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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이세 Apr 24. 2024

실패를 해학적으로 받아들일 용기

실패에 매몰되지 말 것, 낙관적일 것

어릴 때는 아주 작은 실수에 의외로 관대했다. 아주아주 어린 시절에는 말이다. 


하지만, 조금 더 자란 후엔 완벽한 인간이 되고 싶다는 환상에 빠져 아주 작은 실수에도 나를 질책했다. 그리고 지금은, 여전히 실수 하나에 연연하는 나에게 '그거 별거 아니야'라고 말해주는 사람들이 있어 실패를 조금은 가볍게 받아들이는 방법을 배워나가고 있다.


실패 또는 실수를 무겁게 받아들일수록 내가 이고 있는 삶의 무게도 무거워진다. 하지만 우리 인생 앞에 놓인 문제들은 의외로 가볍게 "생각"하고자 하면 한 없이 가벼워진다. 주변의 시선, 부모님의 질책, 사회적 체면 등, 한 번 의식하면 어쩔 수 없이 신경 쓰이는 것들이 있기 마련이지만 사실 무시하고자 (노력)하면 무시할 수 있는 것들이다. 대신 스스로를 끈끈하게 믿는 힘이 필요하다. 


나는 내가 스스로 실패를 무던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다. 


내 경우에는 사람들에게 우스워 보일까봐였다. 최근 일화를 이야기하자면, 나는 몰래 유튜브 채널을 운영 중인데 -이미 그간 많은 실패를 겪고 포기하기 일쑤였으나- 이번에는 왜인지 느낌이 좋았고, 유튜브의 알고리즘이 바뀐 덕에 많은 사람들에게 노출되어 내 기준으로는 꽤 많은 조회 수를 얻었다. 


그러나 욕심이 많아지면 일을 그르친다고. 채널을 본격적으로 키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다른 비슷한 주제의 영상들을 보았는데, 내 영상이 너무 재미없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이것도 조금 따라 하고, 저것도 조금 따라 하다 보니 내 채널은 점점 본래의 색을 잃어갔다. 게다가 처음 지었던 채널명이 갑자기 조금 부끄러워져서 내친김에 채널명도 바꿔버리는 만행을 저질렀다. 게다가 타이밍 좋게 원래 올리던 주제와 조금 다른 주제를 올렸고, 영상 업로드 시간도 바꾸었다. 


그 결과가 어땠을 것 같은가.




예상했다시피 가파른 무관심의 길을 걷게 되었다. 


그 데이터를 눈으로 접하니 정말 절망스러웠다. 편집이 쉬워 보여도 영상 1분을 편집하는데 30분이 걸릴 때도 있었다. 그렇게 내 퇴근시간을 거의 할애하며 만들곤 했는데, 그게 처참히 무관심에 묻히는 순간을 실시간으로 볼 때의 기분이란 정말이지 비참했다. 심지어 어떤 구독자가 '왜 조회수가 갑자기 이렇게 되었냐'며 걱정하는 댓글을 남겨주기도 했다. 나는 이번 실패에 신경 쓰지 않는 척, 괜찮은 척 댓글을 달았지만 사실 속은 꽤나 쓰렸다.


그 이후, 영상의 조회수가 얼마나 늘었는지 시도 때도 없이 확인하며 집착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런 내 모습이 낯설어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내가 좋아서 했던 것이고 애초에 크게 기대하지 않았던 것인데, 그새 욕심이 그득그득 붙어 불만을 표출하는 내 모습이 우스웠다. 내가 만든 영상도 꼴 보기 싫어서 그 이후 의식적으로 회피하며 다시 보지도 않았었지만, 다시 정신을 차린 후 내가 만든 영상을 쭉 보니, 역시 내 눈에는 꽤 재밌었다.


그때 속으로 생각했다.


'그래, 내가 좋으면 됐지.'


가볍게 생각하니 불편했던 마음이 놀랍도록 가벼워졌다. 보이지 않는 것들에 스트레스받던 삶이 한결 쾌적해졌다. 부끄러워서 어디에도 못 하다가 이날 이후로는 재밌는 이야기를 하듯이 나의 실패를 말하고 다녔다. '그냥 평소처럼 했으면 잘 됐을 텐데, 괜히 이것저것 변덕 부리고 우유부단하게 굴다가 일을 그르쳤다.'라고 말이다. 


사람들은 그런 나를 절대 비웃지 않았다. 나를 비웃은 것은 오직 나뿐이었다.



실패를 실패로 보느냐, 하나의 에피소드로 보느냐. 그것은 사건을 바라보는 내 관점에 달려있다. 지금도 내 채널의 조회 수는 예전 조회 수를 회복하지 못했다. 하지만, 꾸준히 하다 보면 언젠가는 사람들이 내 영상도 알아봐 줄 날이 있을 거라 낙관적으로 기대하고 살아가기로 했다. 물론 기대가 너무 크면 실망도 크기 마련이지만, 나는 앞으로 내 인생에 있을 무수한 실패들을 가볍게 털어 넘기려고 한다. 가끔은 실패를 해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좋다. 나는 이런 실수까지도 하는 바보 같은 사람이다. 근데 뭐, 내가 이런 사람인 걸 어쩌겠나.


이런 내 모습까지도 사랑하고 싶다. 어여삐 여기고 싶다. 


도전했기 때문에 실패한 것을 보고 네 실패는 도전했기 때문이라며 탓하고 싶지 않다. 

그냥 도전을 한 내 행동에 칭찬이나 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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