자체의 아름다움, 구조, 조화, 리듬을 감상하는 데서 오는 기쁨입니다. 클래식 공연장에서 관현악의 섬세한 조화를 감상하거나, 재즈의 즉흥성을 음미하는 일은 음악이 예술로서 기능하는 전형적인 사례입니다. 이전에 같이 밴드를 했던 친구들의 술자리에서는 늘 번갈아가면서 음악을 추천합니다. 머리가 절로 흔들어지는 노래라면 계속 듣고, 아니라면 다음 사람의 선곡으로 넘어갑니다. 음악의 심미적 즐거움을 누리다 보면 어느새 해가 떠있습니다.
세 번째는 오락의 기능입니다. 대중음악은 일반적으로 사람들의 주의를 기분 좋게 사로잡고, 즐겁게 하거나 기분 전환을 시켜주는 목적으로 만들어집니다. 팬들은 가수의 공연을 보면서 즐거움을 느끼고, 일상에서 벗어나 기분 전환을 합니다. 일상적으로 출퇴근길에 듣는 경쾌한 음악이나 집에서 쉬면서 듣는 편안한 음악은 우리의 기분을 관리하고 일상생활에 만족감을 더해주기도 합니다.
네 번째는 의사소통의 기능입니다. 음악은 말보다 더 깊은 의미를 직관적으로 전달합니다. 가사 없는 클래식 음악이나 영화 음악만으로도 인물의 감정이나 장면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어머니가 아기에게 불러주는 자장가는 의사소통의 기능을 하기도 합니다. 다만 특정 단어의 의미를 전달하기보다는, 멜로디와 리듬, 음색을 통해 안정감, 사랑, 위로와 같은 감정을 아기에게 비언어적으로 전달합니다. 이는 아기가 세상을 인지하고 어머니와 정서적 유대감을 형성하는 데 필수적인 초기 의사소통 방식이 됩니다.
다섯 번째는 상징 표현 기능입니다. 음악은 특정 집단이나 세대, 문화의 정체성을 상징합니다. 예를 들어 교가는 학교의 가치관을, 군가는 집단의 사기를, 90년대 힙합은 특정 정치적·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했습니다.
거침없이 하이킥에서 신지가 만든 풍파고 교가는 다른 학교와는 차별화 된 분명한 상징 표현이 될 것 https://www.youtube.com/watch?v=OAv6k0wEBTc여섯 번째는 신체적 반응 유도 기능입니다. 음악은 리듬과 박자를 통해 신체적 움직임을 자연스럽게 유도합니다. 빠른 템포의 음악으로 러닝 페이스를 조절하는 플레이리스트도 최근에 많이들 나오고 있습니다. 인간은 소리에 반응하는 감각을 본능적으로 갖고 있고, 음악은 그 반응을 리듬화합니다.
일곱 번째는 행동 강화 기능입니다. 음악은 사회적 가치와 규범을 내면화하게 만드는 도구가 됩니다. 국가 제창 시 기립하는 것, 종교 집회에서 음악에 맞춰 경건한 태도를 취하는 것 모두 여기에 해당합니다.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저학년에서 부르는 노래들은 종종 가치와 이상을 가르치는 내용을 담고 있기도 합니다.
착한 어린이는 둥근해가 뜨면 일찍 일어나야 한다는 규범을 "둥근 해가 떴습니다"라는 노래를 통해 알려주곤 합니다.여덟 번째는 사회 제도와 의례를 정당화하는 기능입니다. 음악은 종교와 제도, 의식의 권위를 보완하고 강화합니다. 예배에서 불리는 찬송가나 의례 음악은 신자들에게 공동체의 믿음을 상기시키고, 신성한 분위기를 조성하여 종교적 경험을 심화시킵니다. 이러한 음악은 종교적 가르침에 대한 순응을 촉진하고, 신앙심을 강화하며, 종교적 공동체의 유대감을 형성하는 데 기여합니다. 국가의 애국가나 국가를 상징하는 음악은 국민들에게 애국심, 단결심, 그리고 국가에 대한 충성심을 고취시키며, 국가라는 사회 제도의 정당성을 강화합니다. 올림픽과 같은 국제 행사에서 연주되는 국가들은 해당 국가의 존재와 가치를 전 세계에 알리고 국민들의 자긍심을 높이는 데 기여합니다.
