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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신호를 찾아

어제는 슬펐지만 오늘은 잔잔하게



빛은 나에게 희망이자 아직 빛나는 인생이 남았다고 알려주는 살아 있는 신호다.

- 정지현 작가 | 어제는 슬펐지만 오늘은 잔잔하게


진정으로 예뻤던 건 이 아이의 마음이었구나. 

어렸을 때부터 마음속에 빛을 품고 살았던 아이. 작가로 다시 곁에 왔어.

- 그림책소리 | Minidinbookstore



정지현 지음 | 지성사


20대 대학 시절에 알게 되어 사회에 나와서도 친구로 남아있던 그녀가 어느 날 간병인이 되었다. 


학생 신분을 벗어날 때를 직감하고 있을 때쯤 내가 큰 고민 없이 그냥 대기업에 취직했을 때 뉴욕으로 건너가 컬러리스트 공부를 다시 하겠다던, 한국에 돌아와서도 코스메틱 분야에서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기 위해 길고도 꾸준한 길을 화사하게 정진하던 내 친구 지현이.


"어머니가 많이 아프셔. 요즘 병원에서 지내." 

평범했던 어느 날 안부 차 연락을 했을 때 친구의 상황을 듣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버벅대던 그날의 마음이 떠오른다. 항상 유쾌하게 만났던 친구였기에 어두운 얘기는 오간 적이 없었다. 그 세월 우리 사이를 메꾼 주제는 연애, 취업, 목표, 이직이나 승진, 결혼 이런 것들이었다. 항상 털털하고 뭐든지 알아서 해내는 친구라고 여겨왔기에 그것 또한 툴툴대기 넋두리 이상으로 분위기를 잡아본 적이 없던 것 같다. 고민이 있어도 와인을 마시러 가거나 반나절 일탈을 위해 저녁이 되기를 기다렸다 클럽에 가서 큰 음악으로 귀 마사지를 하고 바에서 주는 원샷을 두어 번 들이키고 다음 날 출근을 위해 귀가하는 게 전부였던, 웃음이 가득찼던 그 시절.


"너에게 잘 어울릴 것 같아. 진짜 예쁠 거야." 

지현이는 항상 선물 같은 존재였다. 만날 때마다 색조 용품이나 향수 샘플을 건네곤 했다.  내 얼굴 눈 코 입 어디에 어떻게 색조가 들어가야 잘 어울릴지 항상 시험해보고 싶어 하고 조언해주던 친구. 돌이켜 보니 그런 친구의 다정한 관심에 얼마나 귀담아듣고 고마워했는지 잘 모르겠다. 이 책을 읽고 옛날엔 그 고마움을 왜 더 몰랐을까... 내 마음이 미안함으로 물들었다. 진정으로 예뻤던 건 이 아이의 마음이 아니었을까. 어렸을 때부터 마음속에 빛을 품고 있던 아이가 이제 작가로 내 곁에 다시 돌아왔다는 감사함이 느껴졌다.


"어머니께 잘해드려." 

친구는 가끔 그렇게 말했다. 우리가 잠시 떨어져 지냈던 시기. 내가 임신과 출산을 하고 이른 복직을 해 워킹맘으로 고군분투를 하고 다시 둘째를 낳고 정체성의 대혼란을 겪고 있을 때 친구는 간병 생활을 하고 있었던 거다. 어머니께 잘해드리라는 그 말이 너무나도 생소하게 들렸다. 평소에 친정 엄마에 대해 애틋한 마음을 아직 가져본 적이 없어서 그럴 테다. 언제나 나에게 헌신적인 엄마를 당연하게 여겨온 시절이 있었다. 특히 내가 워킹맘으로 지낼 때는 물론 감사한 마음은 정말 컸지만 엄마의 희생에 대해 단 몇 퍼센트라도 그저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면이 있었다. 내가 운이 좋다고는 생각했지만 엄마에게 편하게 대했던 내 마음가짐이 후회되기 시작한 건 비로소 일을 그만두고 오롯이 혼자 육아를 시작했을 때부터였다. 기계처럼 반복되는 육아 일과에서 오는 어쩔 수 없이 느껴지는 고립된 기분이 들 때, 아이에게 푹 빠진 아름다운 순간을 누군가와 나누지 못해 외로운 기분이 들 때 '우리 엄마도 정말 이랬겠구나.' 싶었다. 아이가 아파 병원에 가야 할 때 운전하고 주차하고 아이를 카시트에 태우고 내리고 유모차에 태우고 내리고... 그렇게 반복되는 하루하루들. 기저귀 분유 짐 가득한 가방을 한 짐 어깨에 둘러 멜 때 엄마에 대한 미안함 마음이 증폭되었다.


"우리 엄마는 뭘 좋아할까?"

내 친구 어머님은 후라보노 껌과 쇼핑을 좋아하셨구나. 책을 읽고 알았다. 친구와 친구 어머님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눠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마찬가지로 우리 엄마에 대해서도.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건 항상 우리 자신들의 앞날이었다. 여태까지는 그래 왔다. 처음으로 생각해보게 된다. 우리 엄마는 뭘 좋아하실까. 홍감인지 단감인지 헷갈린다. 벌써 미안해지면 안 되는데. 또, 팥죽인지 팥빵인지 헷갈린다. 언제나 삼 남매를 바라보며 사신 우리 엄마, 이제부터라도 무엇을 좋아하시는지 정확하게 알아내야겠다. 친구와 친구 어머님의 마지막 추억으로 잃어버린 단순한 날들에 대한 감사함을 깨닫게 된다. 단순한 날들에 엄마와의 퍼즐 조각을 더 많이 만들고 싶다.


"아가야, 내 친구에게 와 주어 고마워. 엄마와 함께 행복한 빛을 많이 발견하길.♥"  

며칠 전 친구가 드디어 아기를 만났다. 신생아 사진은 몇 번을 보아도 늘 새롭다. 온 몸의 세포가 꽃봉오리처럼 살짝 오므라들면서 바라보게 되는 그 설렘. 아기를 바라볼 때면 그렇게 늘 봄 같다.


심인서점 (@mindinbookstore) • Instagram photos and vide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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