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에 진심은 안 찍히니까, 정성 데이터랑도 같이 놀아봅시다
2025년 6월 14일, 날씨가 유난히 좋았던 토요일에 데이터야놀자에 발표자로 참가했습니다. 데이터 분석과 AI를 중심으로 한 다양한 실무 이야기가 오가는 이 자리에는 예전부터 관심이 많았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직접 무대에 서게 되어 무척 설레고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기회 되면 밖에서 발표 많이 해봐요.”
올해 초, 저에게 태블로를 알려주신 빅스데이터 이사님 승일쌤께서 건네주신 조언입니다. 외부 발표라는 게 자주 있는 기회는 아니지만, 그 말을 마음에 담아 발표 자리가 생긴다면 소중하게 기회에 응하다 보니 올해 상반기에만 벌써 두 번째 발표를 하게 되었네요. 지난 3월 글또 10기 PM PO 반상회에서 MVP 없이 PMF 검증해 보기라는 주제로 발표를 진행한 이후, 내게는 평범했던 경험이 누군가에겐 꽤 의미 있게 다가갈 수도 있구나 하는 걸 느꼈고, 그 이후로 경험 공유가 주는 힘에 점점 더 빠져들고 있습니다.
저는 데이터 분석가는 아니지만, 데이터를 진심으로 좋아하는 기획자입니다. 평소에도 데이터를 통해 사람들의 삶과 경험을 더 잘 이해하고 싶은 마음으로 일해왔습니다. 제겐 평범하지만 상대적으로 숫자에 익숙한 분들께 의미가 있을 수 있는 데이터 이야기가 뭐가 있을지 고민해 본 결과 정성데이터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했습니다.
지난 1년간 일하면서 가장 흥미로웠던 순간 중 하나는, 정량 데이터와 정성 데이터를 뜯어보니 나란히 하나의 크리티컬 한 문제를 가리키고 있었던 경험이었습니다. 숫자와 말이 같은 방향을 가리킬 때, 문제의 실체가 더 또렷하게 드러난다는 걸 처음 실감했죠. 보안 이슈로 비록 사례를 공개하긴 어려워서 아쉽지만, 이 경험은 저에게 아주 큰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저는 정성과 정량 데이터가 붙었을 때 해석의 깊이와 방향을 바꿀 수 있다는 걸 몸으로 느꼈고, 이 감각을 함께 나누고 싶어 발표를 준비했습니다. 특히 정성 데이터를 다루는 체계가 아직 없는 작은 팀에서 일하고 계신 분들께 용기가 되고 저 또한 아주 작은 팀에서 일을 하고 있으니! , 혹은 숫자만 보고 의사결정을 내려야 하는 환경에 익숙한 분들께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발표를 진행했습니다.
발표에서는 정성적인 접근을 하지 않았더라면 놓쳤을 중요한 인사이트를 중심으로 2가지 제품에 대한 사례를 소개했습니다.
이전 글또 PM PO 반상회 발표에서도 공유드렸던 회고 습관 형성 서비스 아이디어가 태어난 배경부터 이야기했습니다. 회고를 습관화하고 싶지만 번번이 실패했던 저의 개인적인 경험에서 출발했고, 많은 사람들도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에 왜 회고를 미루는지를 계속해서 예비 사용자들에게 심층적으로 질문했고, “회고는 나와의 약속이니까 미뤄도 된다”는 인식을 발견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와의 약속을 다른 대상과의 상호작용으로 만들어보고자 했습니다. AI 어시스턴트가 회고에 반응해 주는 MVP를 만들었고, 그 결과 회고 작성 빈도가 50% 이상 증가하는 성과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어서 로그로는 보기 어려운 감정의 깊이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제품을 계속 만들어 나가야 할지 고민하던 와중 앱을 사용하시고 일부 사용자분이 AI 어시스턴트가 제공한 응답을 읽고 조용히 눈물을 글썽거리시는 것을 목격한 적이 있습니다. 이때 ‘이 제품이 누군가에겐 단순한 도구를 넘어 정서적 치유가 될 수 있겠구나’ 하는 깨달음과 확신을 얻었습니다. 이런 감정의 깊이는 어떤 수치나 로그로도 알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이 경험을 통해 정성 데이터는 숫자만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문제를 발견하게 해 주며, 때로는 제품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결정짓는 단서가 된다는 사실을 체감했습니다.
