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채우는 중
친구가 티니핑 mbti 테스트를 보낸 이후로 티니핑에 스며들었다. 깜빡핑(망각의 티니핑), 차니핑 (귀찮음의 티니핑), 얌얌핑(배고픔의 티니핑) 등.. 감정과 마음을 무슨핑으로 표현하는 게 넘 귀엽다. 그때부터 친구들이랑 말할 때 기분과 상황에 맞춰 파산핑~ 출근핑~ 피곤핑~을 외친다. 어디에든 ~핑을 붙이면 제법 어울리고 귀여울뿐더러 무거운 감정도 가볍게 느껴진다.
나는 퇴근핑이다. 출근길 버스에서도 (아직 회사에 도착하지도 않았는데) 퇴근이 하고 싶다. 지금 다니는 회사가 노잼이어도 안정적이라는 이유로 퇴사핑, 이직핑은 포기하고 퇴근핑에 그럭저럭 만족하며 지낸다. 회사에서 무채색으로 조용히 할 일 하다가 18시 땡 하면 의자에서 튕겨 나온다. 거의 인간 용수철 아마 회사에서 퇴근 인사할 때가 가장 밝은 거 같다. “내일 뵙겠습니다~” (방긋)
촤라라~ 이제 나의 진짜 모습 퇴근핑의 시간이 시작된다! 회사에서는 주어진 시간(9 to 6)에 할 일을 채워 넣었다면(어서 퇴근 시간이 오길 바라면서), 퇴근해서는 내가 하고 싶은 것들에 시간을 맞춘다. 회사에서 방금까지 퇴근핑이었지만, 이제부터는 열정핑~ 낭만핑~ 에너지핑! 나의 하 루 중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채울 수 있는 시간은 퇴근 후부터 자기 전까지 고작 대여섯 시간 뿐이다. 그냥 보내면 마냥 흘러가는 시간이라 더욱 애틋해진다. 이 시간을 위해 내가 열심히 퇴근핑으로 버텼지!
퇴근 후의 시간은 주로 음미체(음악, 미술, 체육)를 중심으로 좋아하는 영화와 책을 탐님하고, 요가 수련을 하고, 분위기 좋은 카페나 LP 바에 찾아가는 등... 고정된 루틴에 약간의 변주를 더한다. 이번 생에 나를 키우는데 진심이라 조금의 흥미가 생겨도 일단 해보는 편이다. 거의 나는솔로 22기 영숙 뺨치게 사교육을 많이 시키는 중이랄까. 얼리버드 티켓을 발견해서 예술의 전당 전시도 사전예매했다. 내가 나의 영재발굴단 부모 같은 존재다. 우리 아이가 뭐에 재능이 있을지 모르니까 일단 지원을 아낌없이..(이런 부모는 자기 자식에게 실망해도 새로운 걸 또 가져온다. 이거도 해볼까)
요즘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것은 김민철 작가님의 오독오독 북클럽, 내가 모임장인 취향모임, 하타 요가 수업, 주 1회 PT, 미술 수업 정도이다. 월 1회 혹은 주 1회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흥미를 갖고 꾸준히 하고 있다. 가끔 끌리는 원데이클래스(민화 그리기, 발레, 피아노)도 해보는데 재능 없음, 현타 옴, 흥미 없음 등의 다양한 이유들로 하루에 그쳤다. 그래도 한번 경험해보니 궁금증은 해소가 됐다.
이렇게 평일 퇴근 후의 삶을 알차게 보내게 된 계기는 김신지 작가님의 책 '평일도 인생이니까'를 읽고 난 이후다. 예전에는 직장인의 삶에 젖어들어 평일은 그저 그렇게 보내고, 주말만 빨리 오기를 바랐다. 그런데 이렇게 살다 보니 일주일 중에 정작 나를 위한 시간은 주말 이틀뿐. 긴 일주일 중에 주말만 기다리면서 사는 건 생각만 해도 너무 우울했다. 짧은 인생 주도적으로 재밌게 살아야겠다는 마음의 일으킴도 있었다.
열심히 살겠다는 말이 아니고, 퇴근 후의 일상도 재밌게 살아보기. 그래서 열심히 보다 적당히 즐기면서 찍먹! 느낌으로 다양한 것들을 경험하는 편이다. 잘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에게 평가를 받아야 하는 것도 아니니 도전하는데 머뭇거림이 줄어들었다. 다행히 이렇게 퇴근 후 다양한 것들을 할 수 있는 이유가 체력이 좋아서다. (가장 중요!!) 황선우X김하나 작가의 팟캐스트 여둘톡의 에피소드 중 '여자는 풍채'를 재밌게 들었고 뭐든 하려면 체력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에 깊이 공감해서 운동을 꾸준히 하는 중이다.
운동하는 이유도 가녀린 팔과 날씬한 몸 등 남들의 시선에서 관리하는 것이 아니고, 무거운 짐을 잘 드는 튼튼한 팔과 같이 기능적인 몸을 키워보고 싶기 때문이다. 마흔이 넘어서는 근육 1kg가 1천만 원의 가치를 한다고 하니 근육을 붙여 부자가 되어야겠다. 아무렴 내가 나를 데리고 평생 살아야 하는데 씩씩하고 건강해야지! 몸에 대한 인식이 바뀌자 그동안 컴플렉스였던 튼실한 종아리도 조금은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다리가 튼튼해서 흔들리는 버스에서 무게중심도 잘 잡고, 하루에 2만 보는 거뜬히 걷는다.
나는 열두 시의 신데렐라가 아니라 여섯 시의 퇴근핑~ 회사와 삶의 균형을 유지하면서 내가 좋아하고, 즐길 수 있는 다양한 활동을 경험하는 중이다. 퇴근하고 브런치 글을 적는 이 시간도 오롯이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내가 원하는 글쓰기를 할 수 있어서 소중하다. (회사에서 벌써 25년도 사업계획을 제출하라 해서 머리 쥐어짜 내며 뭐라도 적었는데, 그것에 비하면 퇴근핑의 브런치 글은 술술 써지니 더 좋다! 기쁨의 상대성?)
내가 생각하는 퇴근핑의 장점은 회사 밖에선 다 재밌어! 뭐든 좋아! 하는 궁극의 긍정적임이다. 회사에서는 머리도 아프고 몸도 피곤했는데 회사 밖만 나오면 놀랍게도 컨디션이 좋아지기도 한다. 다들 이런 경험 있죠? 아 이 정도면 회사를 영영 나와야 할까나..? 신기한 회사 밖 마법. 회사 밖에선 글을 쓰는 것도, 책을 읽는 것도 뭐든 다 재밌는 걸 어떡해~ 하지만 이것도 퇴근 후에 주어진 한정된 시간이니까 재밌는 지도!
이 땅의 모든 퇴근핑들이여~
퇴근 후 재미있는 시간 보내시길 바랍니다.
내일은 무려 공휴일 빨간날이에요! 다같이 노라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