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편
내가 사는 곳과는 꽤나 멀지만 그래도 미국 동부에서 또 한 번의 총기 난사가 발생해서 20명 정도가 사망하는 비극적인 일이 발생했다. 총격이 발생한 현장은 많은 사람들이 일상을 보내던 bar와 볼링장이다. 바나 볼링장 모두 평범함 시민들이 친구나 가족과 함께 하루의 피로를 씻어내는 편안하고 안전한 공간으로 여겨지는 곳이다. 사실 범인은 월마트에도 들렸다고 하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총격을 실행하지는 않았다. 이번 글에서는 총기 난사 자체에 대해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최소 이번 사건의 범인은 이번 여름 정신 병원에 입원한 병력이 있고 당시 사람들에게 총격을 가하라는 환청이 들린다는 증상을 호소했었기에 예방이 가능했던 비극이기도 하기 때문에 단순히 총기 소지나 총기 규제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뉴스를 접하면서 나 역시도 이런 총기 난사를 겪는다면 과연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내 가족에게 어떻게 하라고 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면서 자료를 조사했고 이번 편에 나름의 정리를 해보려고 한다. 한국에서 읽는 독자들은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으나 한국에 얼마나 많은 총기가 있는지를 헤아려 보면 지금까지 없었던 일이라 무시해 버릴 수만은 없는 일일 수도 있고 또 미국에 출장이나 여행을 오는 분들도 있기 때문에 알아 두어서 나쁠 것은 없을 것이라고 본다.
Run. Hide. Fight.
"도망치고 숨고 마지막으로는 싸우라" 이것은 총기 난사 시 대처법에 대한 FBI 트레이닝 비디오에서 강조하는 3원칙이다. 물론 각 원칙 뒤에는 세부적인 사항들이 있지만 이것이 기본이다. 많은 사람들이 뻔한 이야기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총기 난사 현장과 같은 극도의 스트레스 상황에서는 이러한 상식적인 것들을 지키는 것조차도 어려울 수 있다.
RUN
상식적으로는 총기를 난사하는 순간 누군들 전속력으로 도망치지 않을까 싶지는 내가 조사한 바로는 그렇지 않다. 많은 총기 사건의 CCTV 영상을 봤는데 놀랍게도 몇몇 사람들은 꽤 긴 순간 그 자리에 얼어붙어 있었다. 나에겐 그 사람들의 사고 회로가 순간 마비된 것 같이 보였다. 아니면 머리는 움직였으나 몸이 말을 듣지 않았을 수도 있다. 군인 출신 총기 교관이 왜 자신의 돌격 소총에 소음기 (supressor)를 다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지에 대해 설명한 적이 있는데 실제로 총격 시의 굉음이 타겟에게 스트레스를 주게 되고 그것이 타겟을 제압하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는 설명을 들은 적이 있다. 한국에서 군복무를 한 남성들은 겨우 5.56 NATO 탄약을 사용하는 K2 소총 사격 시 얼마나 큰 소리를 내는지 처음 사격장에 가서 들었던 때를 기억할 것이다. 만일 당신이 그런 경험이 없다면 갑자기 그런 큰 총격음을 들었을 때 바로 자세를 낮추고 미리 기억해 두었던 비상구로 전력질주를 할 수 있을 것 같은가? 평소의 준비 없이는 어려운 일일 것이다.
전직 FBI 요원이자 Stop the Killing: How to End the Mass Shooting의 저자인 Katherine Schweit는 총기 난사 현장을 전장에 비유한다. 즉, 가능하면 멀리 빠르게 현장에서 멀어져야 하는 것이다. 남들이 어떻게 하는지 지켜본다거나 경찰이 올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는 것이다. 텍사스 Uvalde의 총기 난사 건과 같이 경찰이 현장에 도착한다고 해도 현장에 실제 진입하기까지는 꽤 긴 시간이 걸리고 또 해당 경찰의 트레이닝 레벨에 따라 지원을 기다려야 할 때도 있기 때문이다. 총격이 발생한 현장은 다시 살아서 나올 수 있는 현장이 아니다. 스마트폰으로 비디오를 촬영한다거나 - 심지어 실시간 생방송을 진행한 사람도 있다. - 경찰에 신고하는 시간 따위를 허비한다면 아마도 다시는 사랑하는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 총격을 듣는 순간 바로 자세를 낮추고 기억에 따라 가장 가까운 비상구로 전력질주해서 대피해야 한다. 또 한 가지 바로 도망치라고 하는 이유는 엄청나게 훈련된 사람이 소총으로 조준 사격을 하지 않는 이상 일반인이 달리는 타겟을 맞추기는 굉장히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권총으로는 10야드만 돼도 가만히 있는 타겟도 맞추기 어렵다. 총기 난사를 하는 범인도 굉장히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이기 때문에 그 상황에서 움직이는 타겟을 맞추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일 것이다.
Hide
만일 현장에서 도망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어딘가에 몸을 숨겨야 한다. Active-shooter self-defense course의 교관인 Brian Rauchbach는 "Hide"에는 두 가지 옵션 - concealment and cover - 이 있다고 말한다.
