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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터 루콜라 May 16. 2021

냄새는 기억을 불러온다.

    꽃샘추위가 지나치게 길어지나 싶던 올해 봄, 여전히 마스크와 손소독제로 무장을 하고 일상을 보내다보니 자연스레 마음도 움츠러들고 있다. 다행히 며칠 전부터는 날씨가 풀리는가 싶더니 공기에서부터 따뜻함이 느껴진다. 마트를 가기 위한 지름길인 아파트 주차장을 빠른 속도로 지나치고 있는데 마스크 안으로 습기를 가득 머금은 냄새가 확 들어온다.


갑자기 마음이 편해지면서 순간 어떤 그리움, 향수가 느껴진다.


    걸음걸이를 좀 천천히 하고 나는 심호흡을 하며 느리게 공기를 마셔본다. 습기가 가득 차 있는 공기다. ‘그래 내일 일기예보에 비가 온다고 했었지!’ 그리고 주차장 한켠과 주차장과 연결된 데크 층 에서 가득 자라고 있는 풀, 나무 등의 냄새가 느껴진다. 냄새를 따라 천천히 떠오르는 연상들, 비행기를 내리자마자 훅 하고 느껴졌던, 높은 습도의 공기, 숙소를 감싸고 있던 담쟁이덩굴 곳곳에 우거진 풀숲에서 나는 냄새, 아이의 웃음소리, 즐거워하시던 부모님의 모습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그렇다! 그곳은 동남아의 한 호텔이다. 따뜻한 공기 속에서 가족들과 함께 했던 순간들 깔깔거리는 웃음소리, 시원하게 마시던 음료수 모든 것이 내 앞 스크린에서 영화가 상영되듯 펼쳐진다. 그것과 함께 나는 그 순간이 너무나 그리워 눈물이 날 뻔 했다. 천천히 발걸음을 떼면서 걸어본다. 마트만 빨리 다녀와야지! 하는 마음으로 걸음을 재촉하던 내 발걸음은 이제 어느 리조트를 산책하듯 여유가 생겼다.


    냄새는 어떻게 이렇게 빨리 기억을 소환할 수 있을까?


    종종 어떤 냄새, 향기를 맡았을 때 맥락 없이 어떤 순간이 확 하고 떠오르는 경험을 어려서부터 종종했던 나는 늘 그런 궁금증이 있어왔다. 어린 시절에는 상쾌한 겨울의 냄새가 좋았다. 습기가 느껴지지 않고 숨을 들이마셨을 때 차갑고 순식간에 폐까지 들어오는 듯한 건조하고 냉랭한 공기가 머릿속까지 깨끗하게 해 주는거 같았다. 그런데, 왜 지금의 나는 원래 내가 좋아하지 않았던 습하고 축축하고 모기를 연상하게 하는 (어릴 때 나는 모기에 잘 물려 풀숲을 피하는 버릇이 있었다) 풀, 나무 냄새가 친근하게 느껴지는 것일까? 아마도 기억을 더듬어보면, 최근의 차갑고 냉랭한 공기와 연상되는 겨울이 수차례 홍역을 치러야했던 아이의 독감과 나 자신의 2차례 반복된 독감투병, 자연히 연상되는 코로나 등의 감염병 들이 모두 겨울, 추위와 연관되어 있기 때문인 듯하다.

 

   후각과 기억에 대한 과학적 연구는 아직 진행 중인데, 후각이 얼마나 우리의 기억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가는 속속들이 밝혀지고 있는 중이다. 강렬한 기억과 연관된 냄새는 단 한번 만으로 우리 뇌에 깊고 없어지지 않는 길을 남긴다고 알려져 있다. 흔히 트라우마와 연관된 기억이 그러하다. 그러한 냄새에 대한 기억은 유전이 된다는 증거도 있다고 하는데, 전쟁 중에 살이 타는 냄새(내 가족이 이웃이 불에 타서 죽어가는 냄새라니 얼마나 끔찍한가! )에 대한 부정적 기억은 대를 지나서까지 냄새에 대한 나쁜 기억이 전달된다고한다.  예상할 수 있다시피 그렇기 때문에 냄새는 주관적이다. 어떤 기억과 짝을 이루고 있나? 에 따라 우리 뇌는 다르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는 바비큐에서 고기가 구워지는 냄새가 즐겁고 신나는 파티가 연상되는 반면에 누군가에게는 트라우마가 떠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코로나로 인해 1년 이상 길어지는 비대면 사회에서 우리는 무엇을 놓치고 있는가? 모든 것은 시각과 청각에 집중되어 있다. 아이들의 온라인 수업에서도 화상을 통한 수업 내용의 지식적 전달이 최우선이다. (사실 갑작스럽게 학교를 못나오게 된 상황에서 이정도도 감지덕지해야하는 건 사실이다.) 모두가 모여 왁자지껄 떠들고, 땀 흘리며 운동하고 수업을 시작하는 종이 울렸을 때 아이들 몸에서는 아마도 신나게 운동하고 분비되는 각종 호르몬들과 땀에서 나는 체취가 풍길 것이다. 다 같이 그 ‘냄새’를 맡고, 이것이 공동체 생활이고 즐거움의 느낌이라는 것을 온몸으로 체화하며 수업을 하는 것과 모니터, 키보드, 카메라 등에 둘러싸여 수업을 듣는 것은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요즘 학교를 매일 안가서 힘들겠어요?’ 라는 우려 섞인 내 질문에 고등학생의 학부모는 이렇게 대답한다. ‘그래도 집에 있으면 공부할 시간이 더 많아서 좋은 점도 있어요!’ 이미 혼자 있는 것 에 사람들이 익숙해지는 것일까? 그렇지만 다 같이 모이지 않아서 우리가 잃게 되는 것은 생각보다 많을지 모른다. 잃는 것이 무엇일지 알게 되기 전에 모두들 편하게 모일 수 있는 시간이 빨리 돌아오기를 열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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