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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펠 Sep 19. 2023

버정에서 울게 되는 날에 나는 하던 일을 멈춘다

베를린 외노자* 시절. 해도 안 뜬 새벽 6시 퇴근길, 버스 정류장에 앉아 밀가루 묻은 손가락을 뜯으며 소리 내 엉엉 울었다. 새벽 공기만큼 차가운 독일인들이 나를 이상하게 봤지만.


다음 날 남들이 다 퇴근하는 시간에 느지막이 일어난 나는 구글에 독일어로 사직서를 검색하고, 나이 스물에 인생 첫 사직서를 썼다.


*외국인 노동자


그런데 얼마 전, 서울에 사는 나는 버정에서도 울고 체육관에서도 울고 도서관에서도 울었다. 하던 일을 멈춰야 한다.


신체적, 정신적 고통으로 만족감을 충족하는 마조히스트. 나는 나를 굴리고 착취하면서 안정감을 충족한다. 매일 힘들다고 징징대면서도 끝없이 일을 벌이니 마조히스트가 맞다.


이것저것 잘하면서 부지런히 사는 삶을 요즘 말로 ‘갓생’이라 하는데, 말이 좋아 God생이지, 그냥 개고생 하는 자기 착취다. 그러니까, 주변에서 갓생인으로 인정받는 나는 사실 신처럼 사는 게 아니라 노예처럼 산다고 해야 맞다. 나는 늘 나와의 착취 관계에 있었다. 대학 4년 내내.


저학년 때는 놀자고 불러내는 동기들에게 생리통을 핑계로 대고 밤새 공부만 했다. 스스로를 착취하지 않는 시간에는 뒤쳐지고 있다는 불안감을 느끼면서, 그리고 이 나라에서는 이렇게 살 수밖에 없다고 합리화하면서 매일매일 채찍질을 했다.



웃긴 게, 누군가 나처럼 열심히 아등바등 사는 걸 보면 “저런 애들 때문에 다들 더 못 쉬고 자꾸 더 열심히 사는 거 아니냐 “ 하면서 말 같지도 않은 책임전가를 시도한다. 내가 멈추면 되는데 그건 또 싫은 거지, 나는 잘하고 싶으니까.


이 끝도 없는 무한경쟁주의와 능력주의가 사라지기를 바라면서 정작 나는 누구보다 치열하게 경쟁한다. 그 결과로 내 능력을 증명하고 싶어서 빨간 눈으로 이를 악물고.


5년 전, 남들 다 하는 대학 입시도 버리고 무작정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독일로 날아가던 그 용기는 다 어디로 갔을까. 남들이 다 하는 건 하기 싫다고 하던 그 깡은 어디로 갔을까. 이젠 깡도 없고 용기도 없는데 채찍질할 힘도 다 떨어져서 자주 울었다.




그럼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할까. (쉽지 않겠지만) 일단은 그동안 내 채찍이 되어주었던 남들의 칭찬과 인정에서 고개를 돌리는 것부터 해야 한다. 대학에 늦게 들어갔으니 그만큼 더 잘 해내야 된다는 부담감이 있었다. 내가 못나서 늦은 게 아니라는 걸 증명해 보이고 싶었는데 그놈의 증명 때문에 4년 내내 얼마나 울었는지 모르겠다. 남들이 어떻게 보든가 말든가 나는 일단 내 행복할 궁리부터 해야 한다. 그래, 그만 질질 짤 궁리부터.


다음으로 급한 일은 (이것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닌데) 엄마아빠의 자랑이 되는 것을 과감히 포기하는 일이다. ‘엄마아빠의 자랑스러운 큰딸이 되는 것’을 내 삶의 목표로 뒀다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나는 늘 부모님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과하게 애썼다. 엄마아빠는 “네가 행복하게 사는 게 최고의 효도”라고 하지만 나는 걱정 없이 즐겁고 행복할 때 심지어 죄책감 같은 걸 느끼기도 했다. 반대로  힘들고 지칠 때는 그제야 내가 받은 사랑과 믿음에 보답하고 있다는 (또 말 같지도 않은) 착각을 하면서 뿌듯함을 느꼈다.


아무튼 나는 이제 채찍을 내려놓고 효녀 노릇을 관두고 착취를 멈추고 갓생을 접고 증명을 미룬다.


시원해진 9월의 저녁을 즐기고, 9학점의 여유도 좀 느끼면서, 새로 산 매트리스 위에서 편한 잠도 자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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