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얀 반 에이크,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
얀 반 에이크(1390?~1441)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15세기 북유럽 플랑드르 지역에서 활동했던 화가 얀 반 에이크(1390?~1441)는 오늘날 널리 쓰이는 유화(油畵) 물감의 발명자로 알려져 있다. 유화 물감은 색깔이 있는 식물이나 광물을 곱게 빻은 가루에 정제한 기름을 섞어 만든 인공 염료다. 덧칠이 가능해 그림을 수정하기가 쉽고 정확하고 여유로운 묘사는 물론 광택이 나는 색깔까지 표현할 수 있어 발명 당시 혁명적인 물감으로 인기를 끌었다.
유화 물감이 나오기 전 중세 시대까지 화가들은 달걀을 용매로 안료 분말과 혼합한 템페라 기법을 주로 사용했다. 그러나 템페라로 제작한 그림은 계란의 성분이 너무 빨리 마르는 바람에 그림을 고치기가 쉽지 않았다. 여러 색이 섞여 일으키는 미묘한 농담(濃淡) 효과와 부드러운 색의 변화도 구사할 수 없었다. 유화 물감의 등장은 당시 화가들에게 비포장도로가 아스팔트 도로로 바뀐 것과 같은 축복으로 여겨졌다.
에이크가 활약했던 플랑드르 지역은 현재의 프랑스 북부와 벨기에 서부, 네덜란드 남서부를 포함한 북해 연안 중세 국가다. 그곳에서 그는 가장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방법으로 실물보다도 더 실물 같은 전신(全身) 초상화를 완성한 화가로 이름을 날렸다. 유화 기법을 앞세운 정교한 사실주의 양식을 독창적인 방식으로 확립한 에이크는 그래서 15세기 북유럽 미술의 거장으로 불린다.
에이크가 남긴 작품 중 종교화인 ‘헨트 제단화’는 에이크의 형이자 동료 화가였던 휘버트 반 에이크와 공동으로 작업한 기념비적인 걸작으로 꼽힌다. 벨기에 북서부 헨트 시 성(聖) 바보(St Bavo) 대성당의 장식 제단화인 이 그림은 총 12개의 패널로 이뤄져 있는데, 병풍처럼 접었다 폈다 할 수 있게 제작됐다. 휘버트 반 에이크가 그리기 시작한 이 제단화는 1432년 동생 얀 반 에이크가 완성했다.
얀 반 에이크,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 패널에 유채, 81.8 x 59.7cm, 1434, 런던 내셔널갤러리 소장 ⓒWeb site of National Gallery, London •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2년 후인 1434년, 얀 반 에이크는 사실주의 전신 초상화의 진수(眞髓)인 한 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그림 속의 각종 형상의 상징적인 의미와 우의성, 또는 속성 등을 비교 분석하는 미술사 방법론인 도상학에서 늘 거론되는 그 유명한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이다. ‘아르놀피니 부부의 결혼’이라고도 불리는 이 그림은 세상에 나오는 순간 여러 가지 이유로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먼저 당시에 볼 수 없었던 부부의 전신 초상화라는 점과 모피 의상을 비롯해 카펫, 슬리퍼, 강아지, 볼록거울, 창틀과 탁자 위의 과일, 샹들리에, 가운데 벽에 보이는 볼록거울 좌우의 묵주와 작은 솔, 커튼 등 그림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것들이 마치 돋보기로 들여다보는 듯, 놀라울 정도로 세밀하게 묘사됐다. 화가의 압도적인 관찰력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는 이유다.
또 부부의 복식과 자세, 표정은 물론 그림에 나타나는 모든 형상이나 물건이 그 자체로 하나하나의 상징 또는 우의적인 뜻을 암시하고 있어 도상학의 교과서로 평가받고 있다. 샹들리에 바로 아래 라틴어로 쓰인 ‘나, 얀 반 에이크가 여기에 있었노라’라는 서명도 이 작품의 미술사적인 위상을 높이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라틴어 서명은 화가인 에이크 스스로 부부의 결혼 서약이 이루어진 현장의 증인임을 선언한 것으로 미술 역사상 최초의 시도로 평가된다.
