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노트 그림책 블렌딩
오후 여섯 시 사십 분 주머니에서 차 키를 뒤적인다. 조용히 운전석 문을 열고 노트북과 그림책 몇 권이 든 스퀘어 모양의 토트백을 조수석에 둔다. 휴대폰을 찾아 네비를 켜고 전에 갔던 카페를 선택한다. 안내 버튼을 누르기 전 한숨을 쉬어 본다.
둘째 아이 눈동자에 눈물이 맺혔던가. 첫째 아이 얼굴에 서운함이 묻었던가. 단기 기억 저장고에서 머뭇대 본다. 그래 봤자 늦었다. 이미, 운전대를 잡았다. 아까 생략했던 들숨을, 날숨과 세트로 하고 시동을 켠다. 이십 분 안에 그림책의 그림 읽기를 하러 가야만 한다.
집에서 차가 멀어질수록 몸으로 느낀다. 아이들을 향한 원심력은 멀어지고 그림 읽기 시간 대한 구심력은 또렷해진다. 마치 그림책의 글과 그림의 관계처럼.
글은 원심력이다. 치고 나아가는 힘, 다음 장이 궁금해 계속 들려달라고 하는, 참을 수 없는 힘. 그림은 구심력이다. 안에서 머무는 힘, 그대와 함께, 멍석을 깔고 앉아, 구석구석 마냥 사유하고 싶은 힘.
이런 원심력과 구심력이, 동시에 작용하면, 하나의 독특한 궤도가 생긴다. 나만의 속도로, 궤적을 따라간다. 혹여, 내 감상이 너무 돌아가는 건 아닐까, 경계한다. 수업을 하다 보면 자의적 해석이 난무하는 날도 있다. 어쩌다 본질에서 영 멀어지는 날도 있다.
책이라는 물성과 현대 그림책의 디자인적인 텍스트성은 논외로 하겠다. 그림이 있어서다. 글만 있다면 사고를 어느 지점에서 풀어낼지 집중하지만 그림은 자신만의 사유를 이곳저곳에 붙이기 나름이다. 사람들이 그림책에 열광하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림 읽기 교수님은, 궤도에서 멀어진 이들도 넉넉히 품어주셨다. 질문에서 질문으로 이어진 점들을 이어가다 보면 그날의 궤적이 만들어진다. 거기서, 그날의 공감이 태어난다. 잔잔한 공감은 우리를, 숲으로, 호숫가로, 때로 히말라야 산맥으로 데려다주었다.
그녀의 우아하고 유려한 항해는 그림 읽기, 비주얼 리터러시 그 자체다.
그곳에서 난, 열정 선원이었다. 아이코노텍스트, 메타픽션, 그래픽노블, 상호텍스트성과 같은 용어들을 미리미리 주워 놓는다. 그것들을 용사처럼 줄 세워 둔다. 언젠가 그림책 수업을 하는 날 적재적소에서 활약해주길 바라며.
그림도 결국은 언어였다. 그러니까 그림도 언어의 세계에서 재생되는 거였다. 심상의 언어가 글의 언어를 만나 점층적인 의미를 쌓는다. 함께 읽으면, 보이지 않아도 작가와 나, 독자와 독자가 만나, 한 편의 콜라주를 완성하게 되는 것이다. 좋은 느낌이다. 이 좋은 걸 나누지 않고는 도무지 못 배기겠다 싶을 정도다.
세 시간이 지났다. 이번엔 집으로 향하는 원심력이 거세지고 그림 읽기에 대한 구심력은 미련을 부린다. 그렇게 궤도가 스위치 된다. 상극의 힘이 작동한다. 24시간, 언제나 내 안에서 힘겨루기를 하고 있지만 동시에 나의 구원이기도 한 앞으로 나아가는 힘과 머무는 힘의 연합을 꿈꾼다.
그 둘의 결합, 케미, 그것의 정수를 그림책의 그림 읽기를 통해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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