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요리사 에드워드 리/이균
나는 흙수저의 혀를 가졌다. 많은 음식을 맛보지도 못했고, 그래서 그런지 미식가도 아니다. 가끔, 한 끼를 해결하는 게 고되기도 하다. 음식을 준비하거나 식당을 찾는 시간을 절약했다면 어땠을까. 포만감을 주는 알약이 나왔다면 제일 먼저 달려갔을 거다. 그렇다고 혀가 마비되진 않았다. 한 끼를 해결해야 하는 숙제를 할 뿐 그 이상을 바라지 않았다. 이런 내가 흑백요리사를 봤다. 심사위원이 아닌 이상 그들의 요리를 맛볼 수 없다. 그렇다면 무엇을 기준으로 이 프로그램을 볼 것인가.
한 번은 을지로 어딘가의 식당 앞에서 웨이팅을 하고 있었다. 그 식당의 주방 직원이 밖에 나와 담배를 피우는 걸 보게 되었다. 식당 바로 옆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곳에서. 볼 일을 마치고 유유히 다시 들어가더라. 그는 프로답게 손을 깨끗하게 씻고 요리를 할 테지만, 아마추어인 나는 그 순간 기다리던 마음이 식어버렸다. 그래서 그날 저녁은 다른 곳에서 먹었다.
맛을 볼 수 없다면, 요리사의 태도와 언행(캐릭터), 이야기(캐릭터의 서사)만이 남는다. 그럴듯해 보이는 음식이라 해도, 그 요리사의 태도와 품격이 내게 실망감을 준다면 그 음식을 먹고 싶지 않다. 그래서 나는 자연스레 출연자들이 요리를 대하는 태도, 말투, 그리고 그들이 만들어내는 서사를 더 눈여겨보게 되었다. 제작진의 의도이기도 할 거다. 그중 에드워드 리는 실망감을 준 적이 없다. 그의 요리는 자신의 정체성과 철학을 담고 있었고, 태도와 말속에는 언제나 상대에 대한 존중과 품격, 우아함이 배어 있었다.
마지막까지 승부를 펼쳤던 우승자 나폴리 맛피아는 스마트하고 멋있는 스타일의 요리사였다. 그리고 자신감 넘치는 말과 행동이 당차 보였다. 실력으로 증명해 냈기에 자부심을 가질만했다. 하지만 간혹 그의 말속에는 상대에 대한 존중이 부족해 보였고, 얼핏 얼핏 보이는 승부욕은 그의 음식에 대한 궁금증을 떨어뜨렸다. 그는 이기려는 요리사였다.
반면, 에드워드 리는 지지 않으려는 의지로 마지막까지 온 힘을 다했다. 그는 이기려는 마음보다 자신을 지키려는 태도로 요리했다. 미세한 차이지만 꽤 크다. 나폴리 맛피아는 상대가 있어야 완성되는 서사의 캐릭터고, 에드워드 리는 상대가 없어도 충분했다. 자신과 싸움을 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우아함과 품격은 연륜의 문제이기도 하겠지만 세팅 값이 다른 데서부터 생겨난 차이였다. 그리고 자신을 지킨다는 것은 승부의 문제를 넘어선다. 재미교포이기 때문에 두 개의 이름을 가진 정체성을 요리를 통해 인정하고 드러내는 것도 포함한다. 이균이라는 이름으로 미국에 건너가 30년 경력의 요리사 에드워드 리가 되기까지의 과정은 알 수 없지만, 마치 극적이고 시적인 스토리텔링을 보는 듯했다.
요리, 즉 음식을 만드는 것은 사랑을 나누는 행위다. 그의 마지막 작품은 먹이고 먹는 관계 속에 사랑을 포착해 냈다. 더 먹이고 싶은 마음에서 다 먹지 못한 마음을 빼면 떡볶이 3개다. 음식 쓰레기일 뿐이지만, 그의 계산법으로는 그것이 사랑이다. 재료 또한 한국인의 주식인 쌀이다. 단순한 한식의 재해석이 아니라 고국에서 요리의 본질을 이야기했던 에드워드 리, 이균의 “나머지 떡볶이 디저트”는 이 쇼의 마스터피스가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