또한 불면증 디지털 치료제를 만들면서 겪었던 사례도 공유드렸습니다. 권장드린 4주 간 앱을 사용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일부 사용자들은 1~2주 사용 후 앱을 중단하셨습니다. 후속 인터뷰에서 “이제 앱 없이도 잘 자기 때문에 쓰지 않았어요”라는 이야기를 듣게 된 사례를 공유했습니다. 정량 데이터만 봤다면 이들은 이탈자로 분류되었겠지만, 실제로는 가장 빠르게 효과를 본 졸업자들이었던 것입니다.
반대로, 높은 순응도와 개선된 불면증 점수만으로는 알 수 없었던 함정도 있었습니다. 어떤 사용자들은 4주간 열심히 사용하셨는데 나중에 대화해 보니 “이 앱 없으면 다시 잠을 못 잘까 봐 무서워요”라고 이야기했고, 이는 우리가 성공 사례로 생각했던 사용자가 오히려 앱에 대한 의존과 불안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이 경험은 단순히 수면을 개선하는 것뿐 아니라, 사용자가 안심하고 제품을 떠날 수 있도록 설계하는 것의 중요성을 일깨워주었습니다.
이 경험을 통해 어떤 지표가 낮다고 해서 꼭 나쁜 경험을 뜻하는 것은 아니며, 반대로, 지표가 좋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경험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중요한 건 알겠는데 그래서 어쩌라고? 가 없는 발표를 개인적으로 덜 선호하는 터라, 어렵지만 이번 발표에서 실천법을 전달드리기 위해 생각을 해봤습니다. 정성 데이터가 단순한 ‘느낌’이나 ‘관찰’에 그치지 않고 제품을 실질적으로 움직이게 하는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시간도 없고 자원도 부족한 작은 팀에겐, 인터뷰가 낭비로 여겨질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분들을 위해 실제 사용자 대신 가상의 페르소나와 대화해 보는 방법을 제안드렸습니다.
저는 최근 청각 재활 디지털 치료제를 만들면서 겪었던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인공와우 사용자분들이 국내에 많지 않기 때문에 이분들을 직접 만나기 힘들다는 점이었습니다. 사용자 한 분 한 분 만나 뵙기가 너무 어렵고 기회도 너무 소중하다 보니 인터뷰 전에 가상 인공와우 사용자를 만들어 인터뷰 예행연습을 해봤는데 너무 도움이 되어서 발표에도 가져오게 되었네요. 어떻게 만드나면요
1. 커뮤니티나 블로그, 리뷰 등을 수집한다
2. 그 내용을 인공지능에게 학습시킨다
저는 청각장애인 갤러리와 인공와우 사용자 카페 글을 크롤링했습니다. 물론 제가 직접 코드를 짜지는 않았고 Firecrawl MCP Server를 이용했습니다. 크롤링한 문서를 GPTs의 knowledge로 넣고 해당 내용을 바탕으로 대답해 달라고 시켰더니 아주 야무지게 사용자인 척 답변을 제공하더군요.
이렇게 가상 사용자와 인터뷰 시뮬레이션을 해본 덕에 진짜 사용자 인터뷰 전부터 우리가 물어야 할 것들을 미리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효과적인 인터뷰 질문들을 마련할 수 있을뿐더러 대화하며 사용자들의 멘탈모델, 니즈나 페인포인트, 낯선 표현들을 미리 익힐 수 있습니다. 인터뷰에 회의적인 조직은 가상의 사용자와 인터뷰를 해봤을 때 실제로 인터뷰를 해보고 싶은 욕구가 들 것이라고 감히 예상해 봅니다.
