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노트 그림책 블렌딩
어떤 사람이 있었습니다. 일을 아주 많이 빨리하는 사람이었지요. 어느 날, 남자는 숨이 막힐 것만 같았습니다. 이곳에 무슨 일로 어떻게 온 건지도 기억나지 않았습니다. 맙소사! 자기 이름마저도. 다음 날 의사는 남자에게 말했습니다.
"누군가 우리를 내려다본다면, 세상은 바쁘게 뛰어다니는 사람들로, 그리고 그들을 놓친 영혼들로 가득 차 보일 거예요. 영혼은 주인의 속도를 따라갈 수 없으니까요." "제가 제 영혼을 잃어버렸다는 말씀입니까?" "환자분은 자기만의 어떤 장소를 찾아 영혼을 기다려야 합니다. 제가 드릴 다른 약은 없습니다."
영혼이 일탈한 자를 위한 약재를 찾아 헤맸다. 올가 토카르추크가 쓰고, 요안나 콘세이요가 그리고, 이지원 박사님이 옮긴, 사계절 출판사의 그림책, 잃어버린 영혼을, 발견했다. 아련하게 투명한 두 장의 트레이싱 지를 넘겼다 되돌렸다 해본다.
사르륵 착, 공기를 가르며 종이가 넘어갈 때 트레이싱지에 새겨진 그림은 정처 없이 모퉁이를 걷고 있는 과거의 나와 포개어진다.
영혼을 놓쳐버린 곳은 영영 찾지 못할 것이다. 대신, 검은색 재킷을 벗고 스퀘어 가방을 내려놓을 수는 있다. 의자 위에 화분 하나를 올려두고 의자를 하나 더 가져다 놓는다.
영혼이 나에게로 되돌아오는 길을 알아내길 바라며 문 앞부터 저기 숲 속길까지 과자라도 뿌려놓고 싶지만 내 영혼은 헨젤과 그레텔의 것이 아니기에 그저 멈추고 기다린다. 이번 기다림은 수동적인 바람이 아니다. 적극적인 선택이다. 미쳐 버리기 전에 부질없는 것들을 버려서 미(美)를 되찾는 일이다.
영혼이 와서 앉을 수 있게 여유를 마련한다. 손가락을 어루만지며 차를 건네주려 한다. 얼마나 수고가 많았냐며, 다정한 본새로 알아주리라.
맞잡은 마음으로 책을 덮는다. 앞뒤 면 표지가 만난다. 반짝반짝한 코팅을 하지 않은 것은 기획 의도일까 생각한다. 손끝에 보드라운 면이 닿으니, 좋아서 두 번 세 번 쓰다듬는다. 세안 후 화장을 하지 않은 사람의 말간 민낯, 아직 로션을 바르기 전의 살갗을 떠올린다.
혹여 그런 느낌을 모르고 영혼을 잃어버린 사람이 있다면 들려주고 싶다.
'그림책 테라피를 처방해 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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