가구 뒤나 책상 밑 같은 곳에 숨는 것은 단순히 범인으로부터 발각되지 않도록 몸을 숨기는 목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쉽게 선택할 가능성이 있는 옵션이다. 경찰관으로 근무했고 safety consultant이자 Mass Shootings: Six Steps to Survival의 저자인 John Matthews는 총기 난사 시 많은 사람들이 책상 밑에 숨었고 그중 상당수가 범인에게 발견되어 피격되었다고 한다. 당연히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대부분의 총알은 자동차 철판 정도는 손쉽게 관통하기 때문에 어디에 숨느냐에 따라 난사되는 총탄에 피격되거나 범인이 총알이 관통되는 것을 고려하고 총격 시 피격될 가능성도 존재한다. 그러나 많은 총기 난사 사건에서 죽은 척 시신 사이에 섞여 있거나 생각보다 단순한 곳에 몸을 숨겨 생존한 경우가 있기 때문에 어쨌든 최대한 몸을 숨겨야만 한다.
나머지 하나의 옵션은 두꺼운 벽이나 두꺼운 강철문 뒤에 (당연히 범인이 침입할 수 없는 구조여야 함) 몸을 숨기는 것이다. 이때는 반드시 범인의 침입을 막을 수 있는 자물쇠를 채우거나 주변의 물품들을 이용해 바리케이드를 쳐야 한다. 최고의 방법은 첫 번째 옵션과 두 번째 옵션 모두를 만족하는 곳에 몸을 숨기는 것이다. 이때 반드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스마트폰과 스마트워치 같이 내 위치를 범인에게 알려 줄 수 있는 기기들은 반드시 끄거나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위기/재난 관리 전문가인 Kenneth Wolf는 몸을 숨기고 있는 상황에서도 다른 옵션을 포기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만일 상황이 바뀌어 도망칠 수 있다고 판단이 되고 그것이 더 생존 가능성이 높다면 실행에 옮겨야 할 것이다.
Fight
도망치는 것이 불가능했고 안전하지 않은 곳에 몸을 숨기고 내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면 나에게 남은 옵션은 비참히 죽음을 기다리는 것과 할 수 있는 한 싸워보는 것이다. 이것은 싸움을 실패하던 싸우지 않던 결과가 똑같은 경우에만 시도해야 하는 최후의 방법이다.
캘리포니아 Monterey Park 총기 난사 사건에서 범인과 몸싸움을 벌여 총기를 빼앗아 영웅이 된 Brandon Tsay는 "It's going to end here. This is the end of my life ... But I was able to come to the conclusion that I had to take the gun away from him or a lot of people would have been hurt"라고 말했다. 누구나 총기 난사 범인을 바로 앞에 맞닥뜨린 상황에서는 이제 죽는구나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거기서 끝날 것이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을 냉철하게 생각하고 실행에 옮기는 과정까지 나아가야 할 것이다. 이제 죽는구나에서 총기 난사범과 격투를 벌이기까지의 시간은 몇십 분이 될 수도 있고 몇십 초가 될 수도 있을 것이지만 만일 이제 죽는구나에서 멈춘다면 그 나머지 시간이 얼마가 되는 의미가 없이 죽음을 기다리는 순간이 될 수 있다.
일단 총격을 가하는 미치광이와 싸운다면 당신이 태권도 유단자이던 UFC 프로선수이던 의미가 없다. 맨손 격투와 총기 난사범을 제압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싸움이다. John Matthews 역시 개인이 단독으로 총기 난사범과 싸우는 경우 거의 대부분 질 것이라고 말한다. 내 개인적으로도 실패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총기 난사범은 훈련된 군인이 아니다. 그 역시 갑자기 무언가를 들고 튀어나오는 누군가와 싸워본 경험이 없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따라서 포기하기는 이르다.
FBI 트레이닝에서도 대피하고 있는 사람들이 각자 역할을 분담하고 각자의 무기를 준비하는 장면이 나온다. 무기는 반드시 칼과 같은 흉기가 될 필요는 없다. 그것은 책이 될 수도 있고 바닥에 떨어진 유리병이 될 수도 있다. 무기가 얼마나 치명적이냐 보다는 얼마나 전략적이냐가 중요하다. Brian Rauchbach는 권총을 가지고 있는 범인의 경우 팔을 공격하여 총기의 제어를 저지하고 소총을 소지하고 있는 경우 소총의 총열의 방향을 제압해 총격을 당하지 않게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개인이 혼자 싸우는 경우 어려울 수 있지만 여럿이 동시에 공격한다면 훨씬 승률이 높은 싸움이 될 것이다.
위에 언급한 Brandon Tsay의 동영상을 보면 (공유는 하지 않겠으나 쉽게 검색이 가능함) 범인도 굉장히 당황스러워 보이며 생각보다 쉽게 총을 빼앗기는 것을 볼 수 있다. 다만 Brandon Tsay의 해당 영상을 보면 역시 훈련되지 않은 민간인으로서 (나 역시 그런 민간인...) 굉장히 큰 실수를 저지르는 것을 볼 수 있다. 그와 범인은 계속해서 총기를 빼앗기 위해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영국의 Special Force 베테랑인 Bob Shephered는 How to Survive A Mass Shooting이란 글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Once you've gained the upper hand, take the shooter out completely. And by completely, I mean kill them". 나 역시 Brandon Tsay와 같은 경우 범인으로부터 총을 빼앗자마자 범인을 쏴서 바로 제압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반드시 다리나 팔과 같이 급소를 피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가능한 치명상을 입혀 완전히 제압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라면 반드시 그랬을 것이다. 소총으로 무장한 총기 난사범은 매우 높은 확률로 권총과 같은 다른 무기를 소지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