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음식 ①오징어 국과 배춧국
#음식과 어머니의 손맛
음식은 어머니의 손맛이란 말이 있다. 손맛, 하면 또 어머니가 먼저 떠오른다. 그런 점에서 음식과 어머니, 손맛은 일직선상에 놓여 있는 정서적 동의어라고 할 수 있다. 집밥과 밖에서 먹는 밥과의 차이에서 으뜸으로 거론되는 게 어머니의 손맛이라는 점도 음식과 어머니, 손맛의 일체성(一體性)을 시사한다.
본질적으로 모든 음식에는 손이 간다. 국과 찌개, 탕, 생선구이, 생선조림, 소고기와 돼지고기 요리, 밑반찬, 나물무침, 조림 요리, 볶음 요리, 튀김 요리 등 우리가 알고 있는 음식의 영역은 집안이나 집 밖이나 별반 다를 게 없다. 마찬가지로 어떤 음식도 요리하는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고서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어머니의 손맛의 독보성(獨步性)
집안과 바깥의 음식, 모두 손의 기운을 받아 식탁 위에 올려지지만, 손맛 앞에 보통명사이면서 고유명사이기도 한 대체 불가의 수식어가 허용되는 경우는 단 하나, 어머니의 손맛뿐일 것이다. 손맛의 사전적 정의가 손으로 직접 만들어서 내는 맛이니, 어머니의 손맛은 어머니가 손으로 직접 만들어서 내는 맛일 터이다.
그렇다면 어머니의 손맛과 어머니 아닌, 다른 모든 이들의 손맛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다는 말인데, 그것이 무엇일까. 나는 그 차이의 정점(頂點)에 어머니라는 존재가 갖는 무조건적(無條件的)인 헌신과 희생정신, 무한(無限) 사랑의 무게감이 있다고 본다.
그것은 곧 식재료가 갖은 양념, 불의 기운과 힘을 합쳐 훌륭한 음식으로 태어날 수 있도록, 어머니의 마음이 손끝을 통해 그들에게 전해진 결과라고 할 수 있겠다.
‘애정과 배려와 정성의 손으로 직접 만들어서 내는 맛’, 바로 그것이야말로 어머니의 손맛이 아닐까. 가족에 대한 애틋한 감정과 진실하고 성실한 마음, 포용력에서 어머니를 대체할 수 있는 존재가 있다고 말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는 이것이야말로 어머니의 손맛이 위대한 이유라고 믿는다. 지극정성이면, 하늘도 감동한다는 옛말이 괜히 전해온 게 아니다.
어머니의 손맛이라는, 우리가 입버릇처럼 말하는 미각적(味覺的) 표현 안에는 어머니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의 정서가 깊이 배어 있는 것이다.
숙취 해소로 그만인 콩나물국. ⓒShene81 •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어릴 때 밥상의 필수 메뉴, 국
어릴 때, 우리 집 식탁에는 끼니때마다 국이 빠지는 날이 없었다. 밥~국~반찬으로 정형화된 옛날 밥상에 익숙한 아버지가 국을 좋아해서였기도 했지만, 아버지의 입맛이 곧 식구들의 입맛일 때라 우리 형제들도 국을 잘 먹었다. 성인이 되고 나서는 아예 국 없이는 밥을 못 먹을 정도로 국 예찬론자가 된 나의 피를 물려받았는지, 아들도 국 마니아라 우리 집 밥상의 기본 메뉴는 어머니의 상차림과 빼닮았다.
어머니가 끓이는 국은 소고깃국, 미역국, 김칫국, 콩나물국, 김치 콩나물국, 북엇국, 뭇국, 두붓국, 시금칫국, 시래기 된장국, 오징어 국, 배춧국 등으로 여느 가정과 다를 바 없었다. 나와 형들은 소고깃국을 제일 선호했는데, 큼지막하게 썰어 넣은 소고기를 건져 먹는 재미가 쏠쏠한 데다 얼큰한 국물에 휩쓸려 부드럽게 씹히는 무의 달짝지근한 맛 때문이었다.
우리 형제들은 끼니 중간 틈틈이 어머니가 크게 토막 낸 생무를 와삭와삭 소리 내어 씹어먹는 걸 좋아했었는데, 웬만한 군것질거리 저리가라였다. 나는 지금도 한 번씩 냉장고 문을 열고 생무를 크게 잘라먹곤 한다.
입이 심심할 때 생무를 잘라 먹으면 시원하게 씹히는 맛이 그만이다. ⓒItyoppyawit •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오징어 국과 오징어 숙회
어머니표 국 중에서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것이 있는데, 오징어 국과 배춧국이다. 오징어를 굵게 채 썰어 맑게 끓인 오징어 국은 지금도 그리 흔한 편은 아니지만, 당시에도 흔치 않았다. 우리 집은 식구들 다 오징어를 좋아해서인지 어머니는 오징어 국과 오징어를 끓는 물에 살짝 데쳐 초장에 찍어 먹는 오징어 숙회를 자주 밥상에 올렸다.
직장에 다닐 때, 밤늦도록 술을 마시고도 또 한 잔 생각이 간절해 포장마차에 들르면 꼭 오징어 숙회를 시켜 먹었던 기억이 난다. 포장마차의 오징어 숙회는 술꾼들에게 사랑받던 단골 안주였다.
오징어 국에 무를 넣고 끓이는 집도 있었지만, 어머니는 칼칼한 국물 맛을 내기 위해 청양고추만 썰어 넣었다.
언젠가부터 우리 집 주말 상차림은 내가 맡게 됐는데, 마트에서 생물 오징어가 눈에 띄면 옳거니, 하고 두 마리를 사다가 오징어 국 아니면 오징어 숙회를 해 먹는다.
초장에 찍어 먹는 오징어 숙회. ⓒkimsco •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배춧국 혹은 배추된장국
배춧국에 대한 기억은 더 강렬하다. 멸치와 다시마로 우려낸 맛국물에 약간의 고춧가루를 가미(加味)하고 된장을 듬뿍 푼 것이라 배추된장국이 제대로 된 이름인데, 다른 나물국과는 확연히 차이가 나는 맛이었다.
배추 이파리로 국을 끓이기도 하지만 어머니는 속이 꽉 찬 배춧속만 고집했다.
배추 특유의 시원한 맛과 노릇노릇한 배춧속 잎에서 배어 나오는 고소하고 감칠맛이 된장 맛과 어우러져 속이 뻥 뚫리면서 입도 즐거워지기 때문이었다.
어렸을 때 나는 매번 국에 밥을 말아먹는 버릇이 있었는데, 목 넘김이 수월해 밥 먹기가 편했고, 밥 먹는 시간도 빨랐다. 돌이켜보건대, 서둘러 식사를 마치고 친구들과 어울리기 위해서 그랬던 것 같다.
지금도 여전히 국을 좋아하지만, 이제는 밥 따로 국 따로, 따로국밥 식으로 느긋하게 먹는 게 일상이 됐다. 을지로입구역 근처 무교동에 배춧국으로 유명한 비빔밥집이 있었는데, 지금은 없어졌다. 할아버지, 할머니 노부부 두 분이 운영한 허름하고 좁은 가게였는데, 점심때가 되면 몰려든 직장인들로 문전성시를 이뤘었다.
오징어 국과 배춧국은 나에게 어머니의 음식이자 추억의 음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