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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용머니 May 21. 2021

한국선물거래소(KOFEX), 첫 직장의 추억

처음 겪는 일들은 사람의 뇌리속에 깊이 남는다. 첫 입학, 첫 사랑, 첫 만남, 첫 결혼(?) 등등등. 첫 직장도 예외는 아니다. 특히 필자의 경우에는 아주 특이한 시점에 특이한(?) 첫 직장을 잡았기 때문에 그 기억이 생생하다.


1997년이 다 가는 시점에 소위 IMF외환위기가 터졌다. 그 다음 해 필자는 취직을 준비했다. 그 이전 선배들은 여기저기 서로 오라고 하면서 편하게 들어갔다는 이야기만 들었는데, 가을이 지나기까지 한 군데도 뽑는데가 없었다. 굉장히 당황스러웠다!!!!


가을이 지나가자 정부의 지원하에 여기저기서 인턴을 뽑기 시작했다. 어라, 무슨 의사도 아니고 인턴이라니? 그것도 3개월간 정부지원금 보태서 쥐꼬리만큼 주고 정규직으로의 전환은 확실하지 않은 그런... 


지금은 너무나 보편화된, 그 당시는 상상할 수 없었던 새로운 취업 형태였다.


Y2K 관련 코딩 노가다 해외근무 계약직, 몰래 몇몇 대학에만 선배보내서 지원서 전달하는 몰채(몰래채용) 등이 있었고, 졸업하면 꼭 오라던 모 종금사 다니던 선배는 회사가 망했다고 유학간다고 도서관에 와 계시고, 뭐 암튼 뭔가 영화 같은 일들이 벌어졌다.


그리고, 겨울이 다가오자 한국선물거래소준비단이라는 곳이 공채를 했다. 대부분 경력직 우선이고, 신입은 정부 압박으로 아주 일부 뽑는 거였다.


공기업이고, 금융권... 당연히 떨어질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나름 열심히 준비를 했고...


아주 여유있게 합격했다. 이유는 지방대학 가점(KAIST는 지방대학이다!!), 출신지역 가점(부산,경남 연고자 우대)을 동시에 받았기 때문이다.


아 거기다, 완전 전산거래소를 지향했기 때문에 면접에서 공대출신 어필한게 나름 가점을 받은 모양이기도 했다. Y2K 관련 답을 잘해서 그런가? 그 당시 Y2K가 화두라.


처음에는 여의도로 출근해서 기본적인 교육을 받고, 얼마 후 부산 범내골(서면 근처), 상공회의소 건물로 내려갔다. 


몇몇 어르신들은 대통령께서 부산에 준 "선물(Present)" 거래소라고 자조했지만, 부산 사람들은 정말 우리한테 잘 대해줬다. 무이자 전세자금 대출도 지원해주고, 제일 좋은 층도 배정해 주고...


비록 서울에서는 증권거래소 아류작 정도로 취급받았지만, 서울공화국이라는 별명에 맞게 대부분의 기관이 서울에 있는 우리나라 현실에서 지방에서 이런 공공기관 하나는 아무리 작아도 취급이 남달랐다. 


개장식에는 대통령도 오시고, 이름만 대면 알만한 유명한 정치인들이 다 참석하셨다. 


직원수가 얼마 안 되고, 신입나부랭이라 개장행사에 동원됐는데, 기억에 남는 건 


포스코 초대 회장이셨던 철의 사나이 고 박태준 전 총리님의 반짝이던 머리(아, 그거 완전히 카메라 플래쉬 때문이었다..아직 그 때 사진이 있다. 필자가 놀라서 고개 푹 숙이고 눈 감은 이상한 사진)


그리고, 보안관계로 몇 개 층을 막아 놓은 계단에서 헤매시던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잘 안내해 드리긴 했는데, 그 때 사인이나 사진을 같이 못 찍어서 아쉬웠다. 뭐 정치적인 것을 떠나, 그 당시에는 우리 또래에겐 가히 아이돌 스타급이라 인기가 굉장히 많았다.


그 당시 지역민심이 굉장히 안 좋아서(삼성자동차, 쌍끌이, 글구 망할놈의 지역감정 등등), 보안검색이 철저했고, 신분이 확실한 얼마 안되는 내부 직원들을 총동원하는 바람에 역사속에 남은 인물들을 면전에서 많이 뵐 수 있었다.


오래됐지만, 아무래도 첫 직장, 첫 큰 이벤트라 보니 하나하나 기억이 난다. 개장 전 테스트 기간에 하두 에러가 많이 나서 제발 무사히 거래가 되라고, 고사를 지낸 기억도 난다. 뭔가 좀 아이러니하다. 전산시스템과 돼지머리라니..


전산시스템은 OM(Optionsmäklarna)이라는 스웨덴 회사 제품을 사용했다. 덕분에 필자도 스웨덴에서 4월의 눈보라도 맞아봤다. 


암튼 지금은 다들 아시다시피 증권거래소와 합병했고, 합병 이후 본사는 부산 문현동 새 건물로 갔다. 


아 말했잖아. 지방사람들한테 공공기관 하나는 무지 소중하다니까!!!! 지방 이전을 위해 삭발까지 감행도 한다. 배부른 서울이랑은 틀리다.


아 참고로 암호화폐거래소는 증권거래소나 선물거래소의 "거래소"가 아니다. 거래소는 철저하게 감독기관의 허가와 감시를 받는다. 또, 회원으로 증권사나 선물사를 두고, 이들을 통해서 거래소에 접근한다. 


암호화폐 거래소는 거래소라기보다는 환전상에 가깝다. 암호화폐라는 가상자산을 현금으로 바꾸어주는. 음.. 달러아줌마로 비유하면 정확할 것이다. 왜냐하면 정부의 감시, 감독도 안 받고 허가(인가) 없이 그냥 장사하기 때문이다. 충분히 사고 터질 가능성이 높고, 사고 터져도 보호가 안 될 수 있다.


아무튼 첫 직장의 추억. 불현듯 그 시절 같이 일하던 분들이 보고 싶다. 아무리 힘들어도 다 지나면 추억이 되고, 그리움이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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