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
일이 있어서 대학로에 갔더랬다. 오방이도 함께 갔다. 5시 약속이었지만, 한 분과는 일찍 만나 점심도 먹고 담소도 나누었다. 식사 후 약속시간 전까지 각자의 일을 하기로 하고는 오방이를 옆에 두고 책을 읽었다. 날씨도 좋은데 실내에서 책만 읽기가 아까워 마로니에 공원으로 산책을 간다고 하니 지인도 따라 나서 주셨다. 마침 그분의 조카도 뭘 전해주러 왔다 같이 공원으로 향했다.
평일 오후라서 그런지 생각보다 사람이 많지는 않았다. 벤치에 자리도 많아 적당한 곳으로 가서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볕이 너무 강했다. 그늘이 있는 곳으로 자리를 옮기자며 모두 일어났다. 공원 한쪽 귀퉁이에 아이들이 놀 수 있는 기구들을 새로이 놓은 곳이 있었고 우리는 그곳을 가로질러 가는 중이었는데, 어떤 소녀가 오방이에게 관심을 보이더라. 우리가 그늘 자리를 찾아 앉은 후에도 근처에서 서성이는 것이다. 옆에 봐주는 엄마도 함께 있었다. 나 혼자라면 그냥 있었겠지만, 친화력이 남다른 지인이 소녀에게 강아지 좋아하냐고 말도 걸고 좋아하면 이리 와도 괜찮다고 하니 그제야 천천히 오더라. 그때부터 소녀의 이름과 오방이 이름을 교환하는 통성명을 거쳐, 강아지를 좋아한다는 말에 간식도 줘보라고 해주고 리드 줄도 잡아보라도 해주는 등 할 수 있는 건 다 해줬다. 강아지 좋아하냐고 물으니 이사하면 아빠가 키운다고 했는데... 라며 얼버무리는 것으로 보아 꿈이 좌절된 모양이었다. 그래서 오방이한테 더 큰 관심을 준 것 같았다.
오방이와 함께 넷이 갔는데, 졸지에 여섯이 되어 방역수칙에 어긋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게 될 정도였다. 한참을 그렇게 놀다가 가봐야 할 것 같아 일어설 준비를 하자 갑자기 소녀가 벤치에 앉은 채로 미동도 없는 것이다. 고개를 푹 숙이고. 헤어지기 아쉬워서 그런 거라 생각한 지인은 좀 더 있다 가자고 했지만 소녀는 여전히 망부석이다. 엄마가 다가와 이분들 가야 한다고 만나면 헤어져야 한다고 말했지 하며 부드럽게 달래주더라. 이때까지도 괜찮았는데, 우리가 그럼 더 있자고 하니 예감이 확실해졌는지 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했다. 아이처럼 엉엉 울지도 않고 뭔가 정제된 눈물인 것 마냥 한 방울씩 떨어지는 것이다. 이내 엄마가 괜찮다고 들어 어깨에 올리고는 고맙다며 자리를 떠났다. 소녀는 이쪽을 보지도 않고 고개를 숙이고 아무 말 없이 눈에 눈물만 달고 점점 멀어질 뿐이었다.
일단은 고마웠다. 처음 본 강아지인데도 불구하고 헤어지기 아쉬워 이렇게까지 눈물을 흘려주는 친구가 있다는 사실에 고마웠다. 그리고 그 마음이 시간이 흘러도 변치 않았으면 좋겠다. 이별에 무뎌지지 않고 계속해서 울었으면 좋겠다. 만나면 헤어지는 법이다. 헤어질 때 아픈 건 당연하지 않나. 그래야 만남이 소중한 지 알게 된다. 이별이 아프다고 다시 시작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이들이 있다. 사랑 말고 다양한 즐거움이 있겠지만, 그것만큼 각별한 감정/경험 또한 없을 것이다. 끝이 무서워 포기한다면, 사랑 말고도 다른 많은 것도 시작하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죽음이 끝인 삶도 마찬가지다.
소녀야,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