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과 기쁨이 눕는 자리(4)

침대 위 우리의 변천사

by 쑥자람

친구 결혼식에 다녀온 저녁, 문과 나란히 앉아 <호빗: 스마우그의 폐허>를 보던 중이었다. 서울에 다녀와 피곤한 탓인지 영화를 보는 중간중간 자꾸만 눈이 감겼다. 흘긋흘긋 내 상태를 체크하던 문이 푸흐흐 웃으며 영화를 중단했다.


“쑥이 한숨 잘까?”

“오빠 나 10분만 자고 일어날게. 오빠 놀고 있어.”

“나도 쑥이 옆에서 10분만 자야겠다.”


문은 팔베개를 해준 채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포근한 손길을 느끼며 가만히 눈을 감고 있으니 자연스레 입밖으로 말이 흘러 나왔다.


“오빠, 오늘 엄마 기일이야. 아까 서울 가는 버스에서 엄마 사진을 들여다보다가 몇 장 가족방에 공유했는데, 금방 도착하더라? 근데 그동안 그렇게 결혼식을 많이 다니면서 한번도 생각 해본 적 없었는데, 오늘 곱게 한복 입고 입장하시는 양가 어머니들을 보고 있으니 이런 생각이 들었어. 우리 엄마도 한복 입으면 되게 고울 텐데…. 서울 가는 내내 엄마 사진을 들여다 봐서 그런지 자꾸만 엄마가 한복 입고 입장하는 모습이 눈에 아른거리는거야. 아까 프리지아도 그래서 사온 거고, 오빠한테 가래떡 꺼내달라고 한 것도 그래서 그랬어. 엄마가 좋아하던 것들이거든. 근데 저녁을 너무 많이 먹어서 떡을 못 먹었네.”


조용히 머리를 쓰다듬어주던 문이 내 말이 끝나자 한마디 덧붙였다.


“그래서 아버지들을 같이 입장하게 해야 하나 생각했었어.”


진중하게 꺼내놓는 엉뚱한 생각에 와하하 웃음이 터져버렸다.


나는 문에게 엄마 이야기를 들려줬다. 17년간 몇 번이나 회상하고 글로 적기를 반복해서 이제는 슬프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오빠에게 엄마의 장례식 얘기를 하니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문은 나의 미세한 떨림을 알아챘는지 말없이 나를 품에 묻었다. 나는 조용히 눈물로 오빠의 옷을 적셨다. 그러다 민망해져서 몸을 일으켜려 했다.


“안돼! 10분 지났겠다. 영화봐야지!”

“영화보다 쑥쑥이가 중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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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은 나를 잡아 당기더니 다시 품에 묻고는 토닥였다. 우리는 침대에 누운 채 서로가 기억하는 엄마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문의 눈가가 축축했다. 문의 눈물이 조용히 흘렀다. 나는 “우리 오빠 더운가?”하며 땀을 닦듯 스윽 그의 눈물을 닦아줬다. 그날 밤 우리는 서로의 눈물을 훔쳐주고 서로를 토닥이고, 볼을 쓰다듬고 머리를 쓰다듬으며 엄마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에게 침대는 잠자는 공간 이상이었다. 서로에게 어린아이가 되기도 했고, 상처를 꺼내 보이기도 하고 깊은 위로를 주고받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래도 침대의 본 목적은 수면. 하루의 끝에서 우리는 침대로 다이빙한다.


“쑥쑥이 넓게 자. 쑥쑥이 편안한 숙면을 위해 내가 희생할게.”

“으잇 또 놀린다! 일로 와. 내가 팔베개 해줄게.”


좁은 침대 위에서 우리는 밤마다 서로의 베개가 되어간다. 작은 침대 사이, 우리 사이의 거리는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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