아홉 번째는 문화의 연속성과 안정성 유지 기능입니다. 음악은 세대를 연결하고, 공동체의 문화적 기억을 유지시킵니다. 만약 특정 공동체가 조상들이 수백 년간 불러온 노동요나 축가 같은 민요를 계속해서 부른다면, 이 노래들은 단순히 멜로디와 가사를 전달하는 것을 넘어, 그 공동체의 역사, 가치관, 생활 방식, 그리고 집단적 정체성을 후손들에게 끊임없이 상기시키고 가르칩니다. 이러한 음악은 공동체의 뿌리와 연속성을 시각적으로 볼 수 없더라도 청각적으로 경험하게 하여, 문화적 안정성을 유지하는 핵심적인 역할을 합니다.
마지막은 사회 통합 기능입니다. 음악은 다른 무엇보다도 사람들을 한데 모으는 역할을 합니다. 음악은 사람들이 집단 활동에 참여하도록 유도하고, 권장하며, 어떤 경우에는 거의 강제하기도 합니다. 월드컵 응원가를 함께 부르는 순간, 낯선 사람들과도 하나의 팀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이유입니다. 음악적 경험이 없었다면 서로 접촉하지 않았을 개개인들이 음악을 통해 함께 모이게 됩니다. 집단적인 음악 경험은 사람들이 친밀하면서도 질서 있고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방식으로 상호작용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콘서트장에서 수천 명이 동시에 떼창하는 순간도 마찬가지입니다.
2002년에 너무 어렸어서 아쉽다(?)이렇듯 음악은 단지 듣는 것이 아니라, 사회 속에서 행동을 만들고 감정을 조직하고 관계를 구성합니다. Merriam은 음악이 인간의 삶에서 수행하는 이 다층적 기능들을 통해, 음악을 단지 예술이나 취향이 아닌 인간 행동의 일부이자 사회적 실천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말합니다.
어디부터가 음악일까?
물리적 측면에서 음악은 일정한 형식적 조건을 갖습니다. 음고, 세기, 음색, 리듬, 쉼표와 반복 같은 조직, 주기성, 고정된 음고를 가진다면 단순 소리가 아닌, 음악의 기준을 충족한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Carterette와 Kendall은 음악을 인식하는 데 필요한 인지적 조건들을 제시했습니다. 구조적 아이디어의 전개, 청각적 그루핑, 기준음의 존재, 옥타브 분할, 기준 박자와 리듬 패턴 등이 있어야 음악으로 인식된다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음악을 규정하는 데 있어 물리적이거나 인지적인 조건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일정한 리듬과 음고를 갖춘 소리가 있다고 해도, 그것이 누구에 의해, 어떤 상황에서, 어떤 의도로 사용되었는지에 따라 음악으로 인식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궁극적으로 음악은 인간의 해석을 통해 완성됩니다. 자연의 새소리나 바람 소리도 누군가가 그것을 음악적이라 느끼고 조합해 작품으로 제시한다면, 그 순간부터 음악으로 기능할 수 있습니다. 존 케이지(John Cage)의 《4′33″》처럼 연주자가 아무 소리도 내지 않는 동안 청중이 주변의 소리를 듣게 만드는 작품은, 소리 그 자체보다 그 소리를 바라보는 태도가 음악성을 결정짓는다는 점을 잘 보여줍니다.
연주자는 총 4분 33초 동안 아무 악기도 연주하지 않으며, 이 곡은 세 악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연주의 피아노 뚜껑을 닫고 여는 등 간단한 동작으로 시작과 끝을 알 수 있죠음악은 분명 기능을 가진 존재입니다. 또한 음악은 사회적 맥락 속에서 특정한 목적을 수행할 때, 그 존재 의미가 더욱 분명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의 행동을 유도하고, 맥락을 만들고, 정체성을 조직하는 인터페이스가 될 수 있습니다. 디지털 프로덕트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이런 내용을 생각해볼 수 있겠습니다.
사용자의 행동을 유도하기 위해서 어떤 청각적 요소를 사용할 수 있는가?
사용자의 특정 감정 상태를 만들기 위해 어떤 사운드를 사용할 수 있는가?
소리를 사용해서 어떤 맥락에서 어떤 규범을 디자인 할 수 있는가?
이 맥락에서 이 소리를 사용자가 어떻게 해석할 수 있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