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어느덧 결혼을 결심하게 되었다. 딱히 결혼을 해야겠다는 마음은 가지고 있지 않았었는데 어쩌다 보니 결혼을 준비하고 있는 내가 있었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 특별한 계기가 없어서 결혼을 하게 되는 것일까 생각이 들기도 한다.
2년 반쯤 전에 우리는 친구의 소개로만나게 되었다. 처음 만남은 꾀나 평범했던 것 같다. 걸으며 이야기를 많이 했다. 그 친구는 말을 하다가도 하품을 연신 해댔는데, 커피를 마시지 않아서 그렇다고 한다. 커피를 먹지 않는 나로서는 '커피를 먹지 않아 졸리고 피곤하다'는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재미가 없나 싶기도 했다. 점심을 각자 먹고 만났기 때문에 낮잠 시간이 필요한가 싶기도 했다. 이야기를 하면서도 이 생각, 저 생각을 했다. 가벼운 만남이면서도 서로의 이야기를 술술 해댔다.
처음 만났기 때문에 대화의 공백이 어색하고 부담스러웠다. 그럴 때면 나는 수다쟁이가 되는 편이다. 그래서 그런지 스스럼없이 나의 에피소드들을 꺼내 이야기했다. 대학교 아르바이트 이야기, 직장 상사 이야기, 소개를 받게 된 경위(?) 등. 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아무 말 대잔치였다. 처음 만난 사람 앞에서 꾀나 특별한 이야기를 하기엔 넉살이 그리 좋지 않았기 때문에 나의 이야기를 주로 이야기했던 것 같다. 걷는 와중에 카페가 보여 들어가 커피를 먹으니 이후엔 그 친구의 하품이 없어졌다. 커피의 힘이 대단하구나 생각이 들었다.
첫 번째 만남에서 오디오가 비지 않으려고 그 친구도 나름대로 이것저것 이야기를 하는 느낌이었다. 직장 이야기, 자금의 흐름 이야기, 통장 이야기 등 첫 만남 치고는 꾀나 진지한 이야기였다.처음 만났는데 그런 이야기를 하다니 뭔가 계획적인 친구구나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첫 만남 때 통장 이야기, 재정상황 등을 이야기했었다고, 왜 그랬어?'라고 물으니 그냥 아무 말을 했더란다. 통장 이야기도 그래서 나온 것이라나. 너도 나와 같이 이야기하느라 고생했겠구나 싶었다.
이런 고요스럽지 않은 첫 만남이 난 나쁘지 않다고 평가했다. 그 친구는 첫 만남이나쁘진 않았으나 내가 패션 센스가 좋지 못하다 생각했다고 한다. 그때 입고 나온 코트가 색깔이 이상하다고 하였으니....(쳇, 이쁘기만 했구먼) 그래도 두 번째까진 봐야지라는 생각에 다시한번만나봤다고 했다. 다음 만남에선 그 코트를 입고 가지 않아서였는지(?) 처음 만났을 때보다는 말이 훨씬 잘 통했다.
이렇게 나의 기억에 남는 우리들의 초기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어제의 일도 잘 기억을 하지 못하는 나로서(?) 이 정도나 기억에 남아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사귀는 과정에서도 여러 사건들과 싸움(전적으로 나만 싸움이라고 생각하지만)이 있었고, 관계의 고비도 있었다. 그런 고난과 역경들을 딛고 어느덧 결혼이라는 선택지에 대해 고민하고 확실시하게 되었다. 이렇게 되기까지 충분한 시간이 필요했고 생각 에너지, 감정 에너지 등 여러 에너지들이 수도 없이 필요했고 소모되었지만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난 30대지만, 여전히 불완전함을 느낀다. 시간이 더 지나고 이 불안함이 완전히 사라지는 그런 초인적인 경험은 없을 테지만, 이런 불완전한 사람 둘이 함께 어떤 일들을 해낸다는 것만으로도 삶을 사는데 큰 위안이 된다. 앞으로 수많은 갈등들과 사건들이 있겠지만 현명하게 잘 이겨내 보았으면 한다. 불완전하기에 완벽한 답을 선택해야 된다라는 부담도 덜 하기에. 그런 의미에서 오늘도 부담은 내려놓고 불완전해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