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에드바르 뭉크, 절규(The Scream)
에드바르 뭉크(1863~1944)
뭉크, 하면 떠오르는 그림이 있다. 학창 시절 미술 교과서에서 한번은 봤을 법한 이 그림은 그림에 대한 안목이나 지식이 없어도 보는 순간, 비명이 들리는 느낌이 강렬하게 와닿는다. 엄청난 공포감과 불안감을 내뿜는 이 그림의 제목은 ‘절규.’ 북유럽 국가인 노르웨이의 국민화가로 칭송받는 에드바르 뭉크가 그린 걸작 중의 걸작이다. 뭉크는 인간 내면의 심리와 고통과 같은 주관적이고 근원적인 감정을 극적으로 드러낸 표현주의 화가의 대명사다. 기구했던 가정사에서 비롯된 끔찍한 경험과 죽음에 대한 공포를 위대한 작품으로 승화시킨 거장이다.
1863년 현재의 오슬로인 노르웨이의 크리스티아니아에서 5남매 중 둘째로 태어난 뭉크는 한창 어리광을 부릴 나이인 5살 때 어머니가 결핵으로 죽었다. 14살 때에는 누나도 같은 병으로 사망했다. 26살 때 우울증을 앓던 아버지를 잃은 데 이어 32살 때에는 여동생마저 정신병원에서 생을 마감했다. 가혹하기 짝이 없는 가정사가 아닐 수 없다. 뭉크 자신도 결핵과 류머티즘, 정신병과 만성 천식을 달고 사는 등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병약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에드바르 뭉크. ⓒAnders Beer Wilse •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나는 매일 죽음과 함께 살았다. 나는 인간에게 가장 치명적인 두 적(敵)을 안고 태어났는데, 폐병과 정신병이었다.”(두첸의 세계명화비밀탐사, 모니카 봄 두첸 지음, 김현우 옮김, 생각의 나무, 2002, p242 참조)
평생을 죽음에 대한 공포와 불안에 떨어야 했던 뭉크는 어린 시절 그림을 꽤 잘 그렸으나 의사인 아버지의 권유로 1879년 기술전문학교에 들어갔다. 그러나 건강이 좋지 않아 학업을 포기하고 1881년 국립미술학교로 진학해 자신의 바람대로 화가의 길을 걷게 된다.
2년 뒤, 뭉크는 인상파 풍의 그림으로 첫 전시를 개최했는데 평단의 혹평이 오히려 심기일전의 자극이 됐다. 1885년 파리 여행 도중에 본 고흐와 고갱, 툴루즈 로트레크의 작품에서 영감을 얻고서 자신만의 독창적인 양식을 닦아 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1886년, 뭉크는 ‘사춘기’라는 유화 작품을 그렸는데 불에 타 소실돼 1894년에 다시 그리기 시작해 1895년에 완성했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유명한 ‘사춘기’ 작품이다. 사춘기 소녀의 불안과 수줍음을 탁월한 심리묘사로 그려낸 작품으로 ‘절규’와 함께 오슬로 국립미술관에 소장 중이다.
에드바르 뭉크, 사춘기, 캔버스에 유화, 151.5 x 110cm, 1894~1895. 노르웨이 오슬로 국립미술관 소장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1889년, 뭉크는 베를린에서 개최한 개인전이 개막 1주일 만에 중단되는 해프닝 탓에 오히려 유명해졌다. 베를린 미술가협회의 초청으로 성사된 이해의 개인전에서 뭉크는 죽음과 공포를 주제로 당시의 회화 관습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자유롭고 개성 넘치는 40여 점의 작품들을 대거 선보였다. 작품 하나하나가 너무나 파격적인지라, 평단에 일대 파장을 몰고 오며 표현의 자유에 대한 격렬한 찬반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이 전시를 계기로 뭉크는 독창적인 표현주의 화풍을 인정받으면서 유럽 미술계의 실력자로 부상하게 됐다.
석판화와 목판화, 에칭 등 판화 작가로서도 일가(一家)를 이룬 뭉크는 1933년과 1934년 노르웨이 정부와 프랑스 정부로부터 각각 훈장 서훈의 영예를 안았으며 여든을 갓 넘긴 1944년 1월 자신의 전(全) 작품을 오슬로시에 기증한 채 파란만장한 생을 마감했다. 뭉크 탄생 100주년이던 1963년 오슬로 뭉크미술관이 개관됐다.
절규
세로 91cm, 가로 73.5cm 크기로 판지에 유채, 템페라, 파스텔로 뭉크가 1893년에 제작한 그림이다. ‘절규’는 4가지 버전이 있는데, 노르웨이 오슬로 국립미술관에 소장 중인 이 그림이 가장 유명하다. 나머지 3점 중 2점은 뭉크미술관의 소장품이며 1점은 개인 소장이다.
에드바르 뭉크, 절규, 판지에 유채, 템페라, 파스텔, 91 x 73.5cm, 1893, 노르웨이 오슬로 국립미술관 소장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개인 소장 버전은 2012년 소더비 경매에서 당시 미술품 경매 사상 최고가인 1억 1,992만 달러의 낙찰 기록을 세웠다. 특히 오슬로 국립미술관과 뭉크미술관에 소장 중인 ‘절규’ 버전은 1994년과 2004년 각각 도난사고를 겪고 다시 돌아와 화제가 됐다. 아울러 ‘절규’의 변형 작품이 50종 가까이 된다는 점에서 이 그림에 대한 뭉크의 집념을 엿볼 수 있다.
뭉크의 작품 중 대표적인 표현주의 그림으로 평가받는 ‘절규’는 실제 뭉크 자신의 끔찍한 체험에서 우러나온 작품이다. ‘절규’를 완성하기 1년 전, 뭉크는 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해 질 무렵, 친구 두 명과 함께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우울한 기분이 들었는데 갑자기 하늘이 붉은 핏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가던 길을 멈춘 나는 죽을 것만 같았고 그 순간, 자연을 관통하는 비명이 들려왔다.’
이 그림의 배경은 크리스티아니아 이케베르크 언덕 아래의 피오르드 해안으로 추정된다. 다리 난간에 기대선 한 남자가 보인다. 가면 같기도 하고, 유령 또는 해골 같기도 한 기이한 몰골의 남자가 눈을 치켜뜨고 입을 벌린 채 두 손으로 귀를 틀어막고 괴성을 지르고 있다. 남자는 몹시 불안하고 공포에 질린 모습이다. 적황색으로 칠해진 하늘의 구름, 그 아래 여인의 긴 머릿결처럼 소용돌이치는 검푸른 물결, 심하게 기울어진 사선으로 표현한 다리 난간은 죽음의 공포에 시달리는 남자의 절망적인 심리상태를 극적으로 드러낸다.
불우했던 가정사와 정신병으로 평생을 죽음의 그림자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뭉크 자신의 삶이 이 그림 하나에 농축돼 있다. 그리다 만 듯한 거친 붓질과 차갑고 어두운색, 심하게 뒤틀린 형상이 주조를 이루는 이 그림을 통해 뭉크는 현대인들의 좌절과 불안을 말하고 싶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