인터뷰를 하지만, 리소스가 부족하기 때문에 그 내용을 정리하고 해석하는 과정을 못 거치는 아쉬움을 가진 분들이 계실 겁니다. 그런데 사실, 정성 데이터는 정리하고 해석할 때 가장 생생하게 살아나기 때문에, 이 정리 시간을 줄일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제가 추천하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인터뷰 직후 팀원들과 함께 10분만 디브리핑하는 것입니다. 기억에 남는 말이나 행동, 예상하지 못했던 반응을 나누고 제품에 영향을 줄 수 있겠다 싶은 포인트를 공유하다 보면 나중에 기억도 잘 나고 더 빨리 정리할 수 있을뿐더러 조직 내에 근거 기반해서 제품을 만드는 문화를 더 퍼뜨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누구나 가지고 있는 팀원인 LLM을 활용해 인터뷰 코딩을 자동화하는 방법도 함께 공유드렸습니다. 최근 저는 전사문을 가지고 인터뷰 코딩(초벌)을 AI에게 맡겼을 때 극도의 효율을 얻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인터뷰 코딩이란 참여자의 발화나 행동에서 의미 단위를 추출하고, 이를 일정한 기준에 따라 분류하여 연구 질문에 맞는 분석 구조로 정리하는 작업을 의미합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정리되지 않은 말들 속에서 패턴과 공통점, 차이점을 빠르게 찾고 다양한 응답을 비교 분석해 사용자 유형, 니즈, 문제 맥락 등을 도출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정성 데이터를 누군가와 함께 정리하면 감이 아닌 구조와 스토리로 이어지는 맥락을 확보할 수 있으며 해석하고 비판하는 단계에 에너지를 집중할 수 있게 됩니다.
작은 팀에서 정성적으로 리서치를 아무리 잘해도 실행에 옮기지 못한 경험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 정리가 부족해서”라기보단, 팀의 언어로 공유되지 않아서 일지도 모릅니다. 좋은 이야기, 좋은 피드백도 팀 입장에서 바로 쓸 수 없다면, 회의실 밖을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바로 쓸 수 있는 문장으로 정리해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고, 이를 위한 방법 몇 가지를 제안드렸습니다.
설계 원칙처럼 정리하기
단순한 피드백 나열이 아니라, “우리가 이런 케이스를 고려해 제품을 설계해야겠다”는 팀의 기준으로 바꿔보세요. UX 라이팅 원칙처럼 거시적인 제품의 원칙을 만들고 그 원칙을 뒷받침해둘 수 있는 정성적인 근거를 붙이면 좋습니다.
자연스러운 확산을 위한 내부 네이밍 붙이기
사용자 행동이나 감정에서 반복되는 패턴이 있다면, 사내에서 통용될 수 있는 이름을 붙여 사내 밈으로 만들어보세요. 저는 로그 데이터를 보고 일부 사용자들이 제품 내 ‘바로 잠들기’라는 기능을 과하게 사용하는 현상을 포착하고 ‘바잠 중독증’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어요. 어느새 여러 팀에서 이 용어를 밈처럼 사용하게 됐고, 덕분에 이 현상에 대한 논의도 활발하게 이어졌습니다.
공유 문화를 만드는 장치 활용하기
결국 리서치 인사이트는 조직 전체의 대화 주제가 되어야 힘을 가집니다. 조금 부담스러울 수 있겠지만 리서치 결과 전사 보고회를 개최했던 경험, 그리고 그 안에서 Q&A 세션을 길게 가져가는 것이 당시에 도움이 되었습니다. 때로는 내부 퀴즈 대회를 열어 리서치 내용을 문제로 출제하기도 했습니다. 재미있게 공유된 정보는 훨씬 오래 기억되더라고요. 이런 시도들이 단순한 ‘결과 공유’를 넘어, 데이터와 리서치가 팀의 자산으로 기능하는 문화를 만드는 밑거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번 발표를 준비하고 마친 뒤, 몇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인상 깊었다고 피드백을 남겨 주시거나 질문을 주신 부분 중 하나는 MCP로 커뮤니티 데이터를 수집해 GPT와 가상 인터뷰를 진행했던 사례였습니다. “생각도 못 해본 접근이었다”, “작은 조직에서도 충분히 시도할 수 있을 것 같다”는 피드백을 들으며, 나에겐 일상이었던 어떤 실천이 누군가에겐 신선한 인사이트가 될 수 있음을 다시금 느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생각보다 실행 가능한 방법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는 점 역시 체감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결국 ‘이 발표가 나에게 어떤 도움을 줄까’를 기대하며 온다는 사실 또한 발표를 준비하면서 염두해둬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또 깨우셨습니다. 시간이 지나며 자리가 채워졌지만, 처음에 발표장에 도착하고 사람들이 많지 않아서 '발표 제목에 대한 고찰이 너무 없었구나' 하고 앗차 싶었습니다. 발표를 들으시는 분들은 거의 발표 제목만 보고 들어오실 테니까요.
