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레일라 Oct 03. 2021

EP 7. SNS가 밥 먹여 주냐고요? 네. 먹여줍니다

하루아침에 신입에서 7년 경력자 되기

생물학으로 석사 유학씩이나 하고 돌연 마케터가 되겠다고 선언하는 일은, 마치 "전 실패했습니다, 생각해보니 전 박사를 할 정도로 그리 똑똑하지 않더군요."라고 못을 박는 것과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서 어쩌면 무의식이 마케팅이 내 적성에 맞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연구를 하면서 즐거웠던 경험이 아예 없진 않았다. 내가 이 세상이 존재하지 않던 지식을 내 손으로 만들어내는 기쁨. "내가 실험해봐서 압니다."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게 해주는 그 근거들이 내 손에서 탄생한다는 자부심. 하지만 박사를 하려면 포기해야 하는 많은 것들이 내가 연구를 하면서 얻을 수 있는 기쁨보다 더 크게 느껴졌다. 저울질 끝에 나는 박사는 내 길이 아니라고 단정 지었다.


그럼 난 뭘 잘할까? 공부는 나름 열심히 했으니, 성적으로는 딱히 어디 가서 뒤지지 않지만, 그렇다고 인턴쉽 경험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일단 무슨 직무로 지원하지?


많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래서 가만히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나는 뭘 할 때 즐겁지? 누가 시키지 않아도 내가 스스로 짬이 날 때마다 하는 일이 뭐가 있지? 인스타그램 보기. 하 이런 쓸데없는 짓 하는데에 인생을 낭비하고 살았구나 나는. 아, 맞다. 나 블로그 하지 참.


Photo by mikoto.raw Photographer from Pexels

7년이었다.


그 누구도 내게 블로그를 하라고 등을 떠밀지 않았다. 그저 싸이월드가 흥하던 시절에는 싸이월드 하는 걸 좋아했고 BGM에 돈을 쓰기도 하고 방문자수를 올리기 위해서 매크로를 돌리기도 했다. 포토샵으로 당시에 유행하던 "꽃보다 남자"로고를 따라 만들어봤다. 어떤 소셜 미디어가 유행을 하든 나는 항상 그것들을 사용했고, 그 숫자에 연연하며 살았다. 그러다가 페이스북에서 인스타그램으로 유행이 넘어오던 시절, 내가 영국에서 지내면서 보고 느낀 것을 적는 일기를 쓸 플랫폼을 찾다가 네이버 블로그를 개설했다.


그렇게 7년이었다. 


7년 동안 거의 매일같이 일기를 쓰면서도 나는 단 한 번도 이것으로 내가 밥벌이를 하고 살게 될 줄 몰랐다. 이건 그냥 취미로 하는 일이었고, "진짜" 경력과는 관계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블로그를 운영하다 보니 유튜브도 하게 됐고 블로그와 유튜브 운영에는 기본적으로 많은 포토샵, 영상편집 스킬이 수반된다. 전문적으로는 배워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지만, 덕분에 나는 어지간한 그래픽들은 포토샵으로 대충 비슷하게 만들 수 있게 됐고, 영상 편집에 대한 기본기도 갖추고 있었다.


그럼에도 나 스스로가 이러한 것들을 과소평가하고 있었다. 단지 내가 이걸 "전공"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물론 전공을 한 사람들은 내가 갖고 있는 스킬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화려한 스킬을 갖고 그래픽 디자이너로, 영상편집가로 취업을 할 테지만 세상이 변했다. 이전에는 없던 직업들이 생겨났다.


많은 회사들이 소셜미디어를 운영하고 있다. 그래서 소셜미디어 전문가, 디지털 크리에이터, 디지털 마케터, 콘텐츠 마케터와 같은 직업들이 생겨났다. 변화에 다소 무딜 거라 생각했던 바이오텍 회사들이나 제약사들마저도 이런 변화에 맞춰 바뀌었다. 회사들이 나 같은 "소셜미디어 중독자"들을 필요로 하기 시작한 것이다.


석사 학위 한 장 달랑 들고 LinkedIn을 훑으며 무슨 직무로 지원을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던 생물학 석사졸 신입 백수가 네이버 블로그 덕분에 갑자기 7년 경력의 소셜미디어 전문가로 탈바꿈했다.

 



직무를 정하자 이제 어디에 지원을 해야 할지가 보이기 시작했다. Marketing이라는 키워드를 주로 사용하며 biotech 회사들이나 lifescience 회사들, 제약사들을 위주로 훑기 시작했다. 마케팅은 학교 다니던 시절 잘했던 과목이 아니었던 데다가 경영학에서 손을 놓은 지도 꽤 됐기 때문에 요즘 트렌드를 잘 모른다는 점에서 조금 불안하긴 했지만, 나름 (최소한 링크로라도) 증명할 수 있는 스킬들을 갖고 있었기에 지원해보기로 했다.


또, 이 분야에서 나처럼 전문지식을 갖고 있으면서도 소셜미디어 마케팅 스킬을 갖고 있는 사람이 그렇게 많을까?라고 생각한 순간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생각보다 이 두 스킬을 모두 가진 사람을 찾는 회사들이 많다는 것을 발견했다.


아, 이거다.


이제 취업은 따놓은 당상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