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모를 땋으며'를 읽고
향모를 땋으며
토박이 지혜와 과학 그리고 식물이 가르쳐준 것들
로빈 월 키머러 지음
노승영 옮김
에이도스
향모란 이름은 사실 처음 들어본 식물이다.
벼과의 식물이라는 데 이름 그대로 향기로운 냄새가 나는 모양이다.
우리가 흔히 볼 수도 있는 풀이라는데 나는 이 책을 접하고야 처음으로 인터넷을 검색했고,
그 모습을 보고 그 뜻을 알게 되었다.
명색이 귀촌인이라는 사람이.
이 책을 처음 접할 때 이미 '식물과 그 경이로움에 관한 이야기가 아닐까?'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긴 했다.
예전에 이와 비슷한 책을 읽었을 때, 내가 모르던 식물의 세계를 접하고 감격했던 경험이 있기 때문에.
이미 그런 마음의 준비가 있기 때문이었을까?
580여 페이지에 달하는 두꺼운 책을 너무나 신나고, 즐겁고, 몹시 호기심 나고, 급기야 감동의 눈물이 나려는 마음으로 읽은 이유가.
이런 경험은 순전히 저자인 로빈 월 키머러 덕분이다.
인디언의 핏줄을 타고 동시대를 살고 있는 작가는 식물생태학자다.
아무리 인디언의 피가 섞였다고 해도 과학자가 식물생태학을 접하면서 자신의 전통윤리와 문화를 아우르는 일이 쉽지는 않을 터이다.
땅 위에서 태어나고 어우러지고 마감하는 생명에 대한 존중,
그 전통을 오랫동안 간직하고 그렇게 살아가려고 노력하지 않았다면.
저자는 책에서 식물이 소통하지 못한다는 결론은 순전히 '동물'이 말하는 메커니즘을 차용했기 때문이라며,
과학적 고찰의 결과를 알려준다.
나무들은 사실 '페로몬'을 통해 소통한다고 .
나무의 대화는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범위를 훌쩍 넘었다는 것이다.
이 대목은 인간만이 소통하는 존재라는 우월성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깨달음을 준다.
오래 전 읽은 '사이보그다 되다'의 책에서 청력장애자인 저자는 자신이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이 어떻게 다른 지를 소개했다.
책에서 저자는 청력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이 다르듯 또 다른 소통의 방식이 있다며, 움벨트라는 단어를 언급했다.
다른 움벨트를 가진 세상을 우리가 알 수 없다고.
동물인 인간의 세계와는 다른 범주로 소통하는 세상. 이 다른 움벨트를 우리는 감지하지 못할 뿐이다.
나무들의 움벨트는 우리 인간과 전혀 다른 방식일 것이다.
아주 느리고 아주 깊을 것이란 상상을 할 뿐이다.
이 책의 저자는 '선물'이라는 책을 쓴 루이스 하이드의 사상을 자주 언급한다.
몇 달전에 힘들게 읽어내려갔던 책이다.
루이스 하이드는 선물의 법칙을 언급하며 나눔과 책임의 과정이 선물의 고유 특성인데,
돈으로 물건을 사고 팔면서 이 선물의 법칙이 사라져 갔다고 언급했었다.
'그래, 선물의 법칙은 참 아름다워. 하지만, 지금 이렇게 거대한 대중 사회 속에서 적용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지...'
나는 책을 다 읽고 나서도 자본의 숲에서 개별화된 현재를 살아가는 내 모습을 이렇게 변명했던 것 같다.
하지만, '향모를 땋으며'책의 저자는 루이스하이드의 선물의 법칙을 언급하고, 다시 소환할 것을 요구하면서 과학적 영역에서 그 쓸모를 증명한다.
야생딸기가 맛있게 익은 것을 감사하게 여기고 맛있게 먹은 인간이 다시금 야생딸기가 잘 자라도록 덩굴이 잘 번지도록 도와주면 인간과 딸기의 관계는 달라질 것이라고.
맞다. 야생딸기가 잘 자라도록 돌보는 행위, 이것은 선물의 법칙이다.
나눈 것을 받고 그에 대한 책임을 다하는 행위다.
