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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권 Dec 06. 2024

베이비 붐 세대의 주말 밥상 이야기

52. 연재 후기(後記)

52. 연재 후기(後記)     


#집사람의 제안

 코로나가 전 세계를 강타한 2020년 3월 어느 날 오전, 동네 약국 앞에 줄을 서 있었다. 방역(防疫) 마스크를 사기 위해서였다. 1인당 마스크 2장. 오전 9시 30분 약국 문이 열리기 한참 전부터 이어진 줄은 어림잡아 30m는 되는 듯했다. 


흰 가운을 입은 여성 약사(藥師)가 나와 숫자를 헤아리더니 바로 내 뒷사람까지만 마스크를 살 수 있다고 알려주었다. 인적 사항을 확인한 뒤 가까스로 두 장의 마스크를 받아 쥐고 나니,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평소에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마스크에 목을 맬 수밖에 없는 시대 풍경이 처량하고 서글펐다.


어릴 때 아버지가 약주(藥酒)를 과하게 마신 다음 날 아침 우리 식구들은 으레 콩나물국을 먹었다.     


방역 지침을 지키느라 사람들의 몸과 마음이 어수선하던 그해 초가을, 집사람이 조심스레 한마디를 던졌다. 주말에만 식사 당번을 포함해 집안일을 좀 도와줄 수 없냐는 것이었다. 뜬금없다는 생각은 이내 수긍하는 마음으로 바뀌었다. 얼마나 손이 달렸으면 그런 부탁을 다 했을까, 하는 간절함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또 음식 장만은 여자의 전유물이라는 사고는 시대적 흐름과도 맞지 않아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여긴 것도 한몫했다.      


#식단의 얼개 짜기

 쇠뿔도 단김에 빼란다고, 당장 주말 밥상을 차리는 데에 필요한 시행 계획을 세웠다. 가장 중요한 대목은 밥상의 메인인 주요리와 국의 종류를 정하는 것이었다. 평소 우리집에서 자주 먹는 메뉴를 떠올렸다. 집마다 음식 문화가 다르듯, 우리 식구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기억나는 대로 메모했다. 대략적인 식단(食單)의 얼개가 짜였다. 요리법에 대한 정보는 인터넷에 널려 있었다. 문제는 각양각색의 요리법을 유효 적절하게 취합하는 일이었다.      


지난 7월 대구의 한 허름한 식당에서 먹은 경상도식 추어탕대학 진학을 위해 집을 떠나기 전까지 어머니는 시장에서 사 온 펄떡거리는 미꾸라지로 손수 추어탕을 끓였다.


나만의 기준을 정했다. 서너 가지 요리법을 참조해 공통적이고 핵심적인 내용만 축약해 정리했다. 식재료 선택과 식재료 손질, 양념 만들기, 끓이는 시간, 불의 강약 조절, 간 맞추기 따위의 세부 사항을 항목별로 핸드폰 메모장에 저장했다. 다양한 요리 정보를 훑어보다가 음식의 맛을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다음의 세 가지라고 판단했다. 


육수 만들기와 양념의 비율과 배합, 간 맞추기. 모두 음식 맛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상수(常數)들이다. 3대 상수를 다루는 요령과 감각만 터득한다면 평균 이상의 맛이 보장된다고 스스로 결론지으니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식구들이 먹는 상차림이라 양질의 신선한 식재료 확보와 요리에 임하는 진지한 마음 자세야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지난 4년여 동안 내가 가장 많이 손질한 채소로 기억되는 양파와 청양고추대파.


직접 요리를 해본 경험이 없는 초짜 왕초보지만 가족들이 먹는 음식을 내 손으로 만든다는 사명감에 요리의 시작부터 끝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나도 사람인지라 가끔은 꾀가 나기도 해 상차림을 앞두고 게으름을 피울라 치다가도 밥심의 중요성과 소중함에 정신이 번쩍 들어 마음을 다잡곤 했다.


