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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기회 Oct 19. 2024

불안 데리고 살기

내일에 대한 걱정과 오늘의 유한함

곧 있을 코타키나발루 여행 짐 가방을 싸며 '나 여행을 위해 회사를 다니는 건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스물두 살에 인생에서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고 한 달 정도 유럽여행을 갔었다. 그리고 대학 졸업을 앞두고 2주 정도 동남아 배낭여행을 다녀왔다. 직장인이 된 이후에는 경제적 여유가 생기자 시간만 되면 휴가를 붙여서 해외여행을 다니고 있다. 가까운 일본부터 길게는 미국까지, 짧게는 3박 4일에서 길게는 10박 12일 정도로. 일 년에 세네 번은 해외여행을 떠난다.


많은 사람들이 (특히 직장인이) 해외여행을 좋아하는데 그 이유는 아마도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상을 만난다는 설렘과 업무로부터 탈출했다는 해방감 때문이 아닐까. 나아가 해외여행을 가면 오롯이 지금, 여기의 삶에 집중할 수 있어서 좋다. 여행지에서의 나는 미래에 대한 고민은 잠시 접어두고 현재의 행복에만 집중한다.


여행지에서 눈을 뜨고 잠이 드는 시간까지 내가 원하는 선택들로 가득 채운 하루를 보낼 수 있다. 아침은 뭘 먹을지, 어디로 구경 갈지 고민하고, 길을 걷다가 마음에 드는 카페나 공원을 만나면 그 시간 안에 머무른다. 다른 걱정과 고민은 없다. 여행만이 줄 수 있는 현재성에 자유로움을 느낀다. 일상의 고민과 걱정은 여행지로 떠나는 비행기에서 놓고 내렸다.




여행지에서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 오늘의 유한함을 실감하며 현재 내가 가장 원하는 선택을 한다. 내일의 나 보다 지금 여기에 있는 나의 행복이 중요하다. 지금 여기서 행복할 것. 이와 달리 회사에 다니면서는 오늘의 나 보다 내일의 나, 일 년 뒤의 나, 퇴직 후의 나에 대한 고민과 불안함으로 현재의 삶에 집중하지 못한다. 그냥 오늘의 하루는 버티는 마음으로 보내버리고 주말만을 기다린다.


회사, 직무, 이직에 대한 고민과 불안함이 차오를 때면 기가 막힌 타이밍에 월급이 들어온다. 그러면 잠시 고민은 미뤄두고 불안함에 대해 파고드는 대신에 항공권 사이트를 둘러보며 이번엔 어디로 떠날지 비행기 표만 뒤적거린다. 비행기 티켓팅을 마친 뒤엔 달력에 표시한 여행 날짜만 바라본다. 여행 갈 날짜를 세며 어쩐지 회사에서 버틸 힘이 조금은 생긴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런데 여행은 잠시일 뿐, 여행지에서 돌아오면 나의 일상은 그대로 기다리고 있다. 또 회사엘 가야 한다. 별로 재미없어도 맡은 일은 해내야 한다. 그러면 또 불안한 마음이 고개를 든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뭘까?', '언제까지 이 회사엘 다니지?' 불안한 마음이 더 커진 날에는 퇴근하고 괜히 채용 사이트를 살펴본다. 어디 내 자리 없나..? 이직할 수 있긴 한가? 설마 나 물경력 아냐?!!


불안은 언제나 나를 따라다닌다.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라고 생각하면 더 코끼리, 코끼리, 코끼리, 코끼리만 생각나는 것처럼 불안을 밀어내려 할수록 나에게 더 찰싹 붙어버린다. 그러다 이내 마음을 다시 먹었다. 그래.. 불안을 잘 다스리며 데리고 살아야겠다! 그런 마음으로 브런치에 나의 불안과 일에 대한 사유는 물론 어떻게 살겠다는 다짐을 적어 내려간다. 글쓰기를 하는 시간은 내 생각이 정리되고 나와 마주할 수 있어서 좋다. 또 한 편의 완성된 글을 보면 마음의 파도가 잔잔해지는 기분이 든다.




즐겨보는 유튜버 유랑쓰의 현주님은(최근 '유랑하는 자본주의'라는 책을 쓰심) 초등학교 교사였다가 퇴사하시고 지금은 세계여행 유튜버이다. '초등학교 교사 그만두고 유튜버 하니까 불안하지 않냐'는 구독자의 질문에 오히려 교사할 때가 더 불안했다며, 매일 출근하며 어떻게 이 일을 평생 하지?라는 생각에 괴로웠다고 했다. 덧붙여 초등학교 교사였을 때 보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는 지금이 덜 불안하다고.


현주님의 말이 엄청 인상 깊었는데 나도 당연히 안정적인 교사 보다 유튜버인 현재가 더 불안할 거라는 편견이 있었기 때문이다. 역시 불안은 생각하기 나름이고, 삶의 방향에 따라서 느끼는 게 다르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또 불안에 대해선 '더 불안'과 '덜 불안'만 있을 뿐이고, '불안 없음'의 상태는 아주 잠시이거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연히 누구나 불안하고, 시험기간에 시험을 망칠까 봐 불안해서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처럼 불안은 때론 좋은 동기부여가 된다. 그래서 요즘엔 불안하면 불안한 채로 있되, 오늘의 나의 행복을 미루지 않고 즐기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한다. 내가 지금 불안한 이유는 주로 미래의 나 때문이다. 미래의 내가 지금의 나를 보면 후회할까 봐. 더 도전하지 않아서, 더 적극적으로 하고 싶은 일을 찾지 않아서, 현재에 안주해 버려서.




미래의 나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문학평론가 이동진 작가님 말씀처럼 그냥 하루하루 성실히, 인생은 되는대로 살면 안 될까? (미래의 나야 안 되겠니) 토요일인 오늘은 아침에 일어나 아점을 먹고, 점심에 카페에서 혼자 책을 읽다가, 오후에 친구를 만나서 요새 어떻게 사는지 일상 이야기를 나누고, 집에 와서 저녁을 차려먹고, 집 근처 개천을 산책했다. 별 거 없는 이 시간이 소중하고 행복했다. 발전적이지는 않았지만 무탈하게 안온한 시간이었다. 그냥 이렇게 오늘 하루치의 인생을 잘 살면 안 되려나..


내 마음의 힘을 갖기 위해서 불안한 마음에 말을 계속 걸어보는 노력을 하려고 한다. 내가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나는 무엇을 할 때 즐거움을 느끼는지, 내가 원하는 삶의 방향에 대해 고민해야겠다. 또, 그런 삶의 모양에 더 가까워지기 위해서 현재의 나는 무엇을 하면 좋을지도 함께 알아보려고 한다.


현재에 머무를 것. 지금의 내가 좋아하는 것에 시선을 둘 것. 여행지에서 뿐만 아니라 하루하루 나의 삶에서도 ‘지금의 나에게 의미 있는 시간’에 대해 관심 가져야겠다. 내일은 일요일이니까 늘어지게 늦잠을 자야지.


돌돌 굴러가라 내 인생아.


집 근처의 산책길. 가을은 특히 이 시간을 온전히 즐기기에 더 없이 좋은 계절이다. 서늘한 공기에 걷기만 해도 행복해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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