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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용머니 May 23. 2021

세기말, 부산, 한국선물거래소에서는......

한국선물거래소(KOFEX)는 법적으로 대한민국 모든 금융자산에 대한 파생상품을 유일하게 취급하는 공식거래소로서 1999년 4월 미국달러선물, 미국달러옵션, CD금리선물, 금선물과 함께 출범했다.


엉? 주가지수선물은? 


주가지수선물은 (구)증권거래소에서 거래되고 있었다. 어른들의 사정으로 법과 현실의 괴리가 일어난 것이다. 그래서, 이관을 해야되니 마니 말들이 있었고, 결과는


두 거래소가 합병함으로써 깔끔하게 해결됐지만, 그건 한 참 뒤의 일이고,



1999년!!! 노스트라다무스가 예언한 세계멸망은 아깝게도 불발했고, Y2K로 전세계가 멈추는 일도 없었지만, 참으로 많은 일들이 있었다.


부산은 비록 준우승에 거쳤지만 매경기 박진감나는 승부로 야구도시임을 다시금 느끼게 했던 롯데자이언츠의 분전으로 "부산갈매기" 노래와 함께 분위기가 한층 나아졌고.. 


참고로, 우승은 한화 이글스가 했다. 세기말 맞네!!!!



IMF 휴유증과는 관계없이, 벤처열풍과 함께 IT 기업들의 주가는 그야말로 연일 떡상을 하며 그 이후 역사에 기록된 IT버블이 본격화된 해였지만, 


이러한 분위기와는 상관없이 선물거래소에서 필자는 추석연휴까지 반납하며, 국채선물 상장 업무를 했다.  뭐, 중요한 일들은 형님들이 다 하셨지만, 다들 이미 시장바닥에서 구르시던 경력직 베테랑들이시라..


필자도 겨우 수습딱지 뗀 일개 사원이었지만, 노~~오력과 근성으로 300페이지가 넘는 보고서의 대부분 양을 차지하는 :) 해외사례 부분도 작성했고, 특기를 살려 증거금률 계산, 이론가 프로그램 코딩 등으로 기여를 했다. 


9월말 국채선물이 처음으로 상장되던 날에는 뿌듯함에 눈물도 찔끔 났던 거 같다. 아님 이제 땡땡이 치고 광안리나 가야지라는 맘이었나? 뭐, 기억은 항상 아름답게 왜곡되기도 하니까..


가끔 지금도 채권매니저들이 국채선물 가격이 어쩌고 저쩌고 하면, "어 저거 내가 만든거야, 라떼는 말이야~~" 라며 괜히 잘난 척 해서 빈축을 사긴 한다 :)



그 해 말에는 Y2K 비상대책 관련으로 "수작업 체결 훈련" 등 이상한 거 참 많이 했던 거 같다. C++로 최근에 만들어진 프로그램이라 연도 인식 문제랑 전혀 관계 없었지만,


덕분에 실제 매매체결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완전히 손으로 철저히 익힐 수 있었다.


뭐, 범정부적으로 실시하는 거니, 까라면 까야지. 당연하지만 아무런 문제 없었고, op room(오퍼레이션 룸)에서 2000년을 맞이한 사람들은 고스톱 치면서 특별야근 수당을 받아갔다.


뱀꼬리로 그 때 21세기는 2001년부터이니, 1999년은 세기말이 아니다 뭐다 이런 말도 있었는데, 뭐 그런게 중요한가? 1999라는 숫자가 의미가 있었지. 


글구, 개인적으로 Y2K 문제도 헤프닝이 아니라, 오히려 그렇게 크게 부풀려졌기 때문에 다들 지나칠 정도로 대비를 잘해서 문제가 없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이 든다. 


지나치게 대비하는 것이 사고 한방으로 다 날아가는 위험보다는 비용이 싸다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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