#첫 번째 주말 밥상 메뉴

 첫 번째 주말 밥상 메뉴는 닭다리 간장조림이었다. 동네 마트에서 닭다리 두 팩을 사 요리를 시작했다. 닭다리에 칼집을 내고 소금과 후추로 밑간한 뒤 우묵한 대형 팬에 올려 노릇노릇하게 익혔다. 닭의 노린내를 없애기 위해 소주 컵 한 컵 분량의 소주도 넣었다. 양파와 감자 한 개, 대파 한 대도 준비했다. 닭다리 간장조림의 맛을 결정지을 키포인트는 양념장. 진간장 네 큰술과 맛술 세 큰술, 올리고당 두 큰술, 설탕과 다진 마늘 각 한 큰술, 종이컵으로 물 한 컵, 후추를 섞어 만들었다. 닭다리 세트 500g 기준의 양념장이다.     


나의 주말 밥상 데뷔작인 닭다리 간장조림


집밥의 첫 시험 무대에 대한 식구들의 반응은 다행히 합격점이었다. 첫술에 배부를 수 없다지만, 시작이 반이라는 말에 용기백배했다. 매주 금요일 오후, 주말 식단을 짰다. 한 달쯤 지나자, 식재료를 다루는 칼질과 손놀림도 부드러워졌다.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감이 생기고 초보 딱지를 떼도 될만한 나만의 노하우가 쌓였다.      


#나만의 식단 정보 메모장

 4년이 넘게 집밥을 차리면서 느낀 점은 요리보다 음식 메뉴를 선정하는 일이 더 힘들었다는 것이다. 가족의 음식 취향과 계절 음식, 영양가 따위를 맨 앞에 내세웠으나 매주 만족스러운 식단을 짜기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주말 밥상의 차림표가 몇 순배 돌고 나면 그 나물에 그 밥 같다는 식상한 생각이 들기 마련이라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득한 지난날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콩나물밥


그럴 때마다 혹시나 신통방통한 메뉴가 있을까 싶어, 이런저런 정보를 뒤적여봤으나 매번 허사로 끝나고 말았다. 최고의 참고서는 역시 핸드폰 메모장에 내가 저장한 식단 정보였다. 후기(後記)를 쓰면서 헤아려보니 주요리와 부요리, 국, 찌개, 주요 밑반찬 등 그동안 요리한 메뉴의 누적 정보가 100개에 육박했다. 메뉴 결정과 요리에 따른 부담감이 없는 날도 있었다. 외식할 때는 말할 것도 없고, 한우나 삼겹살을 집에서 구워 먹거나 생선 매운탕 따위의 밀키트를 사서 먹을 때가 그렇다.      


주말 밥상 이야기 연재를 시작하기 전, 한 가지 방향을 설정했다. 손쉽게 정보를 구할 수 있는 고만고만한 레시피 위주의 뻔한 내용은 최소한으로 줄이는 대신 음식에 깃든 추억이나 일화, 요리 과정에서 경험한 시행착오, 식재료의 유래와 역사적 의미 등 유익하고 흥미를 끌 만한 배경에 초점을 맞췄다.      


집밥을 준비하면서 내가 스스로 개발한 양파전.


#집밥의 즐거움과 보람

 집밥을 요리하면서 얻은 즐거움도 컸고 보람도 적지 않았다. 내가 만든 음식이 가족의 건강을 뒷받침한다는 자부심과 요리를 완성했을 때의 성취감, 성의껏 차린 음식을 식구들이 맛있게 먹고 포만감에 행복해할 때의 그 모습을 잊을 수 없다. 학창 시절의 기억이 되살아나 혼자 웃음을 지었고 이제는 고인(故人)이 돼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옛 직장 선배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치기도 했다. 


사회생활 초년병 시절 직장 선배와 밤새 대작(對酌)을 한 뒤 속풀이로 먹은 선짓국


스스로 개발한 곁가지 메뉴를 처음 선보인 날, 기대 이상으로 식구들이 다 좋아해 기뻤고 실수로 음식 맛을 그르쳤을 때의 낭패감이 오히려 전화위복의 계기가 돼 요리에 대한 겸허한 자세를 더욱 다지게 된 점도 소득이었다. 요리 중간중간 꼭 필요한 따뜻한 조언을 아끼지 않으면서 언제나 후하게 음식평을 해준 집사람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한다. 집밥 이야기를 글로 써보라고 독려한 대학 친구 배(裵) 모 군에게도 감사의 인사를 남긴다. 


 주말 밥상 이야기는 끝났으나 나의 주말 밥상은 내일도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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