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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mugae일공오 May 12. 2022

자주 하는 일 : 물 주기

나의 첫 집은 해가 잘 들지 않았다. 난 그 집 벽을 온통 회색으로 칠해놓고, 메탈릭한 제품들만 사 모았으며, 여기저기 드라이플라워들을 가져다 놓았다. 적당히 어둡고, 생명이 있는 것 같으면서도 없고, 지나치게 화려하지 않고, 그런 분위기가 주는 음울함을 즐겼던 것 같다.


나의 두 번째 집(현재 살고 있는)은 채광이 좋은 집이다.

음울하게 생명력이 없는 집에 살다 갑자기 햇볕을 쬐니 뇌구조의 변형이 일어났나. 나는 온통 집을 아이보리로 꾸미고 나무로 된 제품들로만 집을 채우기 시작했다. 그 속에 있는 드라이플라워들은 어딘지 모르게 죽은 시체들 같았다.  


'해도  드는데, 식물이나 하나 둬볼까.'하고 나누스 아스파라거스를 들였다. 나누스는  이파리만큼이나 아주 섬세한 식물이었다. 항상 분무를 해주어야 했고, 흙이 바짝 마르면  됐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나는 살아있는 것을 대하는  익숙하지 않았고, 철저하게 자료조사를  만큼 부지런한 인간도 아니었다. 나누스는 얼마 안가 시들고 말았다. 나누스는 말을  수도 움직일 수도 없고 사소한 감정 표현 하나   없는 그저 식물일 었는데,  손으로 그것을 쓰레기통에 묻을 때의 기분을 아직도 지울 수가 없다. 아침에 눈을  햇살을 맞을 때마다 나누스의 싱그러운 이파리의 흔들림이 생각났다.  뒤로 키우기 쉽다는 식물을 2~3가지  들이고,   공부하고   신경 썼다.


그로부터 2년, 우리 집에는 현재 40개가 넘는 화분이 있다.


식물마다 흙에서, 공중에서 물을 흡수하는 속도는 제각각이다. 심지어 이 속도는 계절에 따라, 하루하루 날씨에 따라 또 달라진다. 하릴없이 나는 일일이  40개가 넘는 화분의 흙 상태를 체크하며 물시중을 든다. 흙에 물이 충분히 그리고 고루고루 흡수되어야 하기 때문에 물뿌리개로 천천히 가장자리부터 물을 부어준다. 물을 주는 김에 이파리 상태도 체크하고, 혹시나 새순이 돋았나 자세히 들여다 보기도 하고, 수형은 제대로 잡혀 있는지, 아니라면 화분 위치도 이리저리 바꿔주고 하다 보면 1시간은 훌쩍 지나있다.


때때로 화장실로 식물들을 데려가 물샤워를 시켜주기도 한다. 샤워기 물의 세기는 너무 세지 않게, 온도는 너무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게, 마치 내가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맞는 식물이라면 이 정도가 적당할까? 고민하며. 잎 윗면뿐 아니라 아랫면까지 혹시나 무언가 잎의 호흡을 방해하는 먼지가 조금이라도 남아있을까 천천히 물을 뿌려준다. 식물들은 내가 이렇게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을 알까? 근데 아는 것 같아. 끊임없이 새순을 내주는 것 보면.


오늘도 집에 돌아가면 흙의 상태를 체크하고 물이 필요한 식물이 있다면 천천히 물을 줘야겠다. 그 시간은 나에게 물을 주는 시간과도 같다. 그 시간들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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