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러뮤니케이션 Nov 06. 2023

잔이 넘쳐버린 행복

2023년 11월 04일 (토)



평범한 데이트를 나선 우리는 조금 이른 저녁을 위해 식당을 찾아갔다.


다른 식당에 비해 유명한 장소가 아니고 이른 저녁이기에 웨이팅이 당연히 없을 거라고 생각했으나


예상외로 20분가량 기다려야 했다.


점심도 제대로 안 먹은 탓에 배가 고팠으나


오히려 좋았다.


지나오는 길목에 구경하고 싶은 것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예상에 빗나가도 늘 기분 좋게 다른 행운을 찾아냈던 우리는 


기다림을 즐겁게 이겨내고 식당에 들어섰다. 


그 사람은 나에게 맛있는 걸 먹여주는 게 낙이라며


내가 한번 밥 사려면 대단한 실랑이를 했어야 했기에


단호하게 선언했다.


"오늘은 진짜로 내가 살 거야."


생색을 낼 수도 없을 정도로 대단한 메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꽤나 단호한 내 말에 못 이기는 듯이 한 '알겠다'는 대답을 드디어 들어냈다.






한 주에 몇 번이나 함께 하는 평범한 이 저녁식사에서 


마치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있다는 뿌듯함이 들어 기분이 좋았다.


어쩌다 한 번인 지금, 당연히 받을만하다는 태도로 숟가락을 들 수도 있었는데


평소 내가 고마워하던 것보다 더 고마워하는 상대의 표정을 보니


그 뿌듯함은 배가 되었다.


내가 누군가를 기쁘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나를 굉장히 행복하게 해 주었다.





나는 밥 먹으면서 참 조잘조잘 많이 떠든다.


하고 싶은 것도 많고 느끼는 것도 많고 또 그래서 하고 싶은 말도 많다.


모든 말에 한 번도 대충 대답하지 않았던 그는 


"요 앞에 소금빵 맛집이래. 맛있겠다!"는 내 말에도 절대 대충 대답하지 않았다.


"먹고 싶은 만큼 사, 다 사줄게. 집에 가져가서 부모님 드릴 빵도 사."


꽤 진지하고 단호하게, 내가 이번에 밥 사겠다는 말 보다 더 적극적으로,


마치 나를 작정하고 꼬시는 멘트마냥 진지하게 빵을 사주겠다고 나서더이다.


이미 배가 부를 만큼 불러 더 이상 들어가지 않았음에도


빵을 먹고 싶은 만큼 사준다니 그 말이 기분이 좋았다.


그냥 기분이 좋았다.




"어? 나 휴지!!"


뜬금없는 눈물이었다.


진짜 눈에서 물이 떨어졌다.


보통은 눈물이 난다고 하면


어떤 특정한 감정을 느끼고 눈물이 난다.


그래서 눈물이 날 것 같으면 내 안의 어떤 제어장치로 눈물을 가둘 수 있다.


그런데 방금은 그 중간 절차를 느낄 새도, 


제어장치를 작동시킬 틈도 없이


빼죽 눈물이 튀어나와 버렸다. 


참으로 당황스러웠다.


물론 나뿐 아니라 그도 매우 당황스러워했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이야? 나 왜 눈물이 나?"


"그러게, 소금빵이 그렇게 먹고 싶었어?"


너무 웃겨서 웃음을 참으면서 눈물도 동시에 참았다.


나 원 참, 생전 처음 겪는 체험이었다.


서로 무슨 영문인지 몰랐지만, 


사실 알았던 것 같다.


그냥 모르겠다, 어이없다는 말로 눈물의 의미를 서로 이해했다.




사실 둘이 간혹 함께 할 때 


이런 전조증상을 두세 번쯤 겪었던 것 같다.


그때는 안간힘을 다해 무의식적으로 참아냈는데 


오늘은 정말 순식간이었다.


함께하는 공기, 함께하는 시간, 시답잖은 농담과 특별하지 않은 반복된 메뉴의 저녁식사.


산책하는 길, 길을 잘못 들어서서 돌아가는 골목,


배달 지를 잘못 입력해서 잘못 배달된 밥을 가지러 간 차 안,


그 순간순간들이 모두 즐거울 수 있다는 것이


나로서는 지금까지 담아낼 수 있던 행복의 그릇에 과부하가 걸린 게 아닐까 싶다.


어떤 감정이든 격해지면 눈물이 났던 것처럼 말이다.


글을 써내려가는 이 순간에야 알게 된다.


'소금빵 사줄게'라는 말 한마디가 


가득 찬 물컵에 떨어뜨린 한 방울의 물이 잔을 넘치게 했던 것처럼


내 행복의 그릇을 찰랑찰랑 채우다 못해


넘치게 했던 순간이었음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