에이크는 1441년에 사망한 사실만 확인될 뿐, 정확한 출생 연도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1395년 이전에 태어났다는 주장이 유력한 가운데 일반적으로는 1390년대 태생으로 표기하고 있다. 성장 과정과 미술계에 입문하기까지의 행적도 베일에 가려져 있다.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
1434년에 탄생한 이 그림은 유화 작품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캔버스는 오크 화판으로 세로 81.8cm, 가로 59.7cm의 크기다. 현재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 소장돼 있다. 15세기 이탈리아 상인의 결혼 장면을 그린 이 작품을 천천히, 집중해서 들여다보면 우리가 마치 이 방 안에 들어가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두 가지 이유에서다.
하나는 그림 속의 모든 것들이 놀랍도록 치밀하고 섬세하게 눈에 들어와 그림이 아닌 실제 방안의 모습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그림을 보는 시선이 볼록거울이 걸려 있는 벽면 뒤로 넘어가도록 소실점(消失點)을 배치함으로써 작품을 감상하는 사람들이 그림 안에 들어가 있는 듯한 착각이 들도록 의도적으로 화면을 구성했다는 이유다.
얀 반 에이크, 자화상, 패널에 유화, 26 x 19cm, 1433, 런던 내셔널 갤러리 소장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에이크는 이 그림을 통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집요한 화가로서의 관찰력과 인내심, 끈기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그림 왼쪽의 남자는 이탈리아의 상인인 신랑 조반니 아르놀피니, 오른쪽의 여자는 아르놀피니의 아내인 신부 잔느 드 쉬나니다. 두 사람이 입고 있는 옷, 대단히 강렬하고 인상적이며 눈부시게 화려하고 값비싸 보인다. 비단과 모피로 제작된 두 사람의 의상은 옷감의 재질이 생생하게 느껴질 정도로 극사실적으로 묘사됐다. 그림의 크기가 크지 않은 점을 고려할 때, 놀라운 솜씨가 아닐 수 없다.
엄숙한 표정을 한 남자는 왼손으로 여자의 오른손을 살포시 잡고, 오른손은 가슴 위로 치켜들고 있다. 녹색의 긴 드레스를 착용한 여자는 수줍은 듯 고개를 약간 숙이고 있다. 혼인 서약의 순간임을 말해주고 있다. 혼전임신처럼 보이는 불쑥 나온 여자의 배는 다산(多産)의 염원이나 당대에 유행했던 옷차림이란 설도 있다.
그림 맨 왼쪽의 창문 아래 탁자 위에 놓여 있는 오렌지는 당시에 비싼 값에 거래됐던 과일로 부부의 재력을 암시한다. 화려하게 장식된 샹들리에, 붉은색의 침대와 깔끔하게 정돈된 커튼, 여자의 오른 발치 아래로 보이는 동양풍의 카펫도 부부의 부(富)를 드러내는 상징들이다. 볼록거울 바로 옆의 묵주는 종교의 신성함을 나타내며 그림 맨 아래 왼쪽에 벗어 놓은 샌들은 종교장소에 들어갈 때 신발을 벗듯이, 이곳이 성스러운 장소임을 말해주는 것으로 경건한 결혼 의식을 뒷받침한다. 그림 맨 아래 가운데에 서서 우리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는 강아지는 충성의 상징으로 성실한 부부관계에 대한 맹세를 의미한다.
이 그림을 감상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한 가지, 가운데 벽면에 걸려 있는 볼록거울이다. 볼록거울의 특성상 방안 모습 전부를 비추고 있는 거울 속에는 부부의 뒷모습뿐 아니라 두 명의 남자가 우리의 시선을 끈다. 두 남자 중 한 명이 혼인을 증명하러 입회한 에이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