어른들이 흔히 하는 자연물에 대한 감사의 표시, 일종의 제의(의식)도 다시 돌아보게 해준다. 그저 애니미즘으로 치부할 수 없다고 말이다.
저자의 아버지는 첫 커피를 자연에 바치는 제의로 사용했다고 기억한다.
하지만, 커피 주둥이가 막혔다고 생각해서 커피 알갱이를 버리는 행위였다는 것이다.
어쨌든 기억 속의 그 과정은 일종의 제의였고, 그럼으로써 기쁨과 감사함으로 영혼이 즐거웠다고 한다.
합리성에 기초한 행위가 곧 자연에 대한 존중이며 삶에 기쁨을 주는 과정인 이러한 선물의 법칙은 현재에도 매우 유용할 것 같다.
다시, 선물의 법칙을 소환해도 될 것 같다.
과학자의 시각에서 우리가 사는 땅의 고귀함과 환경의 중요성을 돌아보고 그것을 실험을 통해서 증명하는 과정도 이 책이 지닌 소중한 가치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 책에 대한 나의 감동은 덜했을 것이다.
몇가지 사례가 있다.
그 중 하나는 식물이 보상생장이라는 생리학적 변화를 겪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풀을 뜯어주고 거기에 더해 동물의 똥이 비료가 되면 풀들이 더 잘 자라는 것을 실험으로 증명했다.
목축업이 환경파괴의 주범이라는 소리까지 들었던 적이 있던 나는 저으기 혼란스러웠지만,
이 실험은 오래전부터 살아온 인류의 삶의 방식이 매우 과학적이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담비를 가죽으로 만들어쓰는 산업 때문에 담비가 멸종위기를 맞고 있다는 시각도 따지고 볼 일이었다.
담비 사냥꾼이 담비를 돌보는 최첨병의 역할을 한다니 말이다.
수컷이 잡힐 때만 사냥하고 암컷이 잡힐 때는 사냥을 그만둔다는 담비사냥꾼은 담비의 멸종을 바라지 않는단다.
담비 사냥꾼이야말로 모든 개체가 더 조화롭기를 바라는 사람이었다.
고구마를 캐거나 감자를 캘 때 느끼는 충만감 같은 것도 과학으로 증명할 수 있었다.
연구에 따르면 부식토냄새가 사람에게 생리적 영향을 주어 옥시토신 호르몬 분비를 자극하기 때문이란다.
이 대목에서 나는 웃음이 나왔다.
땅을 사랑하는 사람이 행복해지는 원리를 규명했으니 말이다.
이 책의 저자가 소개하는 과학적 실험은 협력과 나눔, 어울림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한다.
조류와 균류의 결합이 아주 악조건에서만 이루어진다는 실험을 통해서,
인간 소외의 치료는 오히려 인간 네트워크일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산화탄소와 물이 결합되고 빛과 엽록소가 작용하면 당과 산소가 생성되는데,
이 과정이 광합성이며 이렇게 옥수수가 성장하고 성장한 옥수수에서 인간은 산소를 얻는다는 것,
미토콘드리아는 당과 산소와 결합하여 다시 이산화탄소와 물을 배출하는 데 이렇게 또 인간이 호흡한다는 것,
이 모든 것이 식물의 숨과 동물의 숨이 서로 주고받는 세상 임을 증명하는 것이며,
작가는 이것을 호혜성의 위대한 시라고 했다.
그러니 이 책을 통해 나는 알게 되었다.
선물, 나눔, 베풂은 우리 주변에 산재한다는 것을.
그렇게 선물의 법칙으로 살아가는 것이 인간 삶을 좀 더 풍요롭게 하고,
우리의 영혼(정신)을 행복하게 한다는 것을.
이것이 과학적 실험으로 증명되었다는 것을.
그러니 하늘 여인의 첫 사람들의 살아간 방식을 환기하고,
우리모두 그렇게 살아가 보면 어떨까 하는 바람을 이 책은 담았다.
하늘 여인의 첫 사람들은 으뜸명령을 자신들이 이해한 대로 지키며 살았다.
그들의 으뜸명령은 존중이 깃든 사냥, 가족생활, 세계에 의미를 부여하는 제의 등을 규정하는 윤리적 지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