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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치발자국


                                              "와! 그렇게 걷는 건 어떤 느낌이야?"


아이가 요정 앞에 다다랐을 때 

                               태어나 처음으로 받아 본 질문이

                                                                    숲에 울려 퍼졌습니다.

                                                                                                    - 그림책 더미북 [까치발자국] 中



나윤아. 나는 네가 하마처럼 나왔다는 게 정말 믿기지가 않아. 어떻게 찍어야 보통 체형의 여성이 그리 나올 수 있는 걸까? ^^


사실 말이야.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바라보고 수긍한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이니. 그걸 참 잘하는 부모라면 아이에게 윽박을 지르거나 섣불리 화내는 실수를 거의 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곤 해. 그런데 말이야, ‘있는 그대로’라는 이 말에서 결코 해낼 수 없는 게 있어. 그건 바로 측정하기야. 느낌은 수학적으로나 과학적으로 측정할 수 없기 때문에 때때로 사람들은 매우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해. 보는 사람에 따라 같은 그림도 다르게 보이고, 같은 소리도 다르게 들리고 심지어 같은 상황도 다르게 기억되기 때문이지. 이렇게 세상에는 서로 다른 게 너무나도 많아 우리가 할 수 있는 얘기는 끝이 없을 거야.


성장하는 아이들의 발달에 따라 부모로서 우리가 느끼는 점들도 계속 변화하니 고민도 달라지는 것 같아. 대부분은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사라지기도 하지만 환경을 열심히 개선해서 더 잘 키우려고 정말 노력을 많이 하기도 해. 난 너에게서 아들 체격을 걱정하는 엄마의 모습을 상상해 본 적이 없었는데, 편지를 읽고 이 친구가 꽤 진지하게 이 문제를 생각하는구나 싶었어. 민우는 정말 신체를 잘 쓰고 운동 감각이 탁월하니까 그쪽으로는 걱정할 일이 없겠거니 했단다. 오히려 그 걱정은 나에게 있었지. 우리 아들의 만성적인 까치발. 나의 숙원 과제.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마치 내가 원죄를 지은 것처럼 마음이 힘든 날도 많았어. 오죽하면 작년 가을 그림책 기획과 창작 과정에서 ‘까치발자국’이라는 제목으로 그림책 더미북을 만들었겠니. 처음에 그걸 기획하고 글 원고를 쓰고 노력해도 잘 안 되는 그림을 억지로 쥐어 짜내 마침내 더미북을 완성했을 때 후련한 기분이 들면서도 서러운 눈물이 마구마구 흐르더라. 최종 발표 날에 너와 동기들 앞에서 펑펑 울었던 기억이 생생해. 너무 부끄럽지만 멈출 수 없었고, 아직까지 정확한 이유도 알아내지 못하겠어. 


단 한 가지만 마음에 새겨져 있어. 두 발을 바닥에 대고 서면 허리를 꼿꼿하게 펴지 못하게 된 이 아이의 까치발을 나는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어떤 관점과 어떤 시선으로 이 상황을 품어야 할까 라는 고민을 치열하게 할 수밖에 없었어. 의학적으로도 미궁에 빠진 만 6세 아이의 까치발. 선천적으로 아킬레스 건이 짧은 것 같다며, 추정컨대 키 성장 속도가 빨랐다면 정상 보행이 매우 불리할 거라는 이 분야 최고 전문이의 소견. 군대도 힘들지 모르고, 수술을 해도 예후를 장담할 수 없다는 바람 빠진 풍선 같은 그 말에 표정 관리가 안되더라. 그러니 수술을 강행할 수도 없고, 아이에게 계속 발을 내리라며 할 수 없는 일을 계속 해내라고 하는 것도 몹쓸 짓이 아닐까 하는 고민이 컸어. 


이 아이를 너무 사랑하지만 걱정하는 마음에 지었던 표정이 내 아이의 마음에 상처 나게 지나가지는 않았을까? 무심코 내뱉은 실망스러운 표현들이 내 아이의 귀를 스쳐 지나지는 않았을까 노파심에 휩싸인 날들도 있었어. 제이님과 상의를 해서 우리 아이에게 정상 걸음을 하라고 무리한 요구를 하지 말자 해놓고 다음 날 또다시 까치발을 내리라고 얘기하는 모순을 저지른 날들도 많았어.


