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트의 아트마켓 12
미화 9천110만 달러(한화 약 1천억 원). 지난 2019년 뉴욕 크리스티(Christie's) 경매에서 제프 쿤스(Jeff Koons)의 1m도 약간 못 미치는 스테인리스 스틸 조각 '토끼(Rabbit)'가 이 같은 천문학적 액수로 판매돼 한동안 화제를 모았다. 이 금액은 생존해 있는 작가의 작품 중 세계 최고 경매 판매가를 기록했다. 제프 쿤스는 동물 모양의 풍선 등 주로 일상에서 볼 수 있는 사물을 반짝이는 스테인리스 스틸을 이용해 네오 팝(Neo-pop) 스타일의 조각으로 형상화해서 유명해진 미국의 아티스트이다.
네오 팝은 팝 아트(Pop art)를 현대적으로 새롭게 해석한 예술을 뜻한다. '팝 아트'는 1950년대 영국에서 만들어진 말이지만, 1960년대 앤디 워홀(Andy Warhol)을 필두로 한 미국을 중심으로 선풍을 일으킨 예술 사조이다. 대중문화와 매스 미디어, 소비주의 발달에 대한 반영과 비판으로 시작된 팝 아트는 네오 팝으로 이어지며 인종과 다양성, 정치, 환경 문제 등 현대 사회 전반의 분야까지 보다 광범위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일상생활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만화나 광고, 상품 포장, TV, 영화 등의 이미지를 주로 활용하는 팝 아트와 네오 팝이 주는 대중적 친숙함은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어린 세대부터 어린 시절에 대한 향수를 느끼고자 하는 기성세대에게까지 폭넓게 인기를 얻고 있다.
팝 아트에서 이어진 동시대 예술이 불러온 또 다른 매체로는 아트 토이(art toys)를 들 수 있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대중문화를 소재로 한 디자이너 토이들이 선풍적 인기를 끌면서 소수 유명 작가들의 아트 토이들도 등장하게 되었다. 카우스(KAWS; 본명: Brian Donnelly)는 동시대 가장 인기 있는 아티스트 중 한 명이다. 1999년 처음 소개된 그의 미키 마우스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그의 '컴패니언(Companions)' 시리즈는 한 손에 쥘 수 있는 크기부터 빌딩만한 크기까지 다양하게 제작되어 많은 컬렉터들을 사로잡고 있다. 2018년 서울 잠실 석촌호수에도 그의 누워있는 28m 거대 컴패니언 작품 '카우스: 홀리데이(KAWS: Holiday)'가 전시된 바 있어 국내 팬들에게 익숙한 작가이기도 하다.
사실 아트 토이는 예술인지 상업적 상품인지를 두고 아직도 논쟁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아트 토이가 컬렉터들의 높은 인기를 끌면서 경매 회사들이 이들 작가들의 회화 등 순수 예술 작품뿐만 아니라 에디션(editions)으로 한정된 아트 토이 등 작품들을 경매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대부분 아트 토이를 예술의 매체의 일종으로 받아들이는 추세다. 2018년 세계 3대 경매 회사 중 하나인 필립스(Phillips)의 뉴욕 경매에서 카우스의 섬유 유리로 제작된 약 7m 크기의 '클린 슬레이트(Clean Slate)'가 미화 약 199만 달러(한화 약 22억 원)에 판매되면서 작가 최고가를 세우기도 했다.
하지만 카우스의 작품을 비롯한 유명 에디션 아트 토이들은 이렇게 거액을 들여야만 소유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실제 작은 크기 아트 토이는 20-30만 원대에서 구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트 토이 컬렉터 중에는 크기가 클수록 좋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크기는 컬렉터 개개인의 선호도에 관한 문제이다. 새로 컬렉팅을 시작하는 컬렉터라면 보다 많은 개수로 구성된 에디션의 작은 사이즈 아트 토이를 구입하는 것이 좀 더 편하게 아트 토이에 가까워질 수 있는 방법이라고 전문가들은 권한다. 처음부터 투자의 목적으로 아트 토이를 구입하기보다는 마음에 드는 작품을 가까이하면서 점차 익숙해지고 안목을 높여가는 것이 아트 토이 컬렉팅을 즐기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Photo: Christophe Becker via Flickr/Creative Commons.
익숙한 컬렉터라면 아트 토이에 투자할 때 분명한 인증과 에디션의 개수, 작가의 서명 등을 확인해 두는 것이 좋다. 많은 작가들이 작품을 여러 채널을 통해 출시하는 일이 흔해서 아트 토이는 다른 매체들보다 오리지널 감정이 어려울 수 있다. 이런 경우 경매를 통해 구입하는 것이 한층 안전한 구매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유수의 경매 회사들은 대부분 작가나 작가를 대표하는 사람들을 통해 작품이 경매에 출품되기 전 검증을 마치기 때문이다. 온라인에서 구입한다면 경매 회사 외에도 몇몇 온라인 상점들도 작품에 대한 철저한 검증으로 유명한 곳들이 있으므로 둘러볼 수 있다.
팝 아트와 아트 토이는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주제를 또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게 하는 친숙하면서도 색다른 재미있는 매체이다. "내 그림이 사람들에게 닿지 않는다면 내가 그림을 그리는 의미가 없다"는 카우스의 말처럼 순수 예술과 대중 예술의 경계를 흐리게 하여 우리 생활에 가까워지려는 작품들에 한 발짝 더 다가서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