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 퇴사러가 프로 퇴사 했다.
오랜만입니다.
저는 날이 슬슬 따뜻해지던 5월 중 어느 날 그토록 꿈에 그리던 퇴사를 했습니다.
크게 바뀐 것은 없습니다.
늦잠을 자도 되고, 두 세시쯤 카페를 나가 여유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가장 큰 변화입니다.
그 여파로 밤낮이 바뀌어 이렇게 새벽에 잠도 못 이루고 글을 쓰게 된다는 부작용이 있지만요. (웃음)
퇴사를 하면 내가 원하는 대로, 나와 내 삶을 통제하며 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게 그리 쉽지는 않더군요.
먼저, 남과의 비교를 하게 되며 제가 열심히 하고자 했던 것에 자신이 없어졌습니다.
사회에 일자리 없이 나오면 맘이 무척 편하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이미 예감은 했습니다. 저는 퇴사 증후군을 앓고 있어 주기적으로 퇴사를 하던 사람이었으니까요. 일자리가 없을 때의 불안함은 이미 겪어 본 지 오래입니다.
일자리를 얻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감보다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찾아서 회사를 떠난 후, 내가 하고 싶은 일에 재능이 없거나 또 적성에 맞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더 컸습니다.
완전히 새로운 분야에 도전을 하는 것이다 보니, 당장 불안한 내 위치보다는 새로운 일을 내가 잘 배우고 적응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더 크게 든 것이죠. 퇴사 후 시간이 많아지니 자연스럽게 제가 하고 싶었던 분야에 대한 여러 글들을 읽어 보고, 그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 그 사람들의 업적들을 찾아보게 되었는데요. 보면 볼수록 자신감이 점점 사라졌습니다. '내가 감히 이 분야에, 게다가 비전공자인데 뛰어들어도 되나?' 싶은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게다가 일찍부터 적성을 찾아 일하는 주변 친구들을 보면, 나는 참 뭘까 싶은 마음도 듭니다. 대학교 때는 모두 같은 위치였던 친구들이었는데, 그 사이에 점점 벌어지는 격차가 눈에 보이기 시작하면서 어떤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불안함에 조급해하는 제 자신을 발견합니다. 이제는 결혼을 한 친구도 꽤 많고, 아이도 있는 친구도 있습니다. 저는 둘 다 못한 데다가 이젠 직장까지 없는 상태라 정말 막막합니다.
어느 분야든 상위에 있는 사람들을 보면 괜히 주눅들기도 합니다. 제가 그만큼의 노력을 한 적도 없으면서 마치 그들이 제 경쟁자인양 배가 아픕니다. 저는 한눈을 많이 팔았고 그들은 꾸준했으니 당연한 결과인데도 말이죠. 정말 도둑놈 심보가 따로 없습니다.
이래저래 생각의 꼬리가 길어지니 그 불안함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한 채 심란한 마음에 일주일은 실컷 술이나 마시고 남자친구와 함께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일주일은 학원 개강 전 알바를 알아보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결과적으로는 퇴사 상태를 그리 길게는 견디지 못하고 또 일을 구하게 되었습니다. (짜잔) 계약직이지만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전 워밍업이라고나 할까요.
아직 미숙하고 속도 좁지만 그래도 새로운 도전에 뛰어드는 30살의 나를 힘껏 응원해주고 싶은 마음입니다.
-24년 6월 퇴사 후, 어느 새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