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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중립국 Feb 03. 2022

오늘의 서술, #49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정치


 대선이 한 달 남짓 남았다. 투표권을 갖게 된 2002년을 시작으로 총 네 번의 대통령 선거를 치렀다. 돌이켜보면 나이에 비례해 정치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졌다. 20대엔 정치가 여의도의 것이라 여겼다면, 40에 들어선 지금은 정치가 곧 삶이라고 느낀다. 다섯 번째인 이번 대선은 지난 어떤 선거보다 더 큰 관심(기대를)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다.


 각 당의 대선 후보들이 정해지고 난 후 미디어를 통해 그들의 면면을 꾸준하게 찾아보고 있다. 같은 포맷으로 진행하는 토론회나 대담, 공약의 내용과 그것을 발표하고 대응하는 모습을 지난해 말부터 쭈욱 지켜봤다. 그 결과 차이점을 발견했다. 아날로그와 디지털로 비유할 수 있는 그들의 태도이다. 


 이재명의 토론 등을 보면 저항이라는 말을 많이 쓴다. 기본 소득이나 기득권 혁파나 부조리, 불합리 개선을 위한 이런저런 이슈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것을 실행함에 있어 반발이나 저항이 필연적일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저항이나 반발이라는 말은 정치적 목적을 관철시키기 위해 동원한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 의사 결정 과정에서 발생할 수 밖에 없는 이견을 명시적으로 표현한다. 그래서 어떤 공약을 실행함에 있어 모두가 동의해서 깔끔하게 ‘한다’로 끝날 수도 있지만, 만일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한다/안한다의 사이 어느 지점을 찾을거라는 인상을 준다. ‘설득할 수 있다’라는 말로 끝맺음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는 실행할 수 있다는 자신감의 표현이면서도 민주주의적인 의사결정 과정에 대한 이해와 존중이 내포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잡음이 대부분인 아날로그 라디오에서 선명한 목소리를 위해 튜너를 고심스레 돌리는 모습이 바로 이재명의 아날로그 정치라고 생각한다. 기본소득을 한다고 했다가 보류한 상황, 토지이익배당제, 양도세 한시적 완화 등 상대편에서는 말을 바꾼다라고 논평을 하겠지만, 아날로그의 논리에서 보면 적절한 주파수를 맞추기 위해 이리저리 조정하는 과정이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반면, 윤석열의 정치는 디지털의 문법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의 공약이나 이슈의 중심에 있는 단어는 폐지(멸)다. 0과 1, 이진수의 조합으로 말할 수 있는 디지털 구조는 디테일하지 않다면 매우 투박할 수 밖에 없다. 좀 더 가서 디테일이 없다면 투박하다 못해 이분법적일 수 있지 않을까? 어떤 문제에 대해 어떻게 하면 좋을까가 아니라 폐지라는 화두를 던지면 답이 달라진다. 이렇게 저렇게 하면 좋겠다가 아니라 찬성이나 반대만 말하게 되는 작고 편협한 선택지를 들 수밖에 없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좋은 질문을 해야하는 것인데 말이다. 윤석열의 선언적인 공약발표와 그 후 대처를 보면 답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0과 1의 놀이를 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재밌는 놀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참여해서 즐겁게 노는 것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설득할 의지도 이유도 없이 배제하는 아주 단순한 디지털의 정치. 여기와 저기뿐, 그 사이를 오가다 정말 좋은 것을 발견할 여지가 없는 삭막한 디지털의 문법이 윤석열의 정치가 아닐까 싶다.


 이미 오래 전부터 지지후보를 결정한 상황이어서 이런 인상비평이 편향적일 수밖에 없겠지만 답답한 감이 없지 않아 한번 써본다.


*삼프로 TV를 통해 본 안철수는, 지식은 있을지언정 지도자로는 카리스마가 부족해보였다. 호스트가 몇 번이고 그래서 지도자의 입장에서 어떻게 하실건가요라는 질문에 정면으로 대응하지 못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내 정치성향은 정의당에 가깝지만 심상정과 이재명을 비교하면 오히려 이재명의 뿌리가 더 왼쪽에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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