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해지는 순간

by 허훈

우리는 자주 괜찮은 사람으로 살아가기를 요구받는다. 안부를 묻는 말 앞에서도, 조금 힘들어 보인다는 눈빛 앞에서도 습관처럼 “괜찮아”라고 답한다. 사실은 괜찮지 않은 마음을 숨긴 채, 아무 일 없다는 듯 하루를 이어간다. 그렇게 말하는 것이 예의 같고, 어른스러운 태도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음은 우리가 내뱉는 말보다 훨씬 솔직해서, 괜찮지 않다는 신호를 계속 보내온다.

괜찮지 않다고 말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 그 말 한마디에 나의 약함이 모두 드러나는 것 같고, 누군가에게 짐이 되는 사람처럼 느껴질까 봐 망설여진다. 그래서 우리는 참는 쪽을 택한다. 조금만 더 버티면 나아질 것 같고, 지금 말하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아서. 그러나 그렇게 쌓인 감정은 사라지지 않고, 결국 더 무거운 모습으로 마음에 남는다.

괜찮지 않다는 말은 포기가 아니다. 무너지겠다는 선언도 아니다. 오히려 지금의 나를 살피겠다는 용기에 가깝다. 스스로에게 “나는 지금 힘들다”라고 인정하는 순간, 비로소 마음은 숨을 쉴 수 있다. 그 인정이 있어야만 다음 선택이 가능해진다. 쉬어갈지, 도움을 청할지, 방향을 바꿀지 결정할 수 있다.

우리는 종종 강한 사람이 되려 애쓴다. 아무렇지 않게 견디고, 혼자서도 잘 해내는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진짜 강함은 아픔을 느끼지 않는 데 있지 않다. 아픔을 부정하지 않고 바라볼 수 있는 데 있다. 괜찮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자신의 상태를 정확히 아는 사람이고, 그만큼 자신을 지킬 줄 아는 사람이다.

누군가에게 “괜찮지 않아”라고 말했을 때, 반드시 해결책이 돌아오지 않아도 된다. 위로가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중요한 건 그 말을 통해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일이다. 혹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나 자신에게만큼은 솔직해지는 것. 그것만으로도 마음의 긴장은 조금 풀린다.

괜찮은 척하며 살아온 시간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그 시간 속에서도 우리는 최선을 다해 버텨왔다. 다만 이제는 다른 선택을 해도 된다는 것뿐이다. 언제나 괜찮아야 할 의무는 없다. 인간은 흔들리고, 지치고, 때로는 도움을 필요로 하는 존재다.

괜찮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도 나를 살게 한다. 그 말 한마디가 나를 약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계속 살아갈 수 있게 붙잡아 준다. 오늘 누군가에게, 혹은 나 자신에게 그렇게 말할 수 있다면, 그것은 이미 충분히 용기 있는 하루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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