제이님은, (아, 오늘부터 남편을 그렇게 불러주기로 했어.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내가 너희 부부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도 호칭을 정해보자 했거든. 영어 이름으로 부르기로 했어. 언제까지 오빠라고 부를 수가 없고, 여보라는 단어는 영 어색해서 말이야.) 까치발을 첨족 보행이라 부르곤 했는데, 그러던 어느 날 첨족 보행 교정 깔창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 우리처럼 수술 빼고 이것저것 다 해본 사람들이 해결을 본 방법이라고 하니 제발 우리 집에도 기적이 일어나기를 바라.


나, 솔직히 쓸게. 까치발로 걷고 뛰고 하는 게 장애라고 느껴졌어. 결정적으로 정상적으로 발을 바닥에 붙이면 허리를 잘 펴지 못하니까 말이야. 그런데 장애라고 내가 너무 슬퍼하기만 한다면 세상에 있는 수많은 장애를 앉고 살아가는 분들에게 너무나도 큰 무례함을 범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더라. 내 삶으로 품어 보통 사람들처럼 열심히 살아가는 분들에 대한 존경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 더 이상 내 고민의 기준을 장애인지 비장애인지로 구분하지 않기로 결심했어.


우리 딸은 아주 살짝 부정 교합이고, 아들과 마찬가지로 치아에 착색이 있어. 자연발생적으로 특정 미생물이 많이 있어서 때처럼 보기 때문에 종종 썩은 이로 오해를 받을 수도 있대. 대신 이런 치아는 치아 관리를 좀 소홀하게 할 경우에도 충치가 생길 확률이 아주 낮다고 해. 충치균이 이 미생물균을 이길 수가 없다고 하네. 전반적으로 크게 문제가 없고 예쁘고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지만 적절한 시점에 교정을 한다면 부정교합에 동반되는 부작용을 예방해줄 거래. 그래도 아기 때 두상이 많이 불균형했을 때와 비교하면 자라면서 좌우 대칭이 눈에 띄게 좋아졌어.


까치발을 생각하면 내 탓인 것 같고, 부정교합을 생각하면 제이님 탓인 것 같아. 이렇게 생각하는 게 옳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자책하는 마음은 어쩔 수가 없나 봐.

그림책 더미북 [까치발자국] 한 장면으로 언젠가 그림 작가님과 인연이 닿기를 기다리고 있는 한 펼침면..


더미 그림책 [까치발자국]에서 어쩌면 내가 그 마음에서 해방되고 싶었을지 몰라. 주인공 아이가 까치발로 또래들과 놀이에서 금세 넘어져 학교 숲으로 들어가잖아. 우선은 회피 본능이 있던 것 같아. 나 자신과 내 마음이 더 이상 다치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학교 숲에 들어서서 어디에선가 부는 바람결을 느끼고 환기가 되기 시작해. 환상 속에 등장하는 요정 말이야. 그거 내 페르소나야. ^^ 그 요정과 까치발 소년이 서로 대결을 하면서 어떤 발걸음이 더 좋은지 대결을 하잖아. 그렇게 흑백 논리로 시작된 대결이 결국 그런 것들은 다 상관없다고, 우리가 함께 어우러져 그 시간을 즐겁게 만끽했다면 충분하다 외쳐. 같이 이 놀이를 끝까지 해내는 게 의미 있다는 걸 독자의 마음에 꾹꾹 눌러 담아주고 싶었어. 우리 아이가 까치발이든 아니든 우리 가족이 남은 나날들을 기꺼이 행복하게 함께 할 것이라는 약속을 내 마음에 새긴 것처럼 말이야.


심적으로 어떤 힘든 고통이 있다고 해도 절대 놓아 버리지 않겠다, 손 맞잡고 끝까지 살아내 보자. 어려움을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않기. 슬픔을 너무 슬프게 생각하지 않기. 웃음 한 스푼 듬뿍 떠서 섞어 보기. 해답을 찾아 떠나보기. 머리보다 몸으로 해내기. 그렇게 연습하다 보면 요동치는 마음을 벗고 먹구름 하늘 개이듯 맑은 기분으로 갈아입는 능력이 생기지 않을까 생각해. 그렇게 자기 삶의 연료를 스스로 만들 수 있게 되는 경험을 아이들과 함께 겪어내 보고 싶어.


우리 각자의 고민은 계속되겠지만 너와 이렇게 편지를 주고받는 일도 아주 특별한 연료라는 걸 알고 있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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