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수라를 보고
수라갯벌은 새만금에 남은 마지막 갯벌이자 염습지다. '비단에 놓인 수'라는 아름다운 뜻을 담고 있지만, 영화를 보면 그 의미가 현재적이진 않다. 끝까지 남아 아름답기를 바라는 마음에 붙인 이름이 '수라'인 것 같고, 지금은 불교 용어 '수라(아수라:싸움 때문에 막장으로 치달은 사람이나 그런 상황을 묘사)'에 더 가깝다. 세계 최대 방조사업으로 뻘에 바닷물이 들어오지 않자 그 안에서 살던 혹은 거쳐가던 해양생물들과 곁에서 살던 사람들이 생존을 위해 고투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죽음과 탄생, 버팀과 이어감이 드라마틱하게 연결된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 마지막 물막이로 바닷물이 끊긴 지는 오래. 영문도 모른 채 마냥 기다리던 생명들이 비오는 날, 비가 바닷물인 줄 알고 모두 뻘 밖으로 나왔다가 죽어버린다. 몇 장의 사진 뿐이었지만, 수라를 오랫동안 지켜온 활동가의 입을 통해 전해듣는 그들의 간절하고 처절했던 마음이 아직도 선하고 저릿하다.
후반부에는 사라진 줄만 알았던 흰발농게가 등장한다. 용케도 버텼다. 해양생물 뿐만 아니다. 마지막 남은 수라갯벌을 살리기 위해 시민생태조사단은 포기하지 않고 조사하고 기록한다. 그 곳에 끝나지 않은 삶이 계속되고 있다고. 다윗의 싸움을 아주 끈질기게 세대를 넘겨 이어가는 사람들이 있다고. 버틴 흰발농게, 애써 찾아낸 쇠검은머리쑥새는 이제 보호종으로 사업을 중단시킬 수도 있는 무게추의 역할을 하게 됐다.
버티고, 이어나가는 삶의 끝에 절망만 오는 것이 아니다. 간척사업 중단을 위해 65일간 290km를 삼보일배했던 문규현 신부는 그 당시에 절망감이 어마어마했을거다. 15년 뒤 해수유통이 되고, 사라진 줄 알았던 생명들이 발견되고, 여전히 그 곳을 돌보려는 시민생태조사단의 활동이 가능했던 이유 중 하나가 문규현 신부의 삼보일배일테다. 끝은 각자가 그 시기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달라질거다. 문규현 신부의 싸움, 활동가 오동필의 싸움, 흰발농게의 싸움, 감독 황윤의 싸움은 아직 계속되고 있다. 그리고 그 싸움을 이어나가려는 사람들도 있다. 끝나지 않았다. 포기하지 말자 나의 싸움도, 당신의 삶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