이전에 글로 반상회 발표를 준비하면서 글또 대장님께서 해주셨던 엄청 유용한 피드백 중 하나는 '발표를 듣는 사람이 어떻게 변화했으면 좋겠는가'를 생각해 보라는 것이었습니다. 정성 데이터를 다루는 체계가 아직 없는 작은 팀에서 일하고 계신 분들께 정량만 보면 큰일 날 수 있다는 경계심을 드리자 라는 목표를 설정하니 오늘 발표가 끝나고도 그 마음을 유지하셨으면 좋겠더라고요. 정성적 접근의 중요성을 기억해 주시길 바라는 마음에 스티커도 준비했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가져가셔서 참 뿌듯했습니다. 발표를 들으신 분이 어느 날 스티커를 보시고 우리 팀에서도 정성 리서치를 충분히 할 수 있겠다는 실천 의지를 다시 되새기셨으면 좋겠네요!
그리고 어떤 질문이 나오는가는 발표보다 더 중요한 것 같습니다. 발표장에는 많은 사람이 있지만, 질문은 그중 누가 나의 문제의식에 공감하고 있는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지를 알려주기 때문에 네트워킹에도 상당히 유의미한 것 같습니다. 이번 발표를 통해 내가 얻고자 하는 것을 네트워킹으로 생각해보지는 못했어서 기회들이 상당히 아쉬운데, 앞으로 발표를 하게 된다면 이 흐름이 더 원활하게 이어지도록 구조를 고민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또 발표는 아무리 치밀하게 준비해도 발표자의 관점에서 출발합니다. 그래서 질문을 통해 내가 미처 다루지 못한 지점,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 부분, 또는 오해가 생길 수 있는 단어와 개념을 확인할 수 있어서도 좋았습니다. 그리고 질문이라는 의미는 발표를 들으시는 분들이 이 내용을 자기 실무나 경험과 연결 지어 진지하게 고민했다는 뜻이니 사실 질문보다 중요한 게 어디 있겠습니까. 아 그리고 정말 얘기하고 싶은 QnA 가 있었는데 시간이 충분하지 못해서 충분한 생각을 못하고 충분한 답변을 못 드린 것 같아서 투머치토커는 속상합니다
발표를 준비하면서 한편으로는 용기도 얻었습니다. 최근 데이터와 놀고 싶다고 말하면서도, 현실이 여의치 않다는 이유로 종종 투정만 부려왔던 건 아닐까 하고 반성을 하는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경험을 정리하다 보니 데이터와 놀기 위해 생각보다 작고 꾸준한 시도들을 많이 해오고 있었더라고요. 발표를 통해 제가 어떤 마음으로 제품을 만들고 있는지 정리하고, 그 과정에서 진심이 담긴 데이터도 제품을 움직이는 힘이 될 수 있다는 신념을 제 스스로에게도 다시 전하게 되는 시간이라 무척 의미 있었습니다.
그리고... 발표 직전까지 자료를 붙잡고 있던 지난날의 저를 살짝 혼내고 싶습니다. 현업이 바쁘다 보니 마음처럼 준비에 집중하기 어려웠고, 사전 리허설이 있었음에도 제 기준에서 충분히 다듬지 못한 점이 아쉬움으로 남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발표를 통해 배운 것을 나눌 수 있고 준비하며 배울 수 있도록 재미있는 판을 깔아주신 운영위원분들께 너무 감사드릴 따름입니다. 특히 제 발표 준비를 멱살 잡고(!) 이끌어주신 운영위 영지님께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숫자로는 다 담을 수 없는 사용자들의 말과 행동을 들여다보는 순간, 우리가 만든 프로덕트의 완성도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믿습니다. 내년 콘퍼런스에서는 더 깊고 재미있는 인사이트를 나눌 수 있도록, 앞으로 1년간 차곡차곡 경